7화. 드러난 구멍의 정체
다음 날 아침, 김 반장은 노란 아파트 입구를 서성거렸다. 오전 중으로 무조건 일을 끝내야 한다는 백동수의 엄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백동수가 알려준 시간인 7시 30분, 정장 차림의 김창식 씨가 안전 조끼를 입은 김 반장에게 다가왔다.
"구청에서 나오신 분이시죠?"
말쑥한 정장 차림의 김창식과 낡은 작업복의 김 반장이 마주 서 있는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김 반장은 김창식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삼십 년간 도로공사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눈은 민원인의 의도를 금세 꿰뚫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과 정성스럽게 매듭을 맨 넥타이가 말끔했지만, 그의 눈가에는 미묘한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이 남자는 단순한 트집잡이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민원이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김 반장은 그 섬세한 표정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말씀하신 구멍의 위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김 반장은 긴말 없이 준비해 간 석필을 단단히 거머쥐며 말했다.
김창식은 단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까만 아스팔트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단 한순간도 그곳을 잊은 적 없다는 듯이.
"여기입니다. 정확히 이 자리였어요."
그의 목소리에 담긴 확신에 김 반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대충 여기'라며 애매한 대답을 예상한 탓이다. 그의 손가락은 미동조차 없이 한 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 반장은 마치 보물이 묻혀 있는 자리라도 되는 듯이 조심스럽지만 민첩한 손놀림으로 수박만 한 원을 그렸다. 까만 아스팔트 위에 하얀 석필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정확히..." 김 반장이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버스 올 시간이 다 됐어요."
김창식이 뒤돌아서려는 순간, 김 반장이 물었다.
"어떻게,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아시는 겁니까?"
김창식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보여주며 말했다.
"출근길에 담배꽁초를 그 구멍으로 버렸거든요. 십 년 넘게 말이죠."
"십 년이요?"
김 반장의 눈이 커졌다.
"네, 어느 날 갑자기 그 구멍이 사라진 겁니다."
김창식의 목소리에는 묘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단 하루도 빠뜨린 적이 없어요. 그 구멍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김 반장은 민원인의 담담한 설명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수관을 들여다봤을 때 발견했던 꽉 막힌 침전물과 쓰레기들이 떠올랐다.
"이상한 게, 그 구멍이 없어지고 나서 제가 좀 이상해졌어요."
"어떻게요?"
"매일 아침이 불안해요. 뭔가...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마치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처럼."
김 반장은 용기를 내어 민원인에게 중요한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하수도가 막혔으니 준설 민원을 넣으시라고. 그러면 구청에서 원인을 찾아서 제대로 해결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김 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창식은 달려오는 마을버스를 향해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저 버스 놓치면 지각입니다. 수고하세요.”
김 반장은 휴대폰을 꺼내 백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 과장, 맨홀 위치는 알아냈어.”
“그럼, 서둘러요. 완료사진과 보고서가 급해요.”
"그게 아니라, 민원인이 십 년 넘게 그 배수구멍에 담배꽁초를 버렸다는데, 물론 그 꽁초 때문에 막히기야 하겠냐만은... 자꾸만 그 막힌 하수관이 머릿속에 걸려서 말이야.”
전화 저편에서 백동수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김 반장, 우리가 할 일은 맨홀 복구까지입니다. 준설은 감독한테 이야기했으니, 더는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전화가 뚝 끊겼다. 김 반장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동수는 제자리를 찾은 하수도 맨홀 사진과 완료 보고서를 이벌건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민원처리 완료 보고를 마친 이벌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백동수와 한 저녁 약속을 떠올렸다. 느긋하게 커피잔을 입에 대던 그의 얼굴이, 그날 밤의 기억에 벌겋게 상기되었다. 음흉한 늑대의 이빨을 숨긴 채, 그는 그 밤을 곱씹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