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일흔넷의 아버지는 여전히 새벽같이 영등포 시장으로 나갔고, 어머니는 빌딩 청소 일을 계속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실의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가 너무 나빠서 취직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방송에도, 유튜브에도 유명한 요리사들은 온갖 예능과 홈쇼핑에서 활짝 웃고 있는데, 그는 갈 데가 없었다.
당장 돌아오는 대출이자라도 갚아야 했다. 요리사 자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야간 택배 물류센터로 갔다. 미친 듯이 물건을 나르고, 낮에는 배달 앱을 켜고 틈만 나면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힘들지만 돈이 된다는 말에 택배 대리점에 취직했다.
운전이 서툴러 고생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적응해 나갔다. 부족한 운전 실력은 부지런한 발로 메우며, 끼니조차 잊은 채 뛰어다녔다. 운전도 점점 익숙해졌다.
곧 눈이라도 내릴 듯 우중충한 날이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우회전하려 서행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뛰어들었다. 차는 멈추었지만, 아이는 제풀에 넘어지면서 트럭 앞 범퍼에 이마를 부딪혔다. 아이를 쫓아오던 엄마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119구급차가 도착했고, 그는 곧바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신호를 지켰고 좌우를 살피며 서행하다 멈추었음에도, 경찰은 그를 가해자로 규정했다. 간절한 심정으로 상황을 설명해도 경찰은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했다.
안전운전 의무 위반.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손이 떨려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로 돌아갔다. 차에 남은 택배 물건을 확인한 사장은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더니 손가락질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택배 기사 일을 그토록 말리며 걱정했던 어머니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 생각들이 검은 실타래처럼 엉켜 숨을 조였다.
어느새 서강대교를 걷고 있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저녁은?' 어머니의 문자였다.
그 순간, 차갑게 굳어있던 그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 짧은 문자가 모든 절망의 무게를 뚫고 들어와 그를 흔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세찬 강바람 속에서도 그의 눈물은 식을 줄 몰랐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한적했던 다리 위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그를 스치며 지나갔다.
'이 늦은 시간에, 다들 어디를 가는 거지?'
의아한 생각에 지나는 사람들을 피해 다리 난간으로 바싹 붙었다. 그때, 짙은 어둠 속에서 헬기 굉음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여의도 상공으로 시커먼 헬기들이 거대한 새떼처럼 줄지어 날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헬기를 가리키더니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비상계엄이라니, 설마 했는데..."
"아이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게 무슨 난리야."
사람들이 주고받는 다급한 소리에 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상계엄?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가?'
몸이 오싹했다. 헬기들이 줄지어 여의도로 날아가는 이유를 짐작했다. 국회의사당.
정신없이 사람들을 따라 뛰었다. 어느새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 도착했다. 시민과 경찰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뒤섞인 애타는 함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