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식재료만 사용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새벽잠을 줄여가며 도매시장을 돌아다녔다. 한숨을 내쉬며 이곳저곳 가격을 알아보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버티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 비어 있던 자리에 한식 뷔페가 문을 열었다.
한식 뷔페 개업 첫날, 그는 가게 문을 열며 옆을 보았다. 7,000원 무한리필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줄을 선 사람들이 그의 가게 앞을 지나쳐 옆으로 들어갔다.
저녁 피크 타임. 예전 같으면 웨이팅이 있었을 시간에, 그의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옆 가게에는 사람들이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맛으로 승부한다는 그의 철학이 무색했다.
15,000원짜리 파스타와 7,000원 무한리필. 손님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단골들도 하나둘 발길을 끊었다. 가게 매출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곤두박질쳤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해법을 고민했다. 메뉴를 바꿔볼까. 가격을 낮춰볼까. 하지만 이미 월세는 두 배가 올랐고, 식자재 가격도 치솟았다. 가격을 낮추면 적자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직원들을 불렀다.
"미안합니다. 더는 월급을 드릴 수가 없어서..."
서빙 알바 대학생이 괜찮다며 웃었지만, 눈시울이 붉었다. 주방 보조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혼자 남은 주방은 너무 넓고 적막했다.
직원들을 보낸 지 한 달도 안 돼, 경매 개시 결정문이 날아왔다. 빌라 전체가 경매로 넘어갔다는 통보였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전세사기.
손이 떨렸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모은 적금과 대출금까지, 그의 손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날 저녁, 부모님 집을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만 보고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챘다.
"무슨 일 있니?"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세사기를 당했어요."
거실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돌아앉았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전세를 고집했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월세는 돈이 새는 거 같아서, 전세를 얻어두면 나중에 네 목돈이 될 거라고... 내가 그랬어. 엄마가 잘못했다."
"아니에요.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괜찮아. 네가 다친 게 아니면 다행이다. 돈은... 돈은 또 벌면 되는 거야."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빌라 사람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해봤지만, 법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깡통전세. 착실하고 성실히 살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같은 빌라에 사는 청년이 그의 식당으로 찾아왔다.
"건물주가 잡히긴 했는데, 배 째라고 나옵니다. 돈 없으니 감옥 가겠다고. 법은 우릴 보호 안 해줍니다. 우리가 최후순위래요."
청년이 돌아간 후, 그는 혼자 남았다. 암담했다. 부모님 돈에 대출까지 받은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는 현실에 치를 떨었다.
그는 폐업을 결심했다.
월세도 대출 이자도 감당할 수 없었다.
폐업 전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주방에 섰다. 그는 남아 있는 재료를 꺼냈다. 자신을 위해 파스타를 만들었다. 면을 삶고, 마늘을 볶고, 소스를 만들었다. 익숙한 손놀림. 접시에 담긴 파스타를 보며, 그는 처음으로 자문했다. 요리가 뭐였을까? 꿈이었을까, 삶이었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한 입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있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늦은 밤, 식당 불을 끄고 소주를 마셨다. 의자에서 넘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돌처럼 뭉쳐진 심장이 울분을 토하자 그는 가슴을 치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식당 기물들은 kg당 몇백 원의 고물값으로 처리되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억대의 대출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