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렬에서 벗어나

경기옛길 평해길, 구리를 걸으며

by 구현

왕숙천을 건너 구리 산책로를 걸었다. 쿠션이 있는 녹색 바닥이 걷기에 좋았다. 이어지는 가을 비로 왕숙천의 물살은 거셌고, 물소리는 계곡처럼 시원했다. 강변도로와 외곽순환로를 오가는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산책로를 걷다, 경기옛길 평해길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에서 한양으로 들어서는 이 길목으로 보따리를 짊어진 장사꾼들과 선비들이 지친 걸음으로 지났을 것이다. 그들의 땀과 분주함이 지금의 차량 소음으로 바뀌었을 뿐, 생존을 위한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여긴 고요한 산책길은 아니었다.


한적한 의자에 앉았다. 나는 도로 공사 현장을 돌고 돌았다. 공사가 끝나면 또 다른 현장으로, 언제나 바뀌는 상황과 조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곳에 정착하기를 바라는 아내의 바람조차, 나를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이 불안정한 삶이 나에게는 당연한 질서가 되어버렸다.


일이 멈추자, 나도 멈추었다.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근성은 바꿀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장소를 바꾸며 걷고 있다. 비슷비슷한 강과 산책로를 걸으며 새로운 감정을 찾는다.


저 생존의 소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뭐 하고 있는 거야. 아직 그럴 때가 아니잖아. 서둘러."


"좀 쉬었다 갈게. 먼저들 가슈."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나 다시 걸었다.


생존을 위해서만 걷는다면 재미도 없고 지치게 마련이지. 답답해도 이렇게 행복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행렬에서 벗어났지만,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이 기분을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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