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디지털]#10-나 지금 너무 바빠서 안돼

화내고 미안하고의 반복

by 행부헤일리


추석연휴 첫날.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어서 오전동안 공부를 하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렀습니다. 40분 내로 식사와 복귀시간을 정하고 온 터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문을 열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아빠가 보였습니다.


나: 아빠 밥 나중에 먹지? 나 먼저 먹는다~

아빠: 그래. 근데 이 QR코드를 보려면..

나: (말을 끊으며)나 지금 너무 바빠. 다음에 해 다음에

아빠: 아니 그렇게 바빠? 뭐 맨날 바쁘대 아주. 뭐가 그렇게 바쁜데?

나:... 나 지금 시험 준비하는 거 있잖아. 이렇게 오래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없는데 바쁘지 않겠어?

아빠: 그래.. 알았다..


티브이를 틀어놓고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계속 머릿속엔 '난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화가 나는 이유가 뭐지?' '하지만 짜증이 난다고' '하아.. 왜 매번 이 사이클이 반복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아빠에게 나의 입장을 쏘아붙이고 간들 내 기분이 나아질 리 없었습니다. 대화를 해야겠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나: 아빠는 평소에 루틴대로 움직이잖아

아빠: 그렇지

나: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니까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는 날이 없잖아. 그럼 나도 시간을 정해놓고 움직일 텐데 아빠가 그렇게 얘기를 하면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워. 보통 아빠가 뭘 물어봐서 내가 이해시키기까지 최소 2~30분이 걸리잖아.

아빠: 아니, 뭐 빠른 것도 있고 늦은 것도 있고 그런 거지.

나: 근데 그게 뭐일지 모르잖아. 내 입장에서는 보통 30분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빠: 아니 얘기를 들어봐야 알지. 얼마나 걸리는 건지.

나: 근데 나는 생각을 했을 거 아냐. 몇 시까지 밥을 먹고 다시 공부하러 돌아가서. 이거를 짜고 왔을 텐데. 아빠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당황했다고.. 황당하다고..

아빠: 아니 뭐 말하다 보면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지 뭐. 상황에 따라가지고.

나: 근데 나는 내 하루의 계획을 짜놨잖아.

아빠: 알았어.

나: 그래서 뭔데 궁금한 게

아빠: 아니 QR코드 안에 있는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거 좀 물어보려고 했지

나: QR코드가 어딨는데.

아빠: 책에.

나: 책이 어딨어?

아빠: 아이 다음에 해.

나: 아니 지금 해~ 책이 어딨냐고.

아빠: 찾아봐야 되는데.

(QR코드 보는 방법을 알려줌)

아빠: 그니까 2,30분이 안 걸리잖아

나: 근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아빠: 아 그러니까 말도 안 들어보고 바쁘다고만 하고

나: 근데 나 밥 먹으러 왔잖아. 전에도 아빠 나 밥 먹을 때 계속 옆에서 물어봤잖아.

아빠: 그니까 이런 건 그냥 간단히 끝나는 거 아니야. 들어보지도 않고 바쁘다고만 하고

나: 근데 내가 보통 주말에 물어보잖아. 궁금한 거 있냐고. 그럼 그때 해도 되지 않아?

아빠: 생각난 김에 한번 물어본 거지. (웃으며)그럼 앞으로는 주말에만 물어봐?

나: 하아.. 일단 갈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나도 참 고민이야. 왜 조금 더 친절하게 굴지 못하는가.. 처음에는 내 의견이 아주 정당하고 논리적이라 생각했어. 근데 아빠와의 대화를 생각할수록 너무 민망해지더라. 내 변명이 초라해서. 이게 뭐라고 짜증이 나는 건지 아빠와 대화 중에도 생각해. 나도 모르겠는데 화가 나. 왜 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거라 하더라고. 가족이니까 그러는 거래. 그리고 내가 아빠한테 미안함을 느낀다니까 잘 키웠다고 행복해하더라. 아무래도 계속 반복될 것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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