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정 언니가 27년 전 나의 결혼식 기도문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언니는 내가 결혼하던 그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의 기도문을 두고두고 자신이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기도문이었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내 결혼식 비디오를 보면서 기도문을 받아 적었던 것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 하더니만 결국 찾아낸 모양이다.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하나 기억나지도 않던 기도문을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다시 읽으니 그 감동이 새것이 되어 살아나는 느낌이다.
지극히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헌신된 젊은이들이 오늘 가정을 이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사모하며 한 길을 걸으며 사는 날들에
하늘과 땅의 아름다운 복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들의 사랑이 날마다 무르익게 하옵소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짐으로 수고와 희생이 기쁨이 되게 하시고
존경과 섬김이 즐거움이 되게 하시고
책임과 의무의 감당이 보람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사랑의 신비가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게 하시며
어려움 가운데서 깊어지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 더 큰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이들의 장래를 주님께 맡깁니다.
이들의 남은 날이 주 은혜 안에 기쁨의 열매가 있게 하시고
사역을 위해 수고하며 흘리는 땀의 열매는 주께만 영광이 되게 하시며
주님 앞에 드려지는 나날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일용할 양식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옵시고
또한 하나님의 기업으로 주시는 태의 열매로 인하여 결혼과 가정의 기쁨은 더하게 하소서.
특별히 삶을 주를 위해 헌신하였사오니 사역을 감당할 믿음과 능력을 더하시고
주의 손에 다듬어져 가는 귀한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이들을 위해 복을 빌고 지켜보는 귀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신랑 신부 위에 임하는 아름다운 복이 되게 하시고
귀한 분들의 기대와 바람에 응답하는 종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소서.
1997년 9월 20일 동생 OO의 결혼날
이OO 목사님
기도를 해주신 목사님은 교회학교 학생이었던 고3 때부터 대학부, 청년부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나를 지도해 주신 분이다. 목사님은 한 때 내가 잘못된 종말론을 접하면서 교회를 떠나려 했을 때 나의 이야기와 영혼의 깊은 갈증에 귀를 기울여주시면서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셨고, 1980년대 말에 하스데반 선교사님의 올네이션스 찬양과 경배가 한국 교회 안에 예배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때, 청년들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내가 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그리고 끝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선교하는 단체에서 사역자의 삶을 사는 꿈을 꾸도록 인도해 주신 내 인생의 은인과 같은 분이다.
이 분 외에 누가 진심을 다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실 분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고 존경했었던 목사님이셨기에 27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로운 인생의 길을 시작하던 나를 위한 그분의 애정과 염려가 기도문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이 느껴져 마음이 울컥해지려 한다.
남편과 나는 선교단체 안에서 함께 만났다. 서른 살과 스물여덟 살, 하나님께 삶을 헌신하여 드린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젊은이들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런 경제적인 기반이 없는 가난한 사역자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둘 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아주 필수적인 것만 하기로 약속하고 예식장도 우리 형편에 맞는 곳을 알아보다 어느 구청 여성회관의 연회실을 결혼식장으로 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연회장이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고 널찍해서 마음에 들었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담당 직원은 그곳 여성회관에서는 결혼식장만이 아니라 드레스와 신부화장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드레스는 그 당시에도 대여비가 적어도 40~50만 원을 할 때였는데 그곳에서는 웨딩업체들로부터 유행이 지난 것들을 기부받은 드레스들을 단돈 3만 원에 대여할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아무리 그래도 일생에 한번 하는 결혼식인데 3만 원 하는 드레스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지만 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고 했다. 구경 끝에 괜찮은 것이 있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런히 옷장에 걸려 있던 드레스들은 한눈에 보아도 올드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 돌아서려는데 바로 전날 들어온 드레스가 있는데 한번 보겠냐며 따로 보관해 두었던 드레스를 직원이 가지고 왔다. 놀랍게도 원단이나 스타일이 당시 유행하는 것들과 비교해서 결코 뒤떨어져 보이지 않았고, 단순하면서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이었다. 피팅을 해 보니 더더욱 흠잡을 것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은 그것- "3만 원짜리 드레스"-으로 정했다. 남편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염려가 되는 듯했지만 나에겐 '이것은 때에 맞춰 오직 나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확신이 들어 주저할 것이 없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3만 원짜리 드레스를 빌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쩌자고 그랬느냐 울상을 지으며 걱정하던 친구들도 결혼식 당일에 내 모습을 보고 그제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며 호들갑을 떨며 안심했다.
여성회관 연회장에서 3만 원짜리 드레스를 입고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결혼이 올해로 27년을 맞았다.
돌아보면 수도 없이 많은 산들을 넘고 강들을 건너 이곳에 이르렀지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들은 목사님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진 기적과 축복의 여정이었다.
목사님의 기도대로 우리의 지난 삶에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며, 어려운 가운데 서로를 더 깊어지게 하고 고통 속에 더 큰 능력이 되는 사랑의 신비"가 없었다면, 다시 말해 우리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 이곳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넘어서기 힘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결국 통과하며 사랑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사역자로 살면서도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팍팍한 삶 속에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채우시며 우리의 필요를 돌보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 모두 목사님의 기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아 기도문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절절하게 마음을 울린다.
내가 살아온 삶을 누가 알까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나의 힘으로 온전히 살아낸 삶이 아니다. 누군가의 사랑에 기대어, 누군가의 골방에서 드려지는 기도의 힘으로, 누군가 자신의 분깃의 일부를 아낌없이 떼어 줌으로 인해 지탱되고 채워진 삶이었다. 그로 인해 비록 3만 원짜리 드레스를 입고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랑과 은총을 받아 누리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작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의 이 기도가 있었으니 이보다 더 축복된 결혼식은 없었을 것이다.
27년을 살아왔다고는 하나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날들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목사님의 기도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사모하며 한 길을 걸으며 사는 날들에
하늘과 땅의 아름다운 복으로 충만하게 하시길...
그리고 우리 부부가 주의 손에서 다듬어져 가는 귀한 그릇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앞으로도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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