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 독서 성장기
몇 주 전 작은 아이 앞으로 택배가 왔다.
인터넷 서점 로고가 새겨진 박스를 보니 책을 주문했나 보다.
박스가 제법 크고 무거웠다. 꽤나 많은, 혹은 두꺼운 책을 주문한 것 같았다.
내용물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한 채로 아이의 책상 위에 박스를 놓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엄청 흥분을 하면서 택배 박스를 요즘 말로 '언박싱' 했다.
"엄마, 나 이번 방학 때 이거 읽으려고요~!"
내심 궁금했던 아이의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정말? 우리 둘째가 이걸 읽는다고? 나도 안 읽어 본 건데...?
의외였다.
아이들과 홈스쿨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여느 부모들과 같이 두 딸이 좋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집안 가득 사서 채워주었고, 나는 틈만 나면 아이들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모으고, 한 번에 15권까지 대량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는 사람은 정작 엄마와 아빠일 때가 대부분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만큼 열정적으로 책에 매달리는 것 같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집에 책 읽는 사람이 있으면 , 부모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책을 본다는데...
나는 몰라도 아빠만큼은 소문난 독서가인데... 우리 아이들은 왜 안 그럴까?
아이들은 작은 집 온 사방에 책이 있어서 불편하다고
"이다음에 우리가 돈을 벌어서 큰 집을 사고 커다란 서재를 만들어서 책과 아빠를 가두어버리자!"
농담을 하지를 않나
도서관에 가도 서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이 책 저책 산만하게 책등과 표지만 구경할 뿐 책 한 권 진득하게 읽고 오는 일이 없으니 뭔가 잘 못되었구나... 아이들이 책 읽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었구나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아이들이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대입 시험을 치자마자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며 중고서점에서 김훈 님의 <칼의 노래>를 샀다. 그리고 며칠 읽더니, "엄마, 나는 아직 김훈 님의 문장을 감당할 만한 읽기의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걸 읽을 때가 아닌가 봐요." 하면서 책장을 덮어버렸다. 나도 김훈 님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그 문장의 현란함을 감당하기 힘들어 읽다 쉬다를 반복한 기억이 있어서 아이의 그 읽기의 버거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아이가 올 들어 드디어 김훈 님의 <남한산성>을 완독하고 새로운 책 읽기에 도전을 했다니
이런 때가 오는구나... 우리 부부의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기 프로젝트'가 망한 것이 아니구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두꺼운 <코스모스>를 절반이나 진지하게 읽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책과 친해졌지? 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의 나는 절대 절대 책을 읽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우리 아이들의 바람처럼 부모님은 집을 짓고 커다란 서재를 마련하셨다. 아버지도 남편과 같이 언제나 책 아니면 신문을 손에 들고 계신 분이었고, 우리들을 위해 좋은 책들을 항상 구비해 주셨다. 서재에는 어린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관심사를 채워 줄 책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책을 읽는 부모님의 모습과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한참 잠이 들었나 싶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내 얼굴에 빛이 가지 않도록 희미한 스탠드 불을 비스듬히 켜두고 새벽이 이미 한참 지난 시간까지 책을 읽느라 잠을 놓친 언니가 "깼어?" 하면서 이불을 끌어올려주던 일을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은 책을 읽던 가족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내 눈에 비친 가족들의 책 읽는 모습은 너무 근사했고, 서재에 들어서면 나 역시 그 독서클럽의 멤버십이라도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의 가슴 벅참은 한정 없이 책등과 책 표지를 구경하는 것으로 그칠 뿐,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는 데까지 깊이 나아가지 못했으니.. 우리 두 딸이 그렇게 도서관을 헤집고 다닌 것도 다 이유가 없지 않아 보인다.
나는 그 흔한 <걸리버 여행기>, <톰 소여의 모험>과 같은 세계 아동 문학 전집의 이야기들 조차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 <아라비안 나이트> 등등의 이야기를 읽고 내가 잠들기 전에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는 언니 덕에 그나마 책이 그런 내용이구나 하는 것을 알 뿐, 직접 읽는 것은 왠지 지루하고 온종일 친구와 놀기 바쁜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과 같이 여겨졌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의 일명, '책등 깨기'는 적어도 <걸리버 여행기>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작품이고, <톰 소여의 모험>을 마크 트웨인이 썼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해 주었다. 책과 책의 저자를 연결해서 맞출 수 있는 것, 비록 책을 읽지는 않는다 해도 책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서재에 있는 그 시간이 즐거웠고 어렴풋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책들을 다 읽어버리고 말 거야'라는 포부를 그곳에서 키웠다. 어릴 적 나는 책이 있는 방과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책과 함께 나름대로 노는 법을 배웠고, 비록 책의 입장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책이랑 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잡동사니처럼 내 머릿속에 쌓여 있는 책과 저자들의 정보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되는 때마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는 촉진제가 되었고, 자라 가면서는 나 스스로 이들의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기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책을 읽을수록 언니 오빠들처럼 좀 더 일찍 내 연령에 맞는 많은 책들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때가 되어 나도 어느 정도는 책이라는 것을 읽는 사람이 된 것은 나를 둘러싼 책과 친숙한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둘째가 책을 읽다가 나에게 말을 건다.
<코스모스>가 과학의 기초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큰 맥락 안에서 이해하며 한숨에 읽어 나가려 하는데 일단은 재미있다고... 아이의 말에 그 책은 안 읽었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도전했다가 역시 과학 지식이 부족해서 중도 포기하고 서평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때운 내 이야기 등으로 나도 화답하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랑스럽게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적어 놓은 노트를 펼쳐 보여준다.
제목, 읽은 날짜, 책 이미지, 감상평... 홈스쿨 하면서 그렇게 적으라고 해도 내 마음만큼 채워지지 않던 독서록 카테고리들이 다 살아 있는 훌륭한 노트였다.
그렇게 읽고 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 이 순간.. 홈스쿨을 하면서 꿈꾼 건데..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쓰고, 읽은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책 읽는 아빠 옆에서 맨날 핸드폰만 하고, 도서관에서는 서고를 한번 쓰윽 둘러보고 친구랑 휴게실에서 도시락 까먹고 신나게 놀다 오는 '꼴'을 보면서 나는 한없는 실패감을 느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우리 두 딸에게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과 친해지고, 책과 함께 즐겁게 놀면서 언젠가는 책을 읽게 되는 준비를 하게 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심어야 할 때와 거두어야 할 때가 있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심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로서 좋은 것을 주리라는 마음으로 심은 것은 언젠가는 아이들의 삶에 잘 익은 열매로 맺히는구나.. 자신만의 체계적인 독서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성급했던 마음을 반성하고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가다듬는다.
그래서 홈스쿨에 대한 나의 브런치 첫 글에서 쓴 것처럼, 우리의 홈스쿨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심은 씨앗이 죽지 않고, 작고 파릇한 싹을 틔우면서 땅 위로 솟아오른 것을 지금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도
다시 책을 읽다 언제든지 말을 걸어 올 아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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