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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Feb 23. 2023

나의 우주, 나의 아버지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후끈 닳아 올랐던 그해 봄, 나는 둘째를 출산했다.

나는 아이를 낳는 그 순간까지 태어날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 알지 못했다.

첫 아이가 딸이기 때문에 이제는 아들을 한번 안아봐도 좋겠다고 은근 기대를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생명이니 어떤 아이를 주셔도 기쁘게 받겠습니다 기도했기에

태어난 아이가 또 딸임을 알았을 때도 다행히 크게 서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멀리서 막내딸의 출산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혹시나 또 딸을 낳아 막내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첫 아이때와 같이 난산으로 힘들어하다가 제왕절개로 겨우 아이를 낳은 딸이 안쓰럽고 애처로우셨는지, 아버지는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오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 엄마 몰래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고생했다... 니, 둘째도 딸 낳아서 섭섭하나?"

"아니에요, 아버지, 섭섭하긴요~"


"내가 살아보니 딸은 기본적으로 둘은 필요하더라. 아들은 암만 많아도 쓸데없다.

 니 큰 오빠는 아들만 둘이고,

 니 언니는 아들 하나, 딸 하나고,

 니 작은 오빠는 아이가 없어서  다 걱정인데..

 니는 딸이 둘이니까 이제 나는 니 걱정은 안 한다."



수술 부위가 살짝 당길 만큼 피식 웃음이 나오다 이내 코끝이 찡해졌다.


평소 말이 없으신 우리 아버지,

막내딸을 그렇게 이뻐하시면서도 눈 한번 마주쳐 주시지 않던 아버지가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당신 만의 방식으로 힘든 딸을 위로하고 계셨다.

니 걱정은 안 한다 하셨지만 그 말은 나에게

"나는 니가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가왔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이불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얼마 뒤 엄마와 함께 병원에 도착하셔서는 평소와 같이 아무 말 없이 병실 한쪽 끝에 우두커니 앉아 계셨지만

나는 그날 아버지가 내 옆에 있어서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렇게 하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지지와 사랑 안에 태어난 둘째가

겨우 말하기 시작하던 세 살 무렵 손가락 끝 살점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골절은 아니었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리고 봉합 수술을 하느라 탈진이 된 그 어린 딸아이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로서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든 아이 곁에서 서러운 울음을 컥컥 삼키고 있을 때,

그때도 아버지는 당신의 막내딸에게 전화를 주셨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을 참으시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려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결국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울기만 하는 막내딸에게 아버지가 안타까워하시며 말씀하셨다.



"울지 마라…

 니는 니 딸 때문에 울지만, 나는 내 딸 때문에 눈물이 난다."



우리 아버지가 나  때문에 울고 계시는구나.

니가 엄마가 돼서 뭐 했냐 꾸중하시지 않고 그저 내 마음 아플까 염려하신 거구나.

아버지께 나는 여전히 안쓰러운 막내딸이구나..


컴컴하고 절망적인 병실에서 받은 아버지의 전화는 나에게 말할 수 없이 충분한 위로가 되었고

덕분에 나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어린 딸을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다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날이 밝아 엄마와 병실에 도착하신 아버지는 여전히 말없이 구석에서 애처로운 딸을 보지 않으려고 바닥만 보고 앉아 계셨다.






나의 커다란 우주, 나의 안전한 세상이었던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잊히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욱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40년보다, 지난 15년 동안 더 많이 아버지를 생각하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로 부터 전화를 받을 수 없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사랑을 다시 소환하여 떠 올리면

아버지의 위로가 나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아버지의 사랑받는 막내딸이라는 사실에 만족하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살아생전에 온 마음을 다해 막내딸을 사랑해 주시고 그 충분한 사랑을 유산으로 남겨 주신 나의 아버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보고 싶다.






1994년, 내가 참 좋아하는 두 분의 사진이다. 엄마가 다리를 다치셨던 그때도 아버지는 항상 엄마 곁을 지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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