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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ul 04. 2023

할아버지와 산딸기


요맘때 즈음이면 시장에서 마트에서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들을 만날 수 있다.

나와 아이들에게 산딸기의 등장은 여느 과일들과는 달리 유난히 반갑고 특별하다.


"엄마, 산딸기예요. 아~~할아버지 생각나~~"

"산딸기 보면 너희들도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구나?"

"그럼요, 할아버지가 매년마다 따서 보내주셨잖아요."



살아생전 아버지는 아이들 표현대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매년마다 산딸기를 '사서'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따서' 보내주셨다. 집 뒤에 있는 산으로 등산을 가실 때마다 길가에 빨갛게 익어 있는 야생 산딸기를 만나는 때면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딸기든, 산딸기든 맛있게 먹어치우던 손녀들 생각에 그저 지나치지 못하시고 비닐봉지 한가득 산딸기를 따오시곤 했다.


그리고 배송되는 동안 물러지지 말라고 상자에 충전제까지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내주셨다. 아버지의 세심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상자 한쪽이 찌그러져 일부가 형체도 없이 짓이겨진 채 도착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중에 먹을만한 것들을 모으고 씻어 아이들에게 내어주면 그렇게 맛나게 먹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너무너무 맛있어요."

그렇게 전화를 드리면 그게 그렇게 좋으신지

"할아버지가 또 따서 보내줄게, 허허"

우리 자랄 땐 구경도 못해 본 커다란 웃음을 아낌없이 껄껄 웃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아버지의 산딸기가 집으로 배송이 되고 신난 아이들과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전화를 드렸더니 엄마가 살짝 귀띔을 해주셨다.


"아이고, 할배가 그 산딸기 딴다고 비탈에 구르고 가시에 온 팔이 다 쓸리고 그래가 딴기다. 까딱 잘못 디디면 벼랑에 떨어질 수도 있는데, 할배가 애들 생각하니까 힘이 솟는갑다. 그리 알고 먹어라."


깜짝 놀라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여쭸고 그제야 나는 그렇게 토실토실 싱싱한 딸기를 가득 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책로 근처에 나는 것들은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이 오며 가며 따 먹으니 남은 것이 없지만 비탈이나 수풀 속 깊은 곳에는 사람들의 손이 아직 닿지 않아 살이 통실하게 오른 산딸기가 가득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거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셨던 것이다.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께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을 텐데 혹시 거기서 말벌이라도 만난다면.. 행여나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하신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졌다.


아버지께 이제 아이들 먹고 싶어 하면 사서 먹일 테니 이제 다시는 따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전화를 끊고는 쪽쪽거리며 맛있게 산딸기를 먹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너희들 이거 좋아한다고 따러 가셨다가 팔에 상처 나서 피가 나고, 비탈길에 넘어지고 하셨대. 할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해서 따신 거야."


내 말을 듣고 있던 큰 아이가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더니 먹고 있던 산딸기를 냅다 집어던지고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우왕~ 나 다시는 산딸기 안 먹을 거야, 이런 거 안 먹어도 돼, 할아버지 산에 가지 마~~!"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말했나..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이를 겨우 달래고 그래도 그렇게나 귀한 산딸기니 남기지 말고 감사하게 먹자고 다독여 주었다.

아이는 9살 어린 나이였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건강과 안녕이 산딸기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는 며칠 뒤에 생신을 맞이하실 할아버지께 드릴 편지에 그런 자신의 마음과 함께 아직 글을 쓸 줄 모르는 동생의 마음까지 빠뜨리지 않고 또박 또박 적어놓았다.





산딸기 따주시는 것도 좋지만 저는 할아버지가 건강하신 게 더 좋아요(큰 아이)

할아버지, 슬프지 마세요. 산딸기 안 따주셔도 돼요. 건강하세요(작은 아이)



막내딸이 제발 위험하니 따지 마시라 당부를 드려도

손녀딸들이 눈물 젖은 편지로 하소연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산딸기를 따서 집으로 보내주셨다.

긴 팔 옷을 잘 챙겨 입고 안전한 신발을 신고 가면 걱정할 것 하나 없다시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사랑이란... 이러니 아이들이나 나나 산딸기를 보면 할아버지를 ,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손녀들을 향한 사랑 앞에 주저 없이 돌진하시던 아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자리에 눕게 되셨고 그래서 다시는 산으로 가실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할아버지의 산딸기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할아버지를 향한 진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남게 되었다.





초여름이면 시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산딸기이지만 나와 아이들은 요즘도 산딸기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를 뵌 듯 반갑다.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그 맛난 산딸기를 철마다 실컷 먹게 해 주셨을뿐 아니라 지금도 나와 우리 아이들이 당신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게 이토록 진하고 사랑스러운 흔적을 남겨주신 우리 아버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으며 보고싶은 마음을 달랜다.


그러고 보니 올해엔 아직 아이들과 산딸기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시장에 나가면 아직도 산딸기가 있으려나 둘러봐야겠다.

딸들과 함께 나눠 먹으면서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남은 산딸기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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