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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ul 15. 2023

나는 아버지의 '구석구석이 이쁜 딸'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구석구석이 이쁜 딸"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부르셨다.

네 자녀 중 가장 막내인 나는, 생각해 보면 언니 오빠들보다 더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착하지도 않았고,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오직 나에게만 그런 칭호를 붙여주셨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만큼은 제일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더 떼쟁이에 고집스러운 막내로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고, 아직도 쓸 이야기가 많다.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내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준다.

그때 나는 걱정할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햇살 아래 길게 땋은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하루 종일 친구들과 동네를 누비고 다닌 기억이 꾹꾹 눌려 그린 크레파스 그림처럼 따사롭게 펼쳐지고, 숨 넘어갈 듯 깔깔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런 나의 해맑고 행복했던 삶의 중심에는 항상 든든하고 한결같은 울타리가 되셨던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가 계셔서 걱정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었다.

그 아버지의 '구석구석이 이쁜 딸'이니 두려울 게 뭐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구석구석이 이쁜 딸도 나이를 먹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산지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더 이상  아버지 빽 때문에 걱정 없는 아이도, 부족함이 없는 아이도 아니었다. 이제는 부모가 되고, 넉넉치 않은 선교단체의 사역자, 그것도 책임자의 아내로 살면서 받는 것보다 내어줘야 하는 것이 더 많고, 고집을 부리고 나만 생각하기보다는 참고 기다려줘야 하는 때가 더 많은 삶을 살면서 이기적인 막내티는 벗고 인간적인 성장을 다소 이루긴 했지만

삶이 내 맘 같지 않고 속 앓이 하는 가슴을 터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 심신이 고단할 땐 어디론가 마음 쉴 곳을 찾아 훌쩍 떠나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돌봐야 할 아이들에 책임을 져야 할 일들과 일상을 뒤로하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훌쩍 떠난다는 것은 그저 마음의 간절함일 뿐, 실행에 옮기기엔 고려할 것,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이란,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욕구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채워지는 것이 좋은 법...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간절함을 대신했던 거 같다.

아버지와의 지난 일들을 글로 쓰면서 나는 든든한 아버지가 계셨던 그 아이 때로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하고

거기서 구석구석이 이쁜 우리 막내라 부르시는 아버지 곁에서 걱정 없이 쉼을 누리게 된다.


어쩌면 누구는 이런 나를 보고 현실도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와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굳이 글을 쓰려는 이유는 힘에 부치는 현실을 잊기 위함이 아니다. 힘에 부쳐도 직면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현실을 가능하면 더 건강하게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받은 한시적인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존재였다는 확신은 때때로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보이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고 나갈 힘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아버지를 기록하는 이유이다.


요 며칠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늘 저녁에는 설거지를 하다가 아버지 생각에 혼자 콧물을 훌쩍거렸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자니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우리 구석구석이 이쁜 딸, 나는 너를 믿는다."그렇게 말씀하실 것만 같고, 그렇게 사랑하신 막내딸이 누구보다 멋지게 행복하게 삶을 살아내길 원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오늘도 우리 아버지 덕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살아야 할 일상을 다시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직도 쓰고 싶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에게 많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살다 보면 또다시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주저앉고 싶은 날이 오겠지만 그때도 나는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오늘처럼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분명히 전과 같이 인자한 얼굴로 구석구석이 이쁜 우리 딸하고 웃어 주실 거다, 우리 아버지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아갈 수도 없다.

알랭 드 보통, <불안>



다섯 살 무렵의 나와 아버지  ©NA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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