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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an 14. 2023

프롬 하와이

선물은 마음이죠...



남편은 여러 차례 일 때문에 하와이를 다녀왔다. 관광을 가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일을 위해 가는 것이라 한 번도 내가 동행한 적이 없다. 그래도 하와이 하면 세계 최고의 관광지인데 거기를 어떤 이유든지 간에 혼자 다녀오니 남편은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올 때마다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사 오곤 한다.


선물은 모름지기 마음이라... 그 점을 잊지 않고 받으면 어떤 선물이든 기쁨과 만족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남편의 오랜 선물들을 통해 배우게 된 것 같다.






요즘 내가 참여하고 있는 별별 챌린지 글쓰기에서 오늘의 주제로 제시된 사진에는 흔해 빠진 데다, 뭐랑 매치를 해도 촌스런 슬리퍼가 등장한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당장에 지난해 봄, 하와이에서 나를 위해 남편이 심혈을 기울여 사 온 선물을 떠올렸다. 평소에 허리가 아픈 나를 위해 하와이 코나의 아웃렛 매장에서 "쿠션이 좋은 브랜드 실내화"를 사 왔다고, 그리고 사고 보니 좋아서 자기 것도 하나 샀으니 우리 둘이 커플로 신자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내놓은 것은 -


남색 슬리퍼..



ㅍㅁ제품이니 브랜드가 맞고, 나름 굽이 좀 있는 것이 허리 아픈 내가 신어도 쿠션감이 있어 유용하긴 할 것 같아 남편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은 없는데..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 '굳이... 이걸...' 하는 마음이 꿈틀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마트에 가면 널리고 널린 슬리퍼인데 이걸 왜 굳이 하와이에서...?



비싼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나의 품에 안긴 'from Hawaii' 슬리퍼




본인 슬리퍼를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쿠션 좋다, 당신 집안 일 할 때 허리 덜 아플 거야~"  

스스로 대견해하는 남편이 한편으론 황당하지만 또 한편으론 우습기도 해서 "고마워요, 잘 신을게요."

라고 했더니, 바로 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엄마, 엄마가 맨날 그렇게 반응하니까 아빠가 이런 선물을 사 오는 거예요. 이게 뭐야~ 하와이에서..."


아빠의 선물을 보고 어이가 없어할 말을 잃은 딸들은 엄마의 반응에 오히려 더 짜증스러워진 것 같았다.

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사실 이유가 있다. 아빠의 이런 선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하와이에 갔을 때는 내가 운동을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깊은 뜻을 가지고 트레이닝 복 하의를 사 왔는데 그것 역시 ㅇㄷㄷㅅ 브랜드.. 좋은 것으로 골랐다, 나름..

그리고 운동하면 더워진다고 시원한 칠부로...

짠~하고 꺼내는데, 순간 마음과 생각이 일지 정지되는 듯했다. 그때도 역시 '이걸... 굳이...'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굳이' 마트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 시장에서도 쉽게 구할만한 '편한 츄리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형부가 하와이에서 뭘 사 왔나 궁금했던 아는 동생도 한숨을 쉬면서 "이걸 달러 주고 사셨대요?" 했다는...


남편이 선물해 준 것들을 착용하면 이런 모양이 된다.


NAYOUNG 2023.JAN



아빠가 외국에 다녀오고, 그 나라의 느낌이 확 나는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설레는 일인데, 아무리 지금이 세계화된 세상이라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엄마는 아빠에게 어떠한 각성의 기회도 주지 않고 그저 웃으면서 잘 입을게요, 잘 신을게요 하고 넘어가니 딸들이 흥분을 할 수밖에 없다.


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설명해 주게 된다.


"얘들아, 그래도 아빠가 그 멀리서 엄마를 위해 나름대로 심사숙고하고 뭔가를 선물로 사 왔잖아. 그리고 그 선물이 좀 황당하니 재미있으니까 더 좋지 않니? 너무 아빠 같은 선물이지 않아? 엄마는 애초에 뭔가 기대한 것이 없으니까 그냥 이 자체로 좋아."


"아빠가 이러는 건 다 엄마 때문이야~" 아이들은 여전히 볼멘소리다.






사실 처음 선물을 보고 당황하는 것은 나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내 그 곰 같은 손으로 아웃렛 한 구석에서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또 고르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면 '까짓 선물... 뭔들 어때'하는 생각이 들고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남편에게는 여자인 아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뭘까 고르는 센스는 확실히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내인 나를 생각하고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의 진실함은 의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을 함부로 무시하기가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데... 그 진실한 마음이 나의 사소한 실망이나 불평으로 꺾이게 해서 되겠는가...


남편과 함께 살아온 날이 25년이 넘었고, 앞으로 또 얼마를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이 긴 시간 동안 남편과 큰 굴곡 없이 무던히 살아오게 해 준 것은 번듯한 선물이나 기가 막힌 이벤트가 아니라 투박하지만 진실한 남편의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신뢰였던 것 같다.


좀 아닌 것 같은 선물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읽으면 오히려 그 황당한 선물이 때로는 서로 마주 보고 웃게 만드는 보배가 되기도 한다.

맞다, 선물은 마음이다. 내가 받은 것은 하와이에서부터 고르고 골라서 정성스레 포장하고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츄리닝'을 몇 년째 허리 고무줄이 늘어나도록 입고 이제 낡아서 버릴 때가 됐어도 재활용통에 던져 넣지 못하고 고이 보관하고 있다. 앞으로 아마 이 남색 슬리퍼도 마르고 닳도록 신고도 여전히 신발장 한 구석에 모셔 놓을 것 같다.

물건은 낡아도 거기 담긴 마음은 낡지 않기 때문에...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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