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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Aug 01. 2023

"그냥요.."

아이가 아빠, 엄마의 뒷모습을 찍는 이유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에 빠져 길을 걷는 중 갑자기 카카오톡 수신음이 울린다.

곧장 메시지를 확인한 남편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이고, 또 털렸네."


우리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자주 털리곤 한다.

터는 존재는 우리 큰 딸이고,

털리는 것은 우리 부부의 뒷모습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데이트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는 관계로 전처럼 자주 산책을 나가지 못하지만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더운 여름밤이나, 벚꽃이 만발한 봄날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나가 바람을 쐬고, 바닷가를 걷고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직 막내티를 벗지 못한 둘째는 엄마 손을 잡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곧 언니에게 강제 연행을 당하고 만다. 너는 아빠랑 엄마가 데이트하는데 눈치도 없냐는 언니의 핀잔에 기분은 나쁘지만 할 말이 없는지.. 이내 언니 곁에 붙어 걷는다. 꼭 아빠랑 데이트하러 나온 건 아니니 같이 걷자 해도... 아이들은 우리를 어서 앞서 가라 보내고 둘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재잘재잘 우리 뒤를 따른다.


그렇게 앞서가며 뒤따르며, 아이들은 의도치 않은 순간 상에 맺힌 부모의 모습을 사진으로 붙잡아 우리에게 전송해 준다. 그렇게 남겨진 우리의 뒷모습 사진이 꽤나 많다.


한 번은 사진들을 보다가 왜 아이는 우리의 뒷모습을 그렇게 열심히 찍을까 궁금해져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보기 좋아서요, 다정해 보여서요.. 등등 그런 대답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우리 큰딸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시크하고 단답형이었다.


“그냥요..”


그냥 고개를 들고 보니 아빠, 엄마가 앞서가고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내 모습 찍듯이 찍은 건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하는 눈치였다.






부산 남포동 2016




아이가 무심하게 찍은 우리의 뒷모습을 볼 때면 항상 궁금해진다.

우리의 뒷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까...




아이들과 홈스쿨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24시간 노출이 되어있는 우리 부부의 삶, 일상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부족함이 없는 홈스쿨이 되길 바라서 밤을 새워가며 수업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책상을 마주하고 서로의 정면을 응시하며 준비한 것을 혼신의 힘으로 가르치지만

결국 그 의도된 가르침이 단지 말뿐인 이론이 아니라 실재임을 아이들로 하여금 확인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의도되지 않은 순간에 포착되는  "그냥" 눈에 들어온 부모의 일상, 날 것의 뒷모습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행일치라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제 아무리 뛰어난 강의를 하는 인기 있는 강사라도 그의 말과 삶의 불일치를 목격하게 될 때, 그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그 존재마저 힘을 잃고 외면을 당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부부가 서로 존중하지 않고 비난을 하거나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를 지켜야 한다면서 정작 부모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무단횡단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고 진실하게 살라고 가르치면서 결정적일 때 얼렁뚱땅 눈속임을 하고 나 몰라라 하는 부모가 된다면 내가 밤새워 준비하는 그 노력이 과연 아이들의 삶 안에서 살아있는 선한 열매로 맺힐 수 있을까.

나도 사람인지라 모든 면에 완벽하게 의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렇게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엄마, 혹시나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라도 구할 줄 아는 엄마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항상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기장 2018,  황령산 2018,  해운대 2020




그런 의미에서 홈스쿨은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말만 흐드러진 위선적인 엄마가 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해 가는 유익을 누리게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다고 한다. 이 말은 부모에게 도덕적인 완전함, 무결점을 요구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홈스쿨은 가족이 함께 일상을 공유하면서 생활의 모든 국면에서 삶의 지혜와 기술을 배우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무엇보다 가식 없이 진실해야 한다.


부모이지만 때로는 화를 낼 수도 있고, 부부가 다툴 수도 있고, 실망감을 느끼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순간적으로 내뱉을 수도 있다. 부모로서 참 부끄러운 순간이긴 하나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갈등을 풀어가고, 서로 기다리고 용납하는 용기를 실천할 수 있다면 비록 도덕적으로 완전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의 힘을 가르치는 훌륭한 뒷모습이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자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뒷모습이 털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냥 바라본 우리의 뒷모습이 아이들 마음에 편안하게 남는 한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가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오늘도 진실하게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할 수 있길..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8. 황령산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젊은 간사들이 찍어 보내준 사진이다.



사람들 안에는 앞서가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갈망하고 따르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나도 길을 찾고 의지가 필요했을 때, 내 앞에서 뚜벅뚜벅 자기 길을 잘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기 원했던 것 같다.

나이가 쌓여가고 집에서나 일하는 곳에서나 이제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새로운 세대들이 점점 더 줄을 잇게 되면서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주 생각한다.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아서 이다음에 많은 것을 말해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되리라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많은 말을 하는 어른보다 잘 사는 어른이 되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위로와 잔잔한 메시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 하나 잘 사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야." 지인들과 웃으며 자주 하는 농담이다.

쓸데없이 거창하게 나라와 민족까지 들먹이긴 하지만 ‘잘 사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나는 이것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부모의뒷모습 #잘사는것 #서로진실하게대하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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