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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Sep 28. 2023

엄마 마음에 드는 딸은 없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딸이었다



작은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러 서면으로 나가기로 했다. 먼저 외출 준비를 하고 현관에서 딸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등장한 딸의 패션을 보고 눈이 동그레 졌다.


“너... 그러고 나갈 거니?"

"네, 왜요? “

“운동할 때나 입지, 그거 입고 지하철 타고 시내를 누빈다는 거니?

“엄마, 요즘 이거 입고 다니는 사람 많아요. 얼마나 편한데요~”


그래, 정말 편해 보인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내 눈엔 아무리 봐도 운동복인데... 오래전에 에어로빅 같은 것을 할 때 실내에서만 입던 레깅스 팬츠를 외출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나오다니..


아이의 말대로 간혹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그렇게 다니는 여성들을 볼 때마다 민망하여 눈을 돌리곤 했는데 우리 딸이 그러고 길거리를 활보하리라곤 상상도 못 해 봤다.

당황한 나와 상관없이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윗 옷이 엉덩이가 덮이도록 입었으니 완벽하단다.

현관에서 예쁜 바지도 많은데 꼭 그걸 입어야겠냐 물었다. 오늘의 픽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어 보여 하는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설득했다.

좀 더 가다가 관리사무실 앞에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거라 경고했지만 결국 고집을 꺾은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경고인지 하소연인지 헷갈리는 말을 멈추지 않는 엄마를 한참 지켜보던 아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입지 마라고 하니까 오늘 내 선택이 옳았구나, 더 확신이 생겨요.. 하하

근데 엄마도 옛날에 그랬다면서요, 할머니가 싫어하는 옷만 입었다고... 엄청 짧은 치마 입고...

엄마도 할머니가 입지 말라고 하면 더 입고 싶지 않았어요? “



내가? 글쎄... 나는 어땠더라?

언젠가 아이들에게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었나 보다. 대학생이었을 그땐 (친정 엄마 말씀에 의하면) 손바닥만 한 짧은 치마가 유행했었고, 한참 멋 내고 다니기에 정신 팔린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짧은 치마를 입고 학교로, 교회로, 시내로 거침없이 쏘다니곤 했는데... 재미있으라고 들려준 나의 옛날이야기가 오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선 아이 앞에서 아무런 말을 못 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편 아찔해지는 옷이지만 그땐 짧으면 짧을수록 더 예쁘게 보였고 그런 내 모습에 언짢아하는 엄마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폭풍 같은 엄마의 잔소리쯤은 현관문을 후다닥 닫고 줄행랑을 치는 그 순간만 견디면 그만,  차려입은 짧은 치마는 만족, 대만족이었던...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그런 믿을 수 없는 열정의 '패피(패션피플)' 시절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짧은 치마로, 민망한 레깅스로 엄마를 기겁하게 하기는 나나 내 딸이나 마찬가지이니... 작은 딸의 깜찍한 반격에 그저 웃을 뿐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중, 딸이 전신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딸을 카메라에 여러 장 담았다.

“엄마가 싫어하는 옷 입은 거 그림으로 남겨 놓아야지~”

딸은 요즘 아이패드에 사진을 겹쳐놓고 그림 그리는 재미를 들였는데 굳이 이것을 그림으로 남기려 하다니.. 못마땅해하는 엄마가 자신에겐 그저 재밌기만 한가 보다.



아이에게 사진 찍은 핸드폰을 건네주며 나도 아이의 장난에 맞장구를 쳤다.


"정말 엄마 싫어하는 것만 골라하는 미운 딸이네~

외할머니도 엄마가 이렇게 미웠으려나?

그런데... 알고 보면 네 외할머니도 당신 엄마께는 미운 딸이었을지도 몰라.

세상에 엄마 마음에 드는 딸은 없는 거야~"


"하하, 맞아, 맞아~!"






짧은 치마를 차려입고 엄마 눈치를 보던 딸이

그때의 우리 엄마처럼 딸아이의 아슬아슬한 레깅스가 탐탁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우리 딸도 이다음에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딸에게 폭풍 잔소리하는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말 안 듣는 미운 딸, 마음에 안 드는 딸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photo by NAVER Blog


#엄마와딸 #엄마마음#레깅스#짧은치마#미니스커트#마음에안드는딸#딸#진짜마음#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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