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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Sep 03. 2023

딸과 딸의 남자 친구와 함께 책 나눔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 큰 딸이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기대해보지도 못한 가슴 뛰는 제안…


남자친구와 함께 엄마와 책 나눔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딸은 지금 연애 중이다. 풋풋하면서도 묵직한 인상을 주는 남자친구를 만났고, 둘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나 상대방을 알아가고 함께 할 시간을 계획하는 과정은 설레기도 하지만 풀고 직면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로 가슴앓이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하기도 한다. 대부분 큰 탈 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긴 한데 간혹 두 사람 사이에 먹구름이 끼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다. 그럴 때 풀이 죽은 딸의 모습은 엄마로서는 그냥 넘겨버리기 쉽지 않을 만큼 마음에 남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이 모두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이려니 하고 말없이 기도해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 믿어 왔고 이제 다 성인이 된 두 사람 사이에 엄마라고, 어른이라고 간섭하는 일은 일절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간혹 궁금해져도 모른 척 거리를 두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함께 가지자고 하니 전혀 뜻밖이라 놀랍기도 하면서 두 사람의 소중한 시간의 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초대를 받은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엄마랑 같이 나눔 하는 것 부담스럽지 않니?"
"아뇨, 전혀요. 우리 둘 다 엄마가 같이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큰딸은 엄마와 홈스쿨을 같이 하며 자라서,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은 딸의 남자 친구에게 나는 항상 가르치는 자리에 있던 간사님으로 자연스럽게 인식이 되어 있어서 아마 둘 다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져와서 책 나눔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연애를 하고 있는 딸과 딸의 남자 친구와의 책 나눔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선물처럼 주어진 이 시간을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준비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몇 가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하고 아이들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선택한 책은 헨리 나우웬의 <영성수업>이다. 제목만 보면 딱딱하고 지루해 보이기도 하는 이 책을 선택한 이유를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하나님 안에서 각자가 좀 더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성 신학자이다. 몇 년 전 불안장애로 고통스러웠을 때 그의 책은  나로 하여금 길고 긴 불안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지금도 때때로 삶이 무겁고 버거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때면  그의 책을 펼치고 고독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 힘을 얻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두 사람이 함께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 건강한 한 사람으로 든든히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이 기뻤다.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앞으로 얼마나 풍성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이 찾아낸 한적한 디저트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번잡한 거리의 카페들보다 조용하고 아늑하여 책 나눔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먼저 와서 책을 펼쳐 놓고 읽은 내용을 미리 나누고 있었다. 밑줄을 긋고, 그림을 그리고 공책에 중요한 구절을 인용하여 적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준비해 온 아이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헨리 나우웬의 책 첫 장을 같이 나누었다. 첫 장은 인생의 진리와 행복과 기쁨의 참된 길을 찾는 젊은 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은 진리란 무엇인지, 기쁨과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내 인생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는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외로움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수많은 인생의 질문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그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한다. 아마 아이들도 그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길 바랐기에 나에게 함께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지자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비록 두 사람보다 더 많은 생을 살았음에도 그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해답을 주어야 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헨리 나우웬의 책은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풀리지 않는 질문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품은 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50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알고 싶은 것 투성이인 구도자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나...

그러고 보면 나의 고민이나 아이들의 고민, 나의 추구와 아이들의 추구가 그렇게 다르지만은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을 지우고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궁금한 것이 어찌나 많은지.. 이것저것 진지하게 질문하는 딸의 남자 친구도 예뻤고

집에서는 그저 시크하기만 하면서 남자 친구 옆에서는 수줍수줍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털어놓는 딸도 그날따라 더 예뻤다.

그리고 누구보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엄마를 함께 책을 읽고 삶을 나눌 상대로 불러주어서 고마웠다.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하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첫 시간은 나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좋은 피드백을 남겨서 다행이다. 우리는 2주 뒤에 두 번째 나눔을 가지기로 했다. 2주 동안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만나게 될 그날을 기대하면서 딸과 딸의 남자친구가 보다 더  깊은 마음과 성실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배우게 되길 마음 다해 기도한다.





간곡히 권하노니....
당신의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인내하라....
의문 자체를 애써 사랑하라. 답을 구하지 말라.
당신이 답대로 살 수 없겠기에 답은 올 수 없다. 요지는 모든 것을 살아내는 것이다.
지금은 의문을 품고 살라.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답 속에서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무엇이든 오는 것을 깊은 신뢰로 받으라.
그것이 당신의 의지에서 , 당신의 가장 깊은 존재의 어떤 필요에서 오기만 한다면
그것을 떠안고 아무것도 미워하지 말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헨리 나우웬, <영성수업>, 두란노,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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