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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ul 10. 2023

당신을 기억합니다

'엄마'아닌 꽃처럼 어여뻤던 한 '여자'로...


혼자 계신 친정 엄마를 뵈러 갔다.

이제 80이 훌쩍 넘으신 엄마는 이곳저곳 불편한 곳이 많으실 텐데도, 딸네 오면 주려고 일찌감치 찬거리를 넉넉히 준비해 놓으셨다. 아무거나 주는 대로 맛나게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작은 사위가 좋아하는 파김치에 햇양파 절임까지 통에 하나 가득 담아두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들려주신다.

이제는 이런 거 하지 마시라 해도,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해주겠냐 하시며 뜻을 굽히시는 일이 없다.

먹먹한 마음에 엄마집을 나서며 품에 꼬옥 안아드렸다.

자그마한 우리 엄마, 지난번 안아드렸을 때보다 더 야위어지신 것 같아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스물한 살에 결혼을 하신 엄마는 육십 년 이상을 엄마로 사셨다.

엄마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만난 그날부터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 아닌 엄마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부엌에서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 오른다.

목사인 사위와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나눌 정도로 책을 좋아하시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 남매의 어버이날, 생신날 엄마의 선물은 항상 예쁜 앞치마와 부엌 실내화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우리 엄마를 잘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저 언제나 나에게 엄마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래된 사진 속 앳된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그 어딘가에 존재했던 우리 엄마는 꽃처럼 예쁘고

수줍음 머금은 입가의 아련한 미소는 심지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엄마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다..

꽃 같았던 우리 엄마도 꿈이 있었을 텐데...


원래부터 엄마였던 엄마의 딸로 살 때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던 엄마의 꿈이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흔이 다 넘어서야 처음으로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본 무심하기 짝이 없는 딸에게 엄마는 생각 속에서 조차 희미해진 젊은 날의 꿈을 더듬어 들려주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글을 참 잘 썼거든..

옆집 사는 언니 연애편지도 써주고 그랬다.

책을 읽고 그걸로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해주면

“ㅇㅇ야, 니는 우째 그래 이야기도 재미나게 잘하냐-” 그랬다. 그때는 웃음도 많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그랬는데.. 그때는 여자들한테 누가 그래 해주나.. 시대를 잘 못 타고났지.. “

결말은 항상 쓸쓸하다.



가난이라는 경제적인 상황, 해방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상황, 남존여비의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적인 상황까지…

뭐 하나 호의적이지 않았던 엄마의 시대를 용케 벗어나 나는 이렇게 브런치 작가도 되고  소소한 내 글을 쓰면서 숨통이라도 트고 살아가지만 아무도 관심 가져줄 이없는 자신의 작은 꿈들이 산산이 흩어져 자취를 감추는 광경 앞에 그저 속울음 삼키며 살아와야 했던 엄마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오셨을까...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 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참 늦게도 알았다.







요즘도 엄마 집에 갈 때면 엄마의 작은 좌탁 위에는 항상 책과 성경, 깨알 같이 무엇인가를 기록한 메모지들, 문구류 등이 돋보기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있다.

혼자 계실 때가 많아서 심심하시지 않나 여쭤보면


"나는 심심할 새(사이)가 없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시간이 모자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경보고, 기도하고, 아침밥 드시고 운동하고, 화초에 물 주고, 책 보고.. 간혹 병원에도 가시고, 교회도 가시고...  엄마의 일상이야 뻔하지만 한시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며 지내고 계셔서 안심이고 감사하다.


몇 해 전에는 성경 66권 전체를 매일같이 필사를 하셔서 큼지막한 세 권의 DIY성경을 완성하셨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손에 힘이 없어서 끝까지 하겠나 하셨다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성하신 필사노트는 또박또박 엄마의 성품을 그대로 닮은 글자들이 흐트러짐 없이 수놓아져 있다.





어쩌면 엄마에게 흐릿한 불빛 아래서 혼자 성경을 필사하고, 책을 읽고, 메모하는 그 시간은 '엄마'가 아닌

'여자 김oo'로 돌아가는 시간, 꽃처럼 곱고, 꿈 많았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숙명과 같이 요구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자신을 지키며 여지껏 살아오신 것은 아닐는지...

돌아보면 서글프고 외로운 순간도 많으셨을 테지만 그래도 한평생을 우리 4남매의 엄마로 흐트러짐 없이 곱다랗게 살아오신 우리 엄마를 적어도 나만큼은 '엄마'가 아닌 꽃처럼 어여뻤던 한 '여자'로 기억해드리고 싶다.


그 작은 표현으로 엄마의 오래된 사진에 색을 입혔다.

무채색 같아 보이던 엄마의 지난 날이 예쁜 색을 입었다.


언제 이 그림을 액자에 담아 엄마의 좌탁 위에 올려드려야겠다. 엄마도 당신의 곱고 예뻤던 그때를 더 선명하게 떠올리실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옆에서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고 있는 젊고 핸섬한 아버지까지 덤으로 추억하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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