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ne ryu Jan 16. 2023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

마지막 여정

  수도 없이 상상했던 독일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도시를 떠날 때마다 매번 나의 마지막 날을 그리곤 했다. 생각만으로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막상 그 날이 오니 마지막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에 치이느라, 빨리 눈뜨면 내 방 침대이길 바랄 뿐이었다. 출국 전날까지 출근하고 동료들과의 송별회 후 새벽 한 시에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에 집과 열쇠 반납하고 수지네 집으로 향했다.

  우버 운전수와 대화를 나눴다.

“Heute ist mein letzten Tag in Deutschland nach fast 8 Jahren” (약 8년 간 독일 생활 끝에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자기는 독일에 온 지 25년이 되었다며, 이렇게 독일을 떠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는데 다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했지만 많이 돌아왔다. 그러니 너도 앞으로 어떨지 모른다고 했다. 물론 나는 돌아갈 생각 없이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왠지 위안이 된다.

  

  수지와의 작별은 너무도 아쉬웠다. 항상 서로 의지하는 소중한 친구인데 앞으론 서로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달라질 거란 생각에 얼떨떨했다. 과 동기로 만나 13년째 서로 찌질한 순간, 성장하는 과정, 행복한 순간을 전부 지켜본 소중한 친구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의 선택과 인생을 응원한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도 예전과 같은 마음일 거라 믿는다! 나중에 내가 아기를 낳으면 ‘독일 이모’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공항까지는 회사 과장님이 너무 감사히도 태워주셔서 무사히 왔다. 내가 인턴이었을 때부터 뵈었던 다른 부서 과장님이신데, 언니처럼 잘 대해주셨다. 평일 비행이라 쓸쓸히 혼자 갈까 봐 시간을 내어 공항에 같이 와주실 만큼 배려심이 깊은 분이다.


  공항에 3시간 전에 도착해 아주 여유 있게 입국 수속을 했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비자를 보여달라고 했다.

“ich verlasse Deutschland. Also komme nicht zurück” (나 독일 떠나. 이제 안 돌아와)

왜 가냐고, 공부 끝났냐, 일했냐, 독일인 남자친구 없냐는 시답지 않은 질문에 ‘가족이 그리워’라고 대답할 때 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 “비자 2024년까지 있으니 다시 돌아와도 돼” 라는 아저씨. 떠나는 이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는걸 헤아리는건지 다들 돌아와도 된다고 한다.


  공항 게이트에 앉아 비행기를 바라보며 독일에서의 나날을 회상하는 나…? 상상 속의 내 모습과 현실은 달랐다. 녹초가 되어 빨리 탑승해서 자고 싶다는 생각만 되뇌고 있었다. 또 캐리어가 짐으로 꽉 차 선물을 사지 못한 바람에 면세점을 돌아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탑승 후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와, 나 진짜 떠나네. “ 왜 하필 어둑한 저녁이라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그리 아름답던지. 처음으로 실감이 나 눈물이 찔끔 났다. 그것도 잠시 기내식을 먹고 9시간을 통으로 잤다. 영화 한 편 보고 점심 먹으니 도착이었다.

  

  5개월 만에 온 거라 낯설지 않았다. 그냥 가족들을 오랜만에 봐서 좋을 뿐, 이곳엔 어제도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익숙한 편안함. 내 집, 내 방은 시간이 멈춰있다. 내가 두고 간 그대로. 그저 부모님 눈가에 주름만 더 늘었을 뿐이다. 집으로 가는 길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이고 최고다 최고, 마음 같아선 팔짝팔짝 뛰고 싶다”

라며 기뻐하셨다. 내가 돌아오길 누구보다 바라셨다. 마음이 깊으셔 부담이 될까 항상 넌지시 묻기만 하셨다. “다시 들어올 생각은 없고?” 하곤 말이다. 당신의 손주들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시는 분이다. 너무 늦기 전에 소원을 들어드린 것 같아 기쁘다.

  

  이래저래 사흘간 휴식의 시간을 갖고 이제야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독일 생활을 마치며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고생했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이 가득할 거야 “


  어린 날에 혼자 나와 고군분투한 한편 좋은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 다채로운 경험도 했기에,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다. 아쉬움이란 말로는 부족하고, 슬프다면 과한.. 독일에서의 시간적, 심적 여유나 실질적 혜택 등을 포기함으로 인한 이성적 아쉬움 그 이상이다.

  내가 누리던 오늘이 사라졌다. 내 주위를 둘러싼 선하고 좋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 이미 익숙해진 생활의 루틴은 깨진다. 매일 같이 나가던 회사는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니다.

  내가 지나온 어제가 사라졌다. 독일은 내 청춘을 바친 곳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회사 안팎에서 스스로 느끼는 이질감을 극복하고 이곳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외로운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해 이제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어렸던 내 고생의 여정을 알아주는 공간인 것 만 같아 떠나는 맘이 애틋하다.

  그렇지만 미래를 그렸을 때, 답답한 부분이 있었기에 좋은 선택이라 믿는다. 마냥 슬퍼할 일이 아니다.



회사 마지막 날


  오전 내내 경영층 보고 회의에 참석했다. 매니저와 내가 몇 달간 준비한 거라, 보고하는 걸 보고 떠날 수 있도록 매니저가 스케줄 조율을 해줬다.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벼운 마음이었다.

  오후에는 여러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개별 인사를 나눴다. 다들 바쁘게 일하는데 방해될까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한국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들과 스낵을 사 왔고, 마지막 인사 메일을 보냈다.

케이크가 인기 만점이었다 역시 K-디저트


   여럿이 모여 맛있게 먹고 있는데 왠걸, 지나가시던 전무님께서 매니저에게 송별 스피치를 시켰다. 원래 디지털로 예정됐던 송별회가 즉흥적으로 오프라인으로 시작되었다.

  매니저의 말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그동안 회사에 여러 족적을 남겼고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떠나보내게 되어 슬프다, 보석 같은 사람이었기에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비 오는 창 밖을 가리키며) 하늘고 울고 있지 않느냐


라는 내용이었다. 쪼다같이 울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답사를 해야 하는데 멋들어진 말 따위 떠오르지 않았다.

나 스피치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로 말문을 띄우며

Words cannot describe how I feel now. I don’t feel real and feel like coming to office tomorrow like any other days. I’ve learnt a lot from each of you.

The company meant more than just a workplace to me, it was a community, family and friends. I enjoyed waking up in the morning and coming to office. I feel lucky to be a part of the successful journey of the company in the past years. I joined in 2015 and the company today has changed so much in positive ways thanks to many efforts, therefore I believe it will continue that way. I’m going to miss a lot.


라고 다소 낯부끄럽지만 진실된 말을 했다. 진심이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회사는 내게 회사 이상의 의미였다. 동료들에게 많이 배웠고, 친구들을 사귀었고 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8년간 같은 사무실 같은 층으로 출근하며 여러 긍정적 변화들을 목격했다. 누구의 말과 같이, 박수받을 때 웃으면서 떠날 수 있는 것이 또한 복이다.

  동료들에게 선물과 함께 디지털 송별회 카드를 받았다. 너무너무 예쁜 말들로 가득해서 몇 가지 옮겨 적어보고자 한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또 동료들이 마음이 따뜻해 이렇게 봐준 것 같아 고맙다. 새로운 곳에서도 나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까, 내가 배운 것들과 내 장점을 잘 펼칠 수 있을까 다소 걱정은 되지만..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이 메시지들을 되새기며 다음 챕터를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딪고 싶다!


I always respected your way of working - calm, quiet, yet professional, responsible, skillful, very kind, polite, and in control of your R&R.

I truly believe an employee like you, merging best of both Korean side and insight into European business, would be an important asset.


Stay the lovely, motivated, kind and smiling person you are today and keep infecting people around you with your general life attitude :)


Now that you are leaving, ㅇㅇㅇ will suffer heavy losses in kindness, smartness, fashion-taste, positivity, and in many more areas. It is your time to be the sun* of another planet system, I am sure you will shine there even brighter. Wishing you the best in your new life!


we will all miss you, ㅇㅇㅇ will be different without you. I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brought to the company but also to the people. Your values are precious, keep them well alive, back there in Seoul

  

We are very proud to see the impressive, well-balanced, considerate woman that you have become and could only hope that you continue to bring Sun into more peoples lives as you have into ours!!


I enjoyed every team meeting and work discussion with you because you always have been kind, positive, resilient and knowledgeable.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생활 필수 어플 추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