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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May 30. 2023

부모도 한때 청춘이었다.

Once upon a time

  서른 셋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덧 18년의 세월을 함께한 이 집에는 그 간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다. 내 방 역시 어린 시절이 가득한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이었다. 책상 유리 아래엔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천호동 한일시네마에서 봤던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 포스터가 끼워져 있고, 생일 선물로 받았던 하얀색 테디베어 목에는 친구들과의 우정 이니셜 목걸이가 걸려 있다. 책꽂이엔 세일러문과 웨딩피치부터, 어린 나에게 '죽음'의 개념을 처음 가르쳐준 동화책까지 - 멀쩡한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냐며 며칠 밤을 울고 불고 하게 만들었던-. 책상 서랍에는 한때 유행했던 미키 마우스 모양의 아이리버 mp3와 도라에몽 동전 지갑,  친구들과 주고 받은 엽서와 쪽지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독일에서 간간히 한국으로 휴가 올 때도, 언제나 변함 없는 시간이 멈춰있는 내 방과 집은 포근한 안정감을 줬다.

  오래된 것 투성이인 본가는 흡사 박물관이다. 모아두기 좋아하는 아빠의 서재에는, 하도 오래되어 손대면 책장이 바스러지는 한글보다 많은 한자들이 세로로 줄지어 있는 책들이 한 벽면을 채운다. 그뿐인가, 학교까지 늦어가며 열심히 모았다는 6-70년대 우표들도 한 박스다. 한켠엔 나와 오빠의 어린 시절이 담긴 8mm 캠코더 테이프도 있다. 현관 신발장엔 4학년 7반 XXX 써있는 배구공과 혼자서도잘해요 캐릭터 장우산도 있다.

  이런 참에 온 집안을 정리하게 됐다. 비움의 마음으로 필요없는 것, 묵혀있는 잡동사니를 죄다 버렸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렇게 다 버리면 나까지 버리는거 아니야?"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아빠의 농담에 엄마는 "오죽하면 이사갈 때 남편들 버림 안 받으려면 강아지라도 안고 앉아 있어야한다잖아"라고 받아쳤다. 이것이 60대의 유우머인가. 맵다 매워. "아빠, 정신 잘 차려, 까닥하다간 눈 뜨면 상자 안 일수도 있어."라고 한마디 살포시 얹었다.

  정리하다 엄마의 간호 대학 시절 노트를 발견했다. 지금과 똑같은 글씨체로 아동 간호학, 성인 간호학 등을 필기한걸 보니 새삼 엄마도 대학생이었음을 기억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엄마는 당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라 많은 학생들을 보았고, 최루탄에 머리를 맞은 이한열 열사도 당시 일이라고 한다.. 근무하던 병원에서 86년 4월에 오빠를 출산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출산 직전까지 교대근무를 하고 바로 출산했다고 한다. Incredible 80년대. 출산 후, 할머니께선 개헌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헤치고 갓태어난 오빠를 품에 안고 집까지 가셨다고 한다. 어린 오빠를 두고 출근하는 매일 아침은 전쟁통이었다고 한다. 배란다 난간을 붙잡고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꺼억꺼억 울었다고 한다. 오빠가 이제와서 하는 얘기인데, 유치원에서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냈단다.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 자동차 등 근사한 선물을 적기 바빴는데 오빠는 공책 10권을 써냈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박한 선물을 바란건, 양육자의 부재에 기인한 애정결핍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엄마는 5년 뒤 나를 낳고는 일을 그만두셨다. 덕분에 난 사랑과 관심을 부족함 없이 받는 유아기를 보냈다. 엄마의 경력단절. 그것의 의미에 대해 최근까지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출산, 퇴사. 모두 엄마의 선택이지만, 만약 나를 낳지 않았다면 엄마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혈관을 기가 막히게 찾아 병원에서 주사 제일 잘 놓기로 유명했던 사람인데, 대학병원 간호사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이어갔을테다. 다시 일을 시작하셔서 지금도 작은 병원에서 현역으로 뛰고 계신 것 대단하지만, 지금보다 더 수월했을텐데 싶다. 그래서 그 때 엄마의 선택은 실은 선택이 아니라 희생이었다. 엄마의 희생이 그 가치를 잃지 않게 좋은 딸 노릇을 하리라.

  엄마의 대학노트 바로 옆엔 아빠의 20대 시절 일기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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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화를 내지 말며 절대 침착하라. 조금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며 항상 겸손하라.

굳센 확신을 지니며 조금도 두려워 하지 말라.

너무 성급히 굴지 말며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그리고 실력을 쌓아라.

열심히 생각하며 일하라. 그리고 뛰어라.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마라.

뛰어라 뛰어라 용감히 뛰어라 그리고 힘껏 부딪혀라

헤쳐라 무조건 헤쳐나가라. 뛰어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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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도 열정과 불안 속에 휘청이고 다잡던 청춘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일기장이다. 내가 했던 많은 고민들을 아빠도 했고, 또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철학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들에 다소 놀랐다. 다음 글에서 몇 구절을 옮겨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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