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파티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과유불급)
S 문화센터 영어반 회원들은 대부분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다. 각 동마다 가까운 곳에 웬만하면 영어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멀리에서 찾아오신 분이 있었다. 본인에게 딱 맞는 회화수업을 받고자 산 넘고 물 건너 이곳저곳 물을 보고 여기까지 오셨다. 처음부터 열정과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열정이 지나치면 누군가는 그 뜨거움에 델 수도 있다.
N님은 오자마자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좋은 의도였다. 더 공부하자는. 사람들은 호응했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같이 모여서 회화연습하자고 하니 땡큐 하며 모여들었다. 그렇게 한 대여섯 명을 모아서 일주일에 세 번을 만나 회화연습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또 다른 영어수업이 생긴듯한 구조였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같이 모이시는 분들 열정에 감탄했고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런데 한 편으론 걱정이 됐다. 언어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초반에 너무 올인하면 활활 타고 재만 남는 것을 봐왔기에.
얼마 뒤 무엇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N님은 정확한 영어구사를 위해선 문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분들에게 본인이 공부한 부분의 문법을 가르치지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본인의 공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신이 나서. 이에 회화연습을 하고 싶었던 다른 분들은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주 모이기도 하거니와 한 번 모이면 2~4시간씩 너무 오래 모여서 하니 모두들 지치기 시작했다.
수업 후에 몇몇 분이 나에게 조용히 묻기 시작했다. 문법을 그렇게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냐고. 그분들은 N님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소모임에서 빠지기도 곤란한 처지가 된 것 같았다. 급기야 몇 분은 소모임 하느라 문화센터 수업엔 자꾸 결석까지 하게 되었다. 뭔가 해야 했다.
"선생님, 회화를 하는데 문법을 깊게 파야하나요?" 급기야 소모임에 소속되었던 한 회원분이 빠져나올 구실을 얻기 위해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해 오셨다.
"너무 문법만 파고들면 내가 문법적으로 맞나 염려가 돼서 오히려 입을 열 수가 없게 돼요. 그러니 회화할 때 필요한 문법 부분만 불러들여서 간단히 공부하고 오히려 회화연습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이 좋지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N님을 겨냥한 회원분의 불만에 찬 질문에 난 N님 방법을 공개적으로 비평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내 회원분 공부를 내가 이끌고 도와주고 있는 입장에서 누군가 내 역할을 빼앗아가서 하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도 회원분이 너무 많은 input에 지쳐서 영어를 좀 쉬어야겠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위기의식마저 느껴졌다. 말하자면 작은 쿠데타를 일으킬 조짐이 보였기에 N님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것이다.
내 한마디에 N님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듯했던 소모임 회원분들이 힘을 얻고 이제 N님이 강력히 주장하는 파고드는 문법공부에서 빠져나올 구실을 얻은 것이다. 눈치 빠른 N님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하신 것인지 갑자기 다른 시간과 겹쳐서 수업을 잠시 쉬겠다고 하셨다. 그런지 벌써 세 달째... 그런데 단체 카톡은 탈퇴 안 하시고 메시지는 다 체크하고 있으셨다.
곧 크리스마스다. 난 회원분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영어게임을 준비하고 캐럴송과 상품을 준비하고 파티 날짜를 공개했다. 그런데 N님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말 더 이상 우리를 안 볼 거면 카톡에서 탈퇴하실 텐데 다시 돌아오고 싶은 여지를 두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인 자존심에 그냥 스탑 했지만 누군가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어에 대한 열정이 그리 빨리 사그라들 리가 없지 않은가.
이제 내가 덕장이 될 시간이다.
그래서 N님을 초대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반응은?
Yes! 그녀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