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의 피터팬

나르시시스트면 어때?

by 미니 퀸

첫날 그녀는 상큼한 레몬향으로 다가왔다.

'샤랄라랄라~ 샤랄랄라~' 광고 속의 긴 머리 아가씨처럼 얇은 노란색 상의를 바람에 날리며 나비처럼 하늘하늘 날아왔다. 바람 없는 교실에 바람을 일으키는 그녀가 들어올 때 분명 들었던 것 같다. 익숙한 BGM을. 샤랄랄라라~!


등장도 화려했지만 그다음 시간부터 이어지는 패션쇼에 S문화센터는 런웨이가 되었다. 그녀는 항상 수업 시작 시간 5분쯤 지나서 요란스러운 우아함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새로운 모자를 썼다고, 또 다음 날은 새로운 스카프를 맸다며 중앙에 있는 빈 공간을 한껏 활용해서 마치 spot light을 받고 있는 여주처럼 여유 있게 한 바퀴 빙그르 돌았다. 어이없으면서도 그 모양새가 우스워서 수업이 끊겨도 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모든 이의 주목을 받기 위해 일부러 5분씩 늦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교묘한 뻔한 계획은 효과만점이었다.


그녀는 silver spoon을 물고 태어났다. 고령이지만 아직도 현직에 계신 의사 아버지를 둔 그야말로 금수저 집안에서 곱게 자랐다. 큰 어려움을 한 번도 겪지 않은 것 같았고 평온하다 못해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교수인 남편은 프로젝트로 항상 바빴다. 그녀는 주로 어머니랑 시간을 보낸다 했다. 물주인 엄마랑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면 지갑은 열 필요가 전혀 없으니 모친과 날마다 음식점에 가고 백화점에 간다고 했다.

그녀가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격하게 칭찬했다.

"N님은 남 험담을 전혀 하지 않네요. 이런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랬다. 흔치 않았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에 남에게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험담도 질투도 남에게 관심 있을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 외 사람에게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항상 이야기의 중심이 돼야 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며, 심지어 누군가의 심각한 고민도 아픔도 가볍게 치부했다.

"왜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프지?" 누군 아프고 싶어서 아프겠냐만 건강하고 근심 없는 그녀에겐 모두 이해 못 할 일이었나 보다.

"난 스트레스 같은 거 안 받아~"로 항상 결론이 나는 대화법에 사람들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를 대하는 기류는 변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아니면 그냥 신경 안 쓰는 건지, 항상 해맑은 모습으로 본인의 자리를 지켰다. 패션쇼는 진작에 막을 내렸지만.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5~6년을 같이 한 정이 있는데 왜 일언반구 없이 그냥 사라지셨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떤 회원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운한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네버랜드로 돌아간 것이다.

'아, 역시 피터팬으로 네버랜드에서만 살면 세상의 다른 어른들하고는 어울리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평범한 판단이 제일 먼저 머리를 지배했지만 곧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 인간의 목적을 행복에 둔다면,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 근심걱정 없는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피터팬은 나름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내가 사는 세상은 네버랜드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세상은 지금까지 네버랜드였기에 끝까지 네버랜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난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 질투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의미니, 아픈 만큼 성장한다느니, 불행을 통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느니, 이런 철학적인 사유를 강요하면서 피터팬을 네버랜드에서 나오게 하려고 억지를 부렸던 것은 아닐까?


등 따습고 배부르고 본인이 행복하다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 사회 안에서 그녀를 나르시시스트라 부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한 네버랜드의 피터팬으로 이 땅의 흙을 밟지 않고 끝까지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 모공 속으로 하나하나 고통을 쑤셔 넣고 있는 이 추운 겨울 아침, 따뜻한 네버랜드에 있을 그녀의 어린 웃음이 오늘따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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