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업을 묻는다는 것

by 미니 퀸

S 문화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면 이름과 본인이 거주하는 곳은 이야기하신다. 더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자녀가 몇 명 있는지까지는 이야기하는데 본인이 하는 일이나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S 문화센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난 가끔 혹시 비슷한 분야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이 공통점을 찾으면 쉽게 반에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재 하는 일이나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묻곤 한다. 더구나 알고 있으면 영어시간에 그분의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덕을 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약사이신 분께는 건강지식을 얻을 수 있고 자동차 관련 분야에 계셨던 분께는 자동차를 살 때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참석하는 교회는 영어예배가 있는데 꽤 규모가 커서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주변에 앉아 있는 분들과 3~4명씩 짝을 이루어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간단하게 3가지를 나눈다. 이름과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지금 하는 일. 만약 현 상태에 직장을 구하고 있다면 그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떤 판단도 끼어들 필요가 없다. 그냥 사실이 그런 걸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문화는 그게 아닌가 보다. 며칠 전에 젊은 여성분이 청강을 들어왔다. 여기가 본인에게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청강을 들어왔다고. 꽤 영어를 잘하시는 분이었다. 느낌은 영어예배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분. 반가운 마음에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쭤봤는데 지금은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분야의 일을 찾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겨우 병원 관련일이라고, 간호사는 아니라고, 거기까지만 말하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파고들었나?


교회는 모두가 friendly 한 특수상황이라 서로 뭐하는지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조사를 좀 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 원어민 강사들 4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결같이 모두 초면에 직업을 묻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답변이다. 단지 연봉이 얼마인지 묻는 것은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것은 초면에 누구나 흔하게 묻는 질문이라고 했다.


좀 시간이 흘러 교재에 직업을 다루는 부분이 있었는데 문득 그때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른 회원분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많은 분들이 처음부터 직업을 묻는 것은 좀 무례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그 이유도 함께 말씀해 주셨다. 한국에는 직업의 귀천이 있어서 좋은 직업이면 잘난 척하는 것 같고 본인의 생각에 그저 그런 직업이라면 비교당할 생각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그랬던가? 유독 마지막 순간까지 왕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잘 안 풀어놓는 분들이 S 문화센터엔 좀 있었다. 알고 나면 자랑스러운 직업인데. 평균적으로 교수님들이 주로 말씀을 잘 안 하시다가 나중에 털어놓으신다. 교수님이면 부끄러울 것도 그리 자만할 것도 아닌 거 아닌가?


젊은 사람은 안 그럴 것 같았는데 말하길 꺼리는 걸 보니 청강 들어왔던 분은 무슨 일을 하는지 더 궁금해진다. 의사라면 잘난척하는 것 같아 말 안 한 것이고 그냥 관련 사무직이면 의사나 간호사와 비교돼서 말을 안 하려고 했던 건가? 아니면 좀 특이한 분야라 질문이 더 이어질까 봐 미리 차단한 것일까?


아무튼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난 약간 사이에 끼어있어서 우리 S 문화센터 회원님들께 예의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도 함께 배우는 것이기에 언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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