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뒷굽을 광내는 남자

모든 일에 진심인 남자

by 미니 퀸

우리는 그를 '대령님'이라고 부른다. 자세는 정말 군인출신답게 올곧고 말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씀하신다. 성격 급한 나와는 달리, 생각하고 말씀하시느라 말하는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럽고 높낮이가 없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을 맨 마지막으로 나오신다. 책상 줄 맞추고 의자 집어넣고 떨어진 휴지 주워 쓰레기통에 넣느라고.


군대에서는 모두들 대령님의 뒷모습을 한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대령님은 구두 뒷굽까지 반짝반짝 광을 냈기 때문에. S 문화센터에 오실 때도 항상 빛나는 구두 뒷굽으로 대령님만의 아우라를 만든다.


어느 날 언니가 근무하는 병원 갤러리를 맡아서 운영해 줄 화백을 찾고 있었다. 혹시 아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는지 부탁을 받았기에 능력자들이 모여있는 S 문화센터 회원분들께 여쭤봤다. 똑같은 요청에 각기 다른 반응들이 왔다.


미대교수님을 아내로 두신 분에게서 들은 답변은 미술 작품 전시하는 관련 사이트가 있으니 그곳에 들어가 봐서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이트 언급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터넷을 몇 번 뒤져보다가 갈피를 못 잡았다.


다른 한 분은 친구가 그 분야에 있다고 해서 여쭤봤다. 그런데 그 친구는 워낙 거물이라서 바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령님은 평소에 미술 관련 쪽 종사자가 아니라서 묻지 않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께 문의하는 걸 들으셨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청도 안 한 답변을 가지고 오셨다. 여차저차 알게 된 화백이 있다고 하셨다. 핸드폰으로 그분의 작품을 보여주시면서 이런저런 전시를 했고 작품은 이러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화백에게 상황을 말해 놓았으니 contact 해 보라고 전화번호까지 주셨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때 평생 곁에 두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언제나 모든 일에 진심이신 대령님은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려고 노력하신다. 매주 일요일 군인청년들을 위해 예배로 섬기시고 코스코에서 엄청난 양의 먹을거리를 사서 매번 청년들을 내 자식같이 먹이신다. 매번 어떻게 그렇게 하시냐고, 그것도 자비를 들여가면서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 본인은 감사하게도 연금이 넉넉히 나온다고,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예수님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렇게 다정다감한 대령님이 손녀딸을 보기 위해 한 달 미국에 가 계셨다가 돌아온 뒤 큰 결심을 하시게 되었다. 미국에서 아들 내외가 둘 다 직장생활을 하기에 미국에 계시는 동안 어린 손녀를 day care 센터로 ride 해 주시는 일을 잠시 하셨다. 한 달 뒤 한국에 돌아와서 매일 아침 스카이프를 통해 미국에 있는 손녀딸의 Good night! 인사를 듣는 것이 이제 아침의 낙이 되었다. 손녀와 사랑에 빠지신 대령님은 이제 적어도 5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사랑하는 손녀 ride를 도맡아서 해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셨다.


물론 좋으신 분을 가까이에서 못 보게 되어서 안타깝긴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틀림없이 인자한 할아버지 역할을 잘 해내고 계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연 5년 후에 S 문화센터를 통해서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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