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과 노부의 진심

보이스 피싱

by 미니 퀸

"여보세요?"

"... (뒷 배경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잘 들어! 지금 당신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있어.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당신 아들은 온전하지 못할 줄 알아!"

"네? 대체 무슨... 왜 내 아들이 거기에."

"니 자식 놈이 빚을 잔뜩 져놓고 안 갚아서 이 놈 몸의 일부를 떼가려고 잡아왔다."

아들 녀석이 몇 달 전에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좀 쥐어줬는데 더 필요하면 나한테 오면 될 것이지 사채를 썼단 말인가?

"흑흑, 아버지~ "

"니 아들 목소리 안 들려"

"들, 들려요. 어, 어떻게 하면 되지요? 제 자식이 진 빚이 얼마예요. 제가 다 갚을 테니 제발 내 아들 풀어 주세요."

"그럼, 내 말 잘 들어! 지금 집에 현금 가진 거 얼마나 있어?"

"집에 현금은 별로 없는데요."

"그럼 통장에서 지금 당장 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어?"

"어~한 삼천 정도는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절대 전화 끊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네, 네."

"일단 가까운 은행으로 가. 얼마나 걸리지?"

"요 앞에 은행이 있어서 오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요."

"그럼 나랑 계속 통화하면서 걸어. 지금 당장!"

"네, 네"

"은행에 가서는 전화기 켜 둔 상태로 외투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어둬. 허튼짓 하나 내가 계속 듣고 있을 테니. 전화 끊는 순간 네 아들 몸이 성하지 못할 거라는 것만 알아둬! "

"네, 네!"

"은행에 가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일단 뺄 수 있는 돈 다 현금으로 바꿔. 현금으로 바꿔서 내가 그다음에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돼."

'네~ 네. (거의 뛰다시피 해서 은행에 도착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저~ 은행에 다 왔어요."

"그럼 전화기 켜 둔 상태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표시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창구로 가서 돈 현금으로 찾아."

아침이라 은행은 한산했고 난 빈 창구로 그냥 바로 걸어가 앉았다.

"저~ 돈 좀 찾으려고 하는데요."

자주 봐서 낯이 익은 은행직원이 친절하게 묻는다.

"안녕하세요, 얼마나 찾으시게요?"

"이, 이 천만 원이요."

"네~ 어떻게 해 드릴까요?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시나요?"

"아니요. 현금으로 주세요."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본다.

"네?... 그럼... 수표로 드릴까요?"

"아니요, 현금으로요."

의심스럽다는 듯이 직원이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묻는다.

"혹시, 이상한 전화받으셨나요? 보이스피싱 아닌가요?"

"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쓸 때가 있어서 그러니까 그냥 현금으로 빨리 주세요."

"어~ 잠깐만요. 제가 확인 좀 해 볼게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불편하게 앉아 한참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가 울린다.

어? 계속 통화 중인텐데 어떻게 전화벨이 울리지?

엉겁결에 전화기를 주머니에서 꺼내니 전화가 어느새 꺼져있고 화면에 '아들'이 쓰여 있다.

"아버지, 어디세요? 왜 계속 전화를 안 받으세요."

"야 이눔아, 너 괜찮을 거야? 너 어디냐?"

"네? 직장이지요. 무슨 일 있으세요?"

울음이 왈칵 쏟아지는 바람에 난 자리를 박차고 급히 은행에서 밖으로 나와야 했다.

(J님의 이야기)




S 문화센터 영어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한바탕 소동은 지나갔고 J님은 차분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다른 회원분들에게 마치 오래 전에 지나간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씀하셨다. 은행직원의 의심하는 소리에 범인이 꼬리가 잡힐 것 같아 전화를 중간에 급하게 끊었나 보라고. 그때 마침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 거라고 담담히 말씀하시는 J님.


그런데 삼천만 원을 날릴 뻔해놓고도 아들을 위한 돈은 전혀 아까운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하신다. 주변인들은 삼천만 원을 사기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때 J님은 아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전재산을 다 주더라도 아들만 무사하다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그런 마음으로 은행에 달려갔다고 하시는 J님의 모습에 우리 시대 부모의 모습이 겹치며 코끝이 찡해졌다.


J님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은 식구들은 아무도 J님의 어리숙함을 탓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도 아들에게 큰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했고, 아들도 아버지에 대해 감동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마흔이 훌쩍 넘은 아들은 아버지를 꼭 껴안고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J님은 이번 사건 덕분에 아들에게 점수를 땄다고 싱글벙글 웃으시면 자랑하셨다.


주변인인 우리들만 보이스 피싱이었는데 돈을 안 잃어서 다행이라는 어설픈 코멘트를 날렸다. 아들의 안위에만 관심 있는 J님은 그런 것에는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데.


keyword
이전 08화텃새와 텃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