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문화센터의 평균연령은 65세다. 그러다 보니 쑤시는 무릎은 기본이요, 정기검진 외에도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단연코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이고 오고 가는 최대 정보는 건강에 관한 정보다.
어느 찬란한 5월이었다. 그날따라 새하얀 빛이 창문을 통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빛을 뚫고 빛보다 더 하얀 신사가 다가왔다. 염색하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와 훤칠한 키. 자연스러운 흰머리는 그분을 학자처럼 보이게 했다. 금방 구매한 것 같은 다림질선이 살아있는 하얀 와이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으신 신사분은 꼿꼿한 허리와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멋진 신사가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J님 눈이 동그래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내미셨다. 희끗머리 신사분도 놀라면서 J님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셨다.
"오, 이게 누구야, K 아니신가!"
"아니, 어떻게...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네요."
알고 보니 두 분은 M회사에서 선후배로 같이 일했던 사이였다. 두 분 다 은퇴하시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영어회화반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우연이. 역시 배움은 의미 있다.
그날부터 K님은 성실 그 자체였다. 그는 언제나 허리를 쭈욱 펴시고 바른 자세로 앉으셨다. 책상 위 교재와 스프링 노트 옆에는 빨강, 파랑, 검은색 볼펜이 나란히 놓였다. 복습은 기본, 매번 예습으로 잘 무장하고 오셨다.
공학도였던 K는 영어를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낱낱이 파헤치는 작업을 자주 하곤 하셨고 더 이상 영어란 놈이 쉽게 분해되지 않을 때는 K 이마에 골이 파였다. 그러다 궁금증이 해결되면 원하는 답을 얻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곤 했다. 그 미소를 보고 싶은 마음에 K의 미간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즉시 K를 위한 영어해부 작업에 착수했다.
하루는 한참 수업 진행 중 온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섭씨를 사용하지만 교재는 미국식 영어라 화씨로 쓰여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전환하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난 그냥 무식하게 화씨에서 30을 뺀 다음에 반띵~ 해버리는 것으로 퉁치는 지극히 2차원적인 방법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우리 K님은 공학도!
부산 사투리가 살짝 묻어나는 서울말씨로 나를 부르신다.
"선생님~ 그거는요~
섭씨온도에다가 오분의 구를 곱해갔고 그거에 32를 더하면 화씨입니다."
"네? 오분의 구에다가... 어..."
"제가 공식을 화이트보드에 써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지요~."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나오셔서 거침없이 쓰셨다.
(섭씨온도°C × 9/5) + 32 = 화씨온도°F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는 그분의 만족한 얼굴엔 절제된 뿌듯함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영어수업을 통해서 그리고 커피타임을 통해서 그분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어떻게 상경해서 자리를 잡으셨는지,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 자녀들을 의사로 만들어 놓으셨는지, 집에 대한 투자로 이제는 안정적인 노년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 영어에 대한 열정 등, K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깔끔한 성격과 매너를 K가 가지고 있기에 난 더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결석을 하셨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J에게 혹시 결석 이유를 아시냐고 여쭤봤지만 모르신다고 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모든 규칙들을 강박적일 정도로 지키시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계시기에 미리 연락도 없이 결석할 분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렇게 며칠을 더 결석하셨다가 수업에 나타나셨다. 너무나 반가웠다. K는 자꾸만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 미안할 게 전혀 없는데.
그런데 수업시작한 지 30여분 쯤 지나서 K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고 땀방울이 물줄기가 되어 얼굴에서 마구 흘러내렸다. K는 휘청거리면 급히 화장실로 향하셨다. 땀을 다 닦아내고 잠시 몸을 추스르시고 십여 분 후에 돌아오셔서 또 거듭 죄송하다고 하셨다. 괜찮냐는 물음에 이제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오 분쯤 침착하게 수업에 참여하시는 가 싶더니 다시 또 비 오듯 식은땀이 흘렀고 K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으시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시며 도저히 안 되겠다고 급하게 짐을 싸시고 죄송하다며 자리를 뜨셨다. 어떻게 도움을 드릴 새도 없이 휙 떠나는 K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인연들이 이어지고 S 문화센터에서 맺어진 인연은 인생 후반전에서 이루어지기에 더 소중하고 가슴이 짠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크게 웃어줄 수 있고, 조그만 아픔에도 눈시울 적시며 기댈 어깨를 빌려줄 수 있게 된 공동체.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은 저만치 멀어졌고 자녀들도 다 자기 몫을 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희로애락의 파도를 경험하고 이젠 건강만 챙기면 되는 여유도 생겼다. 바쁘게 지나쳤던 꽃도 이젠 멈춰 서서 자세히 볼 시간이 있으니 흘러가는 순간순간을 잡아두고 싶은 심정일게다. 그러기에 더욱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