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의 외침

연실님의 비밀

by 미니 퀸

S 문화센터엔 10년 넘게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시는 분도 있지만 잠깐 나왔다가 떠나시는 분들도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영어를 포기하시는 분들의 생각은?

1. 난 사회에서 한 자리하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날 알아주지 않는군. 쩝~ 딴 곳으로 가자.

2. 저 인간은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지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저 인간 꼴 보기 싫어 그만둬야겠군.

3. 오~ 다들 영어를 왜 이렇게 잘해? 못 따라가겠구먼.

4. 어~ 조용히 들으려고 했더니 저 강사는 왜 자꾸 시키는 거야. 공부하려니 골치 아프다. 춤이나 춰야겠다.

5. 여기 왜 이렇게 노인들이 많아(본인도 그리 젊진 않지만 내 나이는 안 보이는 법). 내가 여기 있기엔 내 젊음이 너무 아까워.


그럼 멤버로 남아있는 분들의 특징은?

1. 오~ 훌륭한 분들이 많군. 배울 점이 많겠다. 좋다.

2. 음, 좋은 충고야. 이렇겐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부분은 내가 좀 고쳐야겠다.

3. 와~ 영어실력도 좋고 열정도 넘치시는군. 나도 열심히 해서 실력을 올려야겠어.

4. 와우, 자꾸 시키니까 좀 떨리고 긴장되긴 하지만 확실히 영어가 되네. 이렇게 active 하게 수업에 참여시키는 강사는 처음이야. 아주 맘에 드는군~ ^^

5. 나이 들어서도 불태우는 이 배움의 열정~ 정말 존경스럽다. 나도 이들처럼 멋지게 나이 들어가야지.




쉽지 않은 일이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움을 이어가는 회원님들의 멋진 모습에 난 매번 감동을 느낀다. 어디 간 들 100% 맘에 드는 곳이 있겠는가. 혹시 처음엔 맘에 들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또 불만이 생길 수 있는 법. 그래도 이것저것 고려해 봤을 때 분명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 쪽으로 저울이 기울었다고 판단하기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영어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있어야 배움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 연실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동안은 듣기만 할 테니 절대 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신 회원님. 이제 벌써 1년 6개월 정도 지났으니 이제 6개월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연실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궁금해하곤 했다.


하루는 연실님이 수업 후에 나에게 다가오셔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선생님,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네, 왜 그러시죠?"

"선생님이랑 오늘 커피 마시고 싶은데요. 물어볼 것도 있고... 한 30분 정도 괜찮을까요?"




짧게 가지려 했던 커피타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연실님이...

가슴에 묻어뒀던 아픈 과거를 그 자리에서 털어놓으셨기 때문에.


연실님은 어린 나이에 혼자 아기를 낳게 되었다. 어린 핏덩이를 도저히 혼자 키울 수 없어서 기관에 잠시 맡겨놓는다는 게 세월이 좀 흘러버렸다. 나중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딸을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연실님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딸내미는 고아로 서류상 처리가 된 후, 이미 해외로 입양되어 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울고 울고, 가슴을 치며 또 울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딸을 가슴에 묻고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연실님은 나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자식들도 다 키워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TV 스크린에 해외입양 갔던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친부모를 찾는 방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연실님 가슴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물었다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숨겨진 상처가 가슴을 짓눌렀다. 방송에 딸 나이 또래의 여성이 나올 때면 혹시나 해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든 한 생각에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 딸이 날 찾아와 만났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때부터 연실님의 미션은 영어가 되었다.




연실님이 딸을 만날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실님이 영어수업에 와서 앉아있는 일은 연실님의 간절한 기도다. 비록 입을 열어 영어로 대답할 용기는 없으시지만, 매번 자리를 지키시는 연실님 기도가 이제 내 귀에는 또렷하게 들린다. 이미 수없이 반복했을 용서를 구하는 기도이며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딸 소식을 들었으면 하는 간구의 기도가 교실을 가득 메우기에 난 이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연실님은 침묵 속에서 소리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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