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 퀸 Mar 22. 2024

무무와 함께 - '빠르다'고?

빠르다 vs 이르다

무무와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무는 마치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나와 친구였던 것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무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 속박, 관습, 고정관념으로부터 무장해제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무무가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나: 무무야, 오랜만에 같이  먹으러 오니까 기분이 좋다. 그지? 그런데 밥 먹기에 빠른 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네.

무무: 빠른 시간? 아니지. 이른 시간! 밥 먹기에 이른 시간이라 그렇지.

나:? 이른 시간??? 그래, 그래. 그럼 이른 시간이라고 처~. 무무야, 나 오늘 개학 첫날이라 평소보다 학교에 빨리 도착했어.

무무: 그래? 얼마나 빨리 갔기에? 몇 분 걸렸는데?

나: 응? 뭐 가는 건 보통 때랑 똑같이 20분 걸렸지.

무무: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다면서?

나: 그래, 도착하니까 8시다고. 평소보다 15분이나 빨리 도착한 걸.

무무: 아~ 평소보다 이르게 도착했다는 말이구나.

나:? 너 왜 자꾸 내 말을 바꾸고 그래? 그게 그거지. 이거 괜히 기분 나쁘네.

무무: '빠르다'와 '이르다'는 서로 다른 말이야.

나: 뭐? 다르다고? 어떻게 다른데?

무무: '이르다'는 기준을 잡은 때보다 앞선 것을 말하고, '빠르다'는 움직이는 속도를 나타내지.

나: 엥? 그래? 아~러니까 저녁 먹기에 이른 시간인 거고, 난 평소보다 학교에 이르게 도착했다고 말해야 한다는 거지? 뛰어서 학교에 간 게 아니고 평소처럼 걸었으니까. 그저 집에서 일찍 나왔을 뿐. 움직이는 속도가 빠른 게 아니고 기준으로 잡은 시간보다 앞서서 학교에 도착한 거니까...?!

무무: 그렇지.

나: 듣고 보니 난 아무 생각 없이 '빠르다'는 말을 '이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마구마구 썼구나. 에구~

무무:...

나: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무무, 오늘 좀 덥지 않니? 이제 겨울 옷을 벗어야 하나? 올해는 작년보다 봄이 한 달 빠른 것 같은데~?

무무: 응? 어~

나: 뭐야, 뭐야. 그 눈빛은? 내가 또 틀린 거야? 가만있어보자... 움직이는 속도가 아니고 기준보다 봄이 앞서서 온 거니까... 아~ 그러네. '봄이 이르게 왔다'라고 해야 하네... 오케이! 올해는 작년보다 봄이 한 달 이르게 온 것 같다고 말해야 하는구나.

에이, 그런데 이거 엄청 헷갈리네. 머릿속에 허리케인이 들어와 뱅뱅 돌아가고 있어. 어지러워~!


무무는 국어 교수님처럼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아는지 도저히 알 순 없지만 자꾸 내 말을 끊으니 좀 짜증이 난다. 아닌가? 고마워해야 하나? 

복잡한 내 속마음을 읽고 있는 듯, 무무는 내게 할아버지 같이 푸근한 미소를 살포시 날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무와 함께 - '틀리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