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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y 14. 2024

계약 결혼

2070년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까지 늘어났으나 출산율은 0%에 가까워지자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사실 뭔가 빨리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초고령화된 사회가 결국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거란 미래학자 박명수 박사의 경고가 잊어버릴만하면 미디어에서 반복되곤 했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하늘을 뚫을 정도니 정부가 무책임하게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출산대책위원회 임원들은 평소에 잘날 척하고 호통치며 상대방을 마구 무시하는 박명수 박사를 초대하고 싶지 않아 그를 정책 자문위원으로 부르는 것을 꺼려왔다. 하지만, 선거철이 왔으니 이 기회에 뭔가 획기적인 정책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거세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청와대 회의실로 안내받아 납신 위풍당당 박명수 박사를 김 서기관이 허리와 고개를 굽실대맞았다. 목소리에 거드름이 좔좔 흐르는 박명수 박사는 입꼬리를 내리며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일단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이 뭡니까? 그건 바로 결혼들을 안 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럼 왜 결혼을 안 합니까? 주택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교육문제 아닙니까?"

"박사님, 문제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박사님을 모신 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김 서기관은 말꼬리를 흐렸다. 박명수 박사 충고에 무조건 따라서 기획안을 올리라는 지시를 받아놓은 상태이니 쓸데없이 질문을 하거나 토를 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리라.

"아, 거참. 이 사람아.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잖나! 사람, 참 성질머리 급한 것 좀 보소."

"아, 네... 죄송합니다. 말씀하시지요."

"일단 애는 어떻게 낳지? 결혼을 해야 애를 날것 아닌가. 그러니 일찍 결혼시켜. 그리고 한번 결혼시키지 말고 여러 번 결혼시켜."

"네? 여러 번요? 어떻게..."

"이 사람 답답하네. 어떻게 한 사람하고 100년을 사나? 그러니까 결국 부부가 부부 같지 않고 친구 같아지는 거지. 로맨스가 없어. 열정이 없어. 불꽃이 안 튄단 말이야. 애가 안 만들어진다 이거지.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이 계속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야."

"그게 정부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어허. 왜 못하나? 불가능이란 없는 거야.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자, 들어봐! 사람들에게 계약결혼을 시키는 거야. 부동산 계약하듯이. 그래. 3년짜리부터 시작하는 거지. 생물학적으로 3년이면 콩깍지가 다 벗겨진다고 하잖나. 이때 이 계약을 끝내고 다른 사람과 다시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3년짜리 결혼계약서를 쓰면 정부가 살 곳을 주는 거야. 그리고 애를 낳으면 정부가 교육을 모두 책임지는 거지. 고로 뭐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거 아니겠는가? 전세계약하듯이 생각하면 되는 거야. 참 쉽다고."

"저, 그게...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갑자기 바꿉니까? 누가 3년짜리 계약결혼을 하겠습니까?"

"집 주고 애 키워주겠다는데 안 할 사람 있나? 솔직히 말해서 다들 새로운 상대방과 결혼해서 늘 신혼처럼 사는 거 안 원하는 사람 있나? 자넨 100년을 한 여자랑 살고 싶나?"

"그건 아닌 것 같긴 한데. 과연 이번에 정책을 바꾼다고 해도 누가 선뜻 그렇게 할지..."

"자넨 애송이라 인간을 모르는구먼. 돈 앞에 모두 무너질 거야. 아니 돈보다 파트너를 합법적으로 바꾸고 이득도 얻는다면 관습이니 도덕성이니 이런 건 모두들 나 몰라라 할 거라고."

"그래도..."

 

김 서기관은 박명수 박사가 말한 말도 안 되는 기획안을 올렸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기획안은 결제를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윗 분들은 생각이란 걸 안 하는 것 같았다. 기획안 자체를 안 읽어보고 그냥 사인들을 한 것 같았다.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만들어졌고 국민들은 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정책을 말도 안 되게 쉽게 받아들였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유구한 역사를 지녔던 결혼풍습이 어떻게 이리도 쉽게 뒤집어질 수 있는지는 미스터리였다.

미디어가 모두를 무뇌로 만들어놓은 걸까? TV, 옥외 광고 스크린, 유튜브, 심지어 동네 베이커리에도 붙은 박명수 박사의 이중턱을 보는 사람들은 마법에라도 빠진 걸까? 상대를 바꿔가며 결혼하자는 새로운 제도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정부 여당은 이 말도 안 되는 한방의 묘수로 떨어지고 있던 지지도를 뒤집고 국민들의 표를 다시 얻어왔다. 정치란, 군중심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억누르고 있었던 인간 본성에 정부가 자유라도 선포한 듯,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계약결혼에 곧 익숙해졌고 실제로 결혼 연령은 낮아졌으며 결혼 횟수도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흘러도 출산율엔 큰 변화가 없었다.   


*  *  *


"고객님, 여기 기본계약사항을 보시면 참고가 될 거예요. 물론 옵션도 따로 넣으실 수 있고 혹시 조정을 원하시는 부분이 있으면 변경 가능합니다."

숏커트를 한 동그란 라은의 목소리는 그녀가 입은 핑크빛 원피스처럼 러블리하다.


"저희가 이런 거 처음 해보는 거라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앳된 모습의 유준은 어깨를 움츠리며 옆에 있는 아란의 붉어진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 그러시구나. 대개 처음 계약할 때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보통 3년짜리로 계약을 하고 만족스러우면 3년 후에 다시 계약을 연장하기도 하지요. 그럼 3년짜리 샘플을 보여드릴까요?"


유준과 아란이 만난 지는 겨우 2주밖에 안 되었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 뺨치는 수준이다. 날마다 얼굴을 안 보면 미칠 것 같고 서로의 집을 번갈아 드나들며 거의 부부처럼 살고 있으니 하루빨리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동거하는 걸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가야 정부로부터 여러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결혼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네, 그러면."


"잘 생각하셨어요. 첫 번째 결혼은 보통 3년으로 시도한답니다. 그리고 두 분이 살아보니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면 더 길게 재계약을 맺으시면 됩니다. 결혼계약은 3개월짜리부터 가능하시지만 정부에서 제공하는 신혼부부 주택을 사용하시려면 최소 3년 계약서를 제출해야 하니 보통은 이걸로 시작하십니다."


"그럼, 3년 후에 재계약할 때는 평생으로 해도 되나요?"


"네. 그럼요. 하지만, 파트너를 바꿔서 새로운 결혼계약서를 쓰시면 새로운 주택을 할당받으십니다."


다른 파트너와의 재계약이라는 말에 유준과 아란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얼굴 위에 구겨 넣었다. 다른 파트너라니. 말도 안 된다. 불같이 타오르는 두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란 개념 자체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빨리 아기를 낳고 싶은데요? 아기를 낳으면 아기교육이 지원되나요?"


"네. 3년 후 계약종료 시 임신 중이시거나 이미 아기가 태어나 있으면 더 넓은 곳으로 옮기실 수 있습니다. 물론 3년 안에라도 출산일자가 잡히면 출산예정일 두 달 전부터 3~4인 가족을 위한 곳으로 옮기실 권리가 생깁니다. 정부 육아프로그램에 아기가 등록되면 소속되신 커뮤니티 안의 교육시설을 무료로 사용하실 수 있고요."

유준과 아란은 상대방을 닮은 아기를 꿈꾸며 서로를 지긋이 바라봤다.

결혼 코디네이터 라은은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태어날 아기에게 주어질지 세세하게 설명을 길게 이어나갔다. 아기에게 주어질 정부의 축복정책을 들으며 유준과 아란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핑크빛 미래를 한껏 들이마셨다.


코디네이터 아란은 순수한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지만 알고 있었다. 3년이 지난 후 이들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유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들의 허니문이 그리 길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든 커플이 유준과 아란처럼 이렇게 시작하지만 80~90%는 3년 후에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굳이 이들에게 언급하진 않았다. 지금 말해봤자 이들 귀에 들리지도 않을 테고, 말 안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파트너를 갈구하게 될 테니까. 평생 한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구제도가 묶어놨던 사람들 사고가 계약결혼이란 신제도로 얼마나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지. 동물적인 본성을 추구하게 만들어주는 제도가 사람들을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게 만들어왔다는 것을 아란은 수많은 커플들을 보며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   *   *   


새로운 정책과 함께 세월은 소리도 없이 슈슈슉 흘렀다. 2100년 현재 정부가 원했던 대로 초혼 연령은 평균 21세로 낮아졌고 평균 결혼 횟수도 5.5회로 높아졌지만 출산율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녀문제는 새로운 상대와의 결혼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여겨졌기에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리기 싫은 커플들 머릿속에서 아기는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여름 땡볕 아스팔트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 지지직거리다 이내 흔적도 없어지듯이.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 끼우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박명수 박사가 제안한 출생 솔루션 중 자극적이고 입맛에 맞는 부분만 짧게 편집해서 퍼뜨린 매체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희생, 출생 이런 건 원래 없던 것처럼 싹둑 다 잘라버리고 본능만 자극한 악마의 편집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건물 곳곳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선 선남선녀들이 유혹적인 몸짓으로 네온빛을 끊임없이 쏘아대고 있다. 거리를 메운 행인들 머릿속으로 네온빛이 샤방샤방 들어간다. 화려한 빛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어두움을 몰아내서일까? 그들의 걸음은 더 가벼워진다. 그들의 두뇌처럼.

가벼워진 사람들 머릿속으로 솜사탕같이 달짝지근한 광고가 행복한 유성처럼 쏟아져 박힌다.

  

"어떻게 지겹게 한 사람이랑 100년씩이나 삽니까? 상대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세요. 계약결혼! 인생을 즐기세요! 정부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브라보!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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