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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Jul 08. 2024

돌아온 탕자

난 늘 동생 놈이 싫었다!


이 녀석은 골칫덩어리다. 내가 존경하는 아버지의 재산을 축내고, 아니 어쩌면 내 것이 될 수도 있던 내 돈을 빼앗아간 도둑놈이다. 아니, 어떻게 감히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아버지에게 죽으면 어차피 줄 유산이니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린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난, 아버지가 노발대발할 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동생 놈이 이제야 드디어 다리가 부러지도록 맞겠구나 싶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재산을 뚝 떼어서 동생 팔에 한아름 안겨주었다. 아버지 눈에 뭐가 씌었던 걸까?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정신줄을 놓으셨나? 있을 수 없는 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철없는 동생은 신이 나서 바로 집을 나갔다. 돈보따리를 싸준 아버지가 이해 안 되고 원망스러웠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지긋지긋한 그놈을 안 봐도 되니. 혹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더랬다. 동생에게 실망한 아버지가 그놈에 대해 포기하고 나를 쳐다봐주길 바랐다.


그런데...


동생 놈이 뛰쳐나간 날부터 아버지는 하루 일을 마치고 해가 주황파자마로 갈아입기 시작할 때, 마을 어귀까지 나갔다. 마치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을 마중 나가는 사람처럼. 그 얄미운 자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거다. 더 이상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어둠이 내려앉으면 아버지는 축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힘없이 돌아오시곤 했다. 하루이틀이 아니고 매일같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동생 놈이 집에서 말썽을 부릴 때도 아버지 관심은 온전히 동생에게 쏠렸건만 그놈이 없어지니 아버지 증세는 더 심해졌다. 아버지는 왜 난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이 사랑받지 못하는 내 피는 동생을 향한 질투와 미움으로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놈이 돌아왔다. 거지꼴을 하고. 대체 어디서 어떻게 뒹굴었는지 상거지가 되었다. 해골 같은 몰골에 포동포동했던 동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제 소까지 잡아 동네 사람들을 다 초대했다. 씻기고 비단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사람 모양을 만들어 놓았더니 동생 놈은 이제 싱글벙글이다. 죽일 죄를 졌으니 용서해 달라고 엉엉 운 것도 잠시, 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마치 용이라도 죽이고 온 영웅처럼 가슴을 쭉 편다. 죽이고 싶은 놈! 네 놈에게 난 모 것을 빼앗겼다고. 재산도, 아버지 사랑도, 다!


도저히 난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손님접대가 내 의무인 걸 알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과 외로움에 표정관리를 못 하겠다. 이제 내가 이 집을 떠날 차례인가? 그래야 나도 아버지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관심 안 받아도 된다. 여태껏 내가 아버지와 아버지 집을 위해 한 모든 노동과 봉사가 다 부정되는 마당에 더 이상 내가 이 집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그래. 떠나자! 내가 여기 숲에 나와 있는 걸 눈치채고 날 찾는 하인 한 놈조차 없구나. 이대로 그냥 사라져 버리자.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지? 나란 놈은 정말 사랑받지도 못하고 쓸모도 없는 놈이니까...


"아들아~"

"아, 아버지..."

"왜 여기 나와 있느냐? 가서 잔치에 참여하자꾸나."

"뭐 하러요. 동생 놈만 주인공이고 아무도 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모두들 너를 사랑하고 존경한단다."

"아버지의 유일한 관심은 동생 아니었어요? 어떻게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해주시면서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 놈을 위해서는 소를 잡으십니까?"

"아들아, 동생은 잃었다가 찾은 자식이란다. 하지만, 너는 늘 나와 함께 했고 난 늘 너를 사랑해 왔단다. 넌 내 믿음직한 첫째 아들이고 내 기업을 이어받을 자식이란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네 것이고 내가 나를 이어서 이 집과 농장을 다스릴 것이다. 모두 너의 명령에 순종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넌 나의 기쁨이고 내 수중의 힘이란다. 넌 동생의 갑절, 아니 동생은 이미 그의 몫을 받았으니 앞으로 동생에 대한 처분은 네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난 이제 노쇠하였으니 이 잔치가 끝나고 너를 후계자로 삼는 공표를 할 것이란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란다. 아들아, 사랑한다! "


아버지의 두텁고 따뜻한 손이 내 어깨를 감쌌을 때 내 몸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무너졌다.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집을 뛰쳐나와 홀로 서 있는 나를 찾아낸 아버지의 진심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사랑과 신뢰를 난 항상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마음을 찢은 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불쌍한 동생의 것까지 다 차지하려고 생떼를 부린 건 바로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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