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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Aug 28. 2024

악몽

요즈음엔 통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한 밤중에 일어나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벌써 여섯 달째다.

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내 꿈을 봐야겠다.

대체 무슨 꿈일지 두려운 마음에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꿈의 실체.

하지만 이제 헛 것이 보이고 환청 비슷한 것까지 들리는 걸 보면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      *      *


하얀 가운을 입은 꿈카운슬러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안경 속 예리한 두 눈은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해 난 마치 그녀 앞에서 벌거벗은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보게 되는 꿈은 고객님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고객님의 무의식 세계를 영상으로 찍어서 고객님에게 전송해 드립니다. 이 꿈 영상은 절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또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철저한 비밀보장이 이루어집니다."


철저한 비밀보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없었던 두려움이 생겨났다. 난데없이 웬 비밀보장? 꿈이 내가 살인자라거나 호색한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비밀보장이요?"


"예, 악몽을 꾸지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객님의 경험이 너무나 끔찍하거나 괴로운 일이라서 고객님 몸이 그 기억을 억누르고 있단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굳이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님 같은 경우엔 이게 한계치에 다다랐고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면 정신과 육체에 치명적인 영향이 갈 수 있기에 눌려진 무의식을 꺼내서 직면할 것을 권해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꿈을 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피하고 싶었던 꿈을 보게 될 때 억눌렸던 기억이 터져 나오게 되면서 왜 그런 악몽을 꾸는지 자신을 이해하게 되지요. 사실 의식의 저 아래로 꽁꽁 숨겨놓을 정도의 기억이기 때문에 충격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해주셔야 합니다."


'충격'이라는 말에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지며 한기가 몰려왔다. 과연 나는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충분히 생각해 보고 여기에 왔지만 여기서 도망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달려오는 기차같이 빠르게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얼굴에 쏠렸던 피가 한꺼번에 모두 발바닥을 통해 바닥으로 나가버린 것 같이 어질 한 느낌에 몸이 휘청였다.


내 안색을 살피던 꿈카운슬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아기 달래듯이 감싸주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하기 힘드시면 다음으로 연기하셔도 됩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꿈카운슬러의 느긋한 태도와 제안을 듣자 오히려 갑자기 용기가 저 아래에서부터 발바닥을 타고 다시 올라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 괜찮습니다. 오래 생각해 보고 결정한 것이니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침대 위에 누운 내 머리에 수십 개의 가느다란 선이 연결되었다. 거미줄같이 촘촘한 선들이 향한 기계의 모니터를 보자 갑자기 사지가 뻣뻣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입안은 바짝 말랐다.

"긴장하셨나 보네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한숨 푹 주무시고 나면 모든 게 끝나있을 겁니다."

불안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눈이 슬슬 감기고 있었기에.


 *     *     *


꿈카운슬러: 이 사람은 자신의 꿈을 보게 되면 틀림없이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고 말 거예요. 너무나 끔찍한 꿈이네요.

드림플랜터: 과거의 진실을 꾼 꿈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욕망이 불러낸 꿈일까요?

꿈카운슬러: 어떤 것이 맞든 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거지요.

드림플랜터: 그런데 이 꿈이 사실이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꿈카운슬러: 아니요, 그럴 순 없죠. 우린 고객의 꿈을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어요. 설사 범죄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드림플랜터: 흠... 하긴, 이 꿈이 사실이 아니고 본인이 만들어 낸 꿈일 수도 있는 거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꿈이 없던 문제도 일으키게 될 거라는 거죠.

꿈카운슬러: 그래서 제가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꿈을... 바꿔주세요.

드림플랜터: 네? 그거야 어렵진 않지만 꿈을 평범한 것으로 바꾼다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던 상태인데...

꿈카운슬러: 네, 그래서 행복한 꿈이 아니라 안 좋은 내용으로 디자인 부탁드립니다. 그냥 조금 안 좋은 꿈이요.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요.

드림플랜터: 그래야겠군요. 그러면 '꿈디자이너' 머신으로 적당한 스토리를 만들고 그 위에 이 분 모습을 입힌 영상을 만들겠습니다. 약간의 무서운 내용을 넣어서, 이 분이 조작된 꿈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스토리라인을 만들겠습니다.

꿈카운슬러: 네, 부탁드립니다.


*     *     *


눈을 뜨자 주변의 낯선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내가 꿈을 기록하러 왔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자 과연 내가 어떤 악몽을 꾼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깨어나셨네요~ 꿈은 기록이 잘 되었습니다. 고객님 이메일로 파일을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저... 제 꿈이 심각한 것인가요?"

"아니요,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될 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자꾸만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렸던 걸까요?"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몸이 허약해지신 것 같습니다. 몸이 허약해지면 악몽을 꾸기 쉬운 상태가 되고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현실이 힘들어서 악몽을 꾸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일단 집에 가셔서 편하신 자세로 꿈을 재생해 보시고 나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란 걸 아실 겁니다. 보통 무슨 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안 좋은 쪽으로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것이 계속 더 악몽을 꾸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무슨 꿈을 꾸고 계시는지 속 시원하게 확인하신 후에는 마음이 편해지실 겁니다. 혹시 이후에도 계속 악몽을 꾸시는 것 같으면 한번 더 오세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이지만, 원하시면 상담을 진행할 거고요. 일정기간 동안 상담세션을 거치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휴우~ 제가 요즈음 회사일로 힘들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고 몸이 약해져서 꾸는 악몽이라니 다행이네요. 전 또 저도 모르는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괜히 걱정했네요."


*     *     *


요즈음 난 잠도 푹 자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별 꿈도 아닌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꿈을 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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