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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Oct 23. 2024

환상 콘서트

"네? 사망사건이요? 아이고~ 형사님, 우린 아무런 죄를 지은 게 없는데요."


강 형사는 박민철 씨의 사망원인이 '환상 콘서트'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사망사건이란 이야기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꼬치꼬치 캐묻는 형사 앞에서 목소리마저 갈라지고 있었다.


"저희 콘서트장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뭐 때문에..."

"아, 박민철 씨가 최근 6개월 토요일마다 이곳을 들렸다고 해서요. 뭐, 의례적으로 조사하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필요하신 부분엔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사망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전 공연에 대한 것 외에는 달리 말씀드릴 것도 없고..."

말꼬리를 내리며 살짝 빠져나가려는 매니저를 순순히 놔줄 강 형사가 아니다.


"그 '환상 콘서트'라는 것이 좀 특이하다고 들었는데요."

"네? 아, 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지요. 더구나 완벽한 4D시설을 갖추어서 콘서트를 온몸으로 즐기실 수 있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혹시 제가 이번 주말에 좀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네? 저, 그게... 공연에 방해가 되면 안 되는데... 지켜본다는 게 무슨…"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객석에 얌전히 앉아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사건 해결하는 데 공연 내용이 도움이 될까 하고요."

"휴~ 그러시다면. 어… 이번 주 토요일 7시 공연에 형사님 자리 하나 마련해 놓겠습니다."


*   *   *


토요일 공연은 만석이었고, 매니저는 강 형사를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뒤쪽 오른편으로 안내했다.

"형사님, 죄송합니다. 자리를 부랴부랴 마련하느라 가장 좋은 좌석은 아니네요."

"아닙니다. 만석이네요. 공연 때마다 항상 이런 가요?"

"최근 들어서 계속 전 석 매진입니다. 입소문을 탔나 봐요. 주말마다 와서 공연을 보시는 분들도 꽤 됩니다. 어쨌든 전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즐겁게 보시고 물어볼 게 더 있으시면 나중에 사무실로 절 찾아오시면 됩니다."


안내된 좌석 컵 홀더에는 방금 준비된 시원한 음료가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무지개색으로 마실 것을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내 이 음료에 박민철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으로 강 형사의 눈은 가늘어졌다. 강 형사는 일단 투명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무지개색 음료에 코를 바짝 들이댔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빨대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액체 한 모금을 입 안으로 빨아들이자, 여러 가지 맛이 섞여 폭죽처럼 입안에서 화려하게 터졌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이상한 물질이 음료에 섞여 있는지 성분조사를 의뢰할 생각으로 더 이상 마시진 않고 컵 홀더에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를 얌전히 끼워 두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최대음을 내며 팡파르를 울렸다. 조금 맛본 음료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시작된 웅장한 음악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거대한 적갈색 막이 오르며 기대감이 생겨서 그런지,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오, 이거 시작부터 장난이 아닌데?'


심장과 귀를 쿵쿵 울리는 음악이 잦아들고 갑자기 부드러운 선율로 변하면서 예상치 못한 핑크 빛 꽃향기가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온몸이 나른하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프랑스 궁정 앞 뜰 장미 정원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 한 편에 마련된 거대한 캔버스 앞에 앉아 있던 화가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무엇에 홀린듯한 표정이었고 그는 마치 음악의 높은음은 당연히 금빛에 가까운 노란색이라는 듯이 오케스트라의 경쾌한 음을 따라 캔버스 위에 밝은 색 물감을 가볍게 뿌리기 시작했다.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은 캔버스를 확대해서 그대로 비춰주고 있었다. 깊은 저음이 귀를 때릴 땐, 굵은 브러시에 묻힌 검정과 네이비 색이 캔버스 위에 흩뿌려졌다. 음악을 붓으로 그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하지만, 신기한 건 음악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다는 것과, 예술가도 아닌 강 형사가 그걸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저건 또 뭐지?'


옅은 하늘색 얇은 천을 나풀거리며 나타난 무용수는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음악이 몸짓으로 바뀌어 마치 음표들이 댄서의 몸에 휘감기고 있는 듯한 환상적인 공연. 강 형사가 앉아 있던 의자마저도 무용수의 부드러운 몸짓에 따라 폭신하게 느껴졌고, 긴장되고 경직된 짙은 음이 무용수의 몸으로 표현될 때는 그의 엉덩이 아래 의자도 딱딱하게 느껴졌다. 몽환적인 안개가 스멀스멀 바닥으로부터 올라오기도 하고 오색찬란한 비눗방울이 둥둥 떠다니기도 했으며, 온갖 다채로운 향기가 음악의 결에 따라 바뀌곤 했다. 강 형사는 뭔 가에 취한 느낌이었고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단 생각이었다.


'아, 내가 어느새 공연에 푹 빠져서 너무 감상적이 되었군.'

그제야 강 형사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자신을 일깨웠고 사람들과 무대, 공연자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눈을 감고 감상하니 마치 잠들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무대 위 악기 연주자들, 거의 미친 듯이 물감을 뿌려대는 화가, 온몸을 굴리고 날리고 점프해 다니며 온 무대를 장악하는 무용수는 모두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딱히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대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한 관객이 무대로 올라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경비원들이 바로 그를 제지했지만 그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리며 무엇이 그리 좋은 지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초점이 없는 그의 눈을 보니 술을 거나하게 걸치고 온 것 같았다.

다행히 신속하고 능숙한 대처에 공연은 중단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단 표정으로 집중해서 무대 위의 환상을 즐기고 있었다.


소란을 잠재우려 나타난 매니저를 본 강 형사는 즉시 그를 따라 나갔다.

"이렇게 멋진 공연은 처음이네요. 아까 그 술 취한 사람이 공연을 망칠 뻔했네요. 그래도 직원들이 능숙하게 대처하더군요."

"아, 이런 일이 요즈음 들어 자주 있답니다. 공연에 너무 심취해서 그런지 좀 이상하게 구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대처능력이 점점 나아지네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네, 저희 공연이 워낙 사람들의 깊은 감정을 건드려서 그런지 가끔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는 것 같아요."

"혹시, 박민철 씨도 저렇게 행동한 적이 있습니까? 최근 들어 매주 왔던데."

"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고. 제가 워낙 이일 저일 하는 일이 많아서 세세히 얼굴까지 기억나진 않네요. 아, 담당경비직원에게 물어보면 되겠네요. 기록이 있을 거예요. 저희가 기록을 해두거든요."


박민철. 최근 들어 극장에서 공연 중간에 바깥으로 안내된 기록이 두 번이나 있었다. 어지럼증을 호소해서 직원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었다. 또 한 번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어서 밖으로 나와야 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그때 어떻게 조치를 취했나요?"

"여기 기록에 따르면 저희가 집으로 연락을 했고 집에서 아들이 와서 모셔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 다요."


*   *   *


박민철은 집에서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했다. 아내는 매주 토요일 공연을 보고 온 남편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매번 공연만 보고 오면 남편의 상태가 이상해지고 너무 피곤해하기에 공연에 그만 가라고 말리곤 했다. 그런데도 굳이 토요일마다 가기에 처음엔 다른 여자가 있나 하고 의심했다. 사람이 마치 사랑에 취한 것같이 제정신이 아니기에 몰래 몇 번 남편을 따라가 봤다. 여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남편이 늘어진 몸으로 집에 와서 바로 뻗어버리는지 아내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남편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장에 분명 뭔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고 조사를 의뢰했다. 경찰 입장에선 딱히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라 수사 명령은 없었다. 그러던 참에 남편을 잃은 박민철 씨 아내가 부검결과를 들이대며 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오감이 섞이며 뭔가 고양되는 느낌!'

공연을 본 관객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서 환상 콘서트장을 규칙적으로 찾는다고 한다. 강 형사도 느꼈던 감동! 하지만, 뭔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림에서 음악소리를 듣고 춤사위에서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그야말로 공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정한 소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극장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오감이 섞이는 환각 상태를 경험한다고? 환각?!


아! 그래. 맞다! 환각상태! 바로 그 거다! 그럼, 무엇이 문제지? 음료? 저번에 조사한 무지개 음료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향기? 뭔가 뿌려지면서 냄새가 나지 않았던가. 공연 중반에 나왔던 뿌연 안개에 무슨 성분이 있었던 걸까?


강 형사는 다시 한번 극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공기를 채취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 감시반 직원과 함께 갔다. 강 형사는 저번 음료에서는 특이한 성분이 나오지 않았기에 이번엔 안심하고 입안에 퍼지는 시원하고 오묘한 무지개 맛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아, 자네는 안 마시나?"

"네, 저는 음료를 정밀분석해 보려고요. 그리고 말씀하셨던 안개와 향기도 다 이 기계 안에 모아서 철저히 살펴보겠습니다."

철저한 감시반 직원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서 그런지 공연 내내 강 형사는 저번보다 기분이 더 좋아졌고 공감각을 가진 초능력자처럼 음악이 색깔로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에 본인도 깜짝 놀랐다. 다음번에 또 오면 공감각 능력이 얼마나 더 향상될지 궁금해졌다. 어느덧 공연은 막을 내렸고 강 형사는 공연에 취해 약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형사님?! 또 오셨네요? 아직도 조사할 것이 더 남아있나요?"

나가는 길에 마주친 매니저가 강 형사를 알아보곤 빠르게 재잘거리는 것이 꼭 목 졸려 죽어가는 새소리 같다. 굳어진 그의 얼굴을 보고 강 형사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닙니다. 너무 멋진 공연이라 친구 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 형사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고양된 기분으로 집으로 귀가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강 형사는 바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   *   *


"강 형사님! 음료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박민철 씨 부검결과와 일치합니다.”

"뭐라고? 내가 저번에 가져왔던 음료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강 형사님이 조사하러 간다고 미리 알려주셨기에 그날은 음료에 마약성분을 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져온 음료엔 분명히 들어있습니다. 안개, 뿌려진 향기에서도 소량의 마약성분이 나왔습니다. 박민철 씨는 장기간에 걸쳐 매주 마약성분에 노출되었기에 집에서 호흡곤란과 심정지가 온 것 같습니다. 중독현상이지요."


*   *   *


환상 콘서트장 관계자들은 줄줄이 마약사범으로 끌려들어 갔고 결국 극장은 폐쇄되었다.


강 형사는 사실 좀 아쉬웠다. 두 번밖에 못 본 공연이었지만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앞으로 매주 가볼까 고려 중이었기에.


사실, 그 공연이 환상적인 이유는 강 형사가 마약이 든 음료를 마시고 안개와 향기가 뿜어져 나올 때 마약성분을 코로 힘껏 들이마셨기에 가능했으리라. 과연 약의 도움 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똑같은 공연을 봤다면 음악에서 색깔을 보고 몸짓에서 날아다니는 소리를 볼 수 있었을까?


그건 ‘환상콘서트’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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