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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Oct 23. 2024

나의 친구 헤밍웨이를 추모하며


Myself unseen even in the mirror

(거울 속에조차 없는 투명한 나)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이 짧디 짧은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와 헤밍웨이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한다.

 

내가 헤밍웨이를 처음 만난 건 젊은 시절 글쓰기 작가 모임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며 자주 술집으로 몰려다녔다. 정치, 사회, 예술에 대해서 떠들어댔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지식인의 우월의식과 동시에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무기력함을 토로했다. 나는 짧으면서도 핵심을 꿰뚫어 보는 헤밍웨이의 말과 글이 맘에 들었다. 부딪히는 술잔 수가 쌓일수록 우리의 우정은 깊어져 갔고, 난 그의 깊은 고독과 허무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린 둘 다 무명작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사인을 받으려 그에게 아부를 떨곤 하는 이들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게 다 《노인과 바다》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쿠바로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한 어부를 만났고, 헤밍웨이는 그 어부 이야기를 별생각 없이 받아 적어 지면에 발표했다. 그런데 그 작품이 히트를 친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고 순진한 척 이야기했지만 그의 성공에 내 감정은 점점 꼬인 실타래처럼 엉키기 시작했다.

 

물론 난 처음엔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점점 더 자주 끼어드는 여인들을 볼 때마다 질투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인을 부탁하며 온갖 아양을 떨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내 친구 헤밍웨이의 눈길을 앗아갔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잘난 척하는 이 친구와 체신머리 없게 개처럼 혀를 늘어뜨리고 그에게 달려드는 고귀한 혈통의 여인네들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느 날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나는 헤밍웨이를 망신 주고 싶은 악마적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를 도발하고 말았다.

"어이, 친구. 사람들이 자네 문체가 짧다고 모두들 칭송하던데, 그럼, 혹시 짧게 여섯 단어로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겠나?"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냅킨 위에다 이렇게 적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

 

냅킨 위에 쓰인 이 글을 읽자마자 내 코끝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여섯 단어를 읽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기를 잃은 지독하게 가난한 외로운 여인이 그려졌기에.

 

대단하지 않은가! 역시 내 친구 헤밍웨이답다.

 

하지만, 질투의 술에 삼켜진 난 그가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비겁하게도 난 그의 우울한 내면을 주변인들에게 까발리고 싶었다.

 

"오, 역시 대단한 글이구먼. 하지만 난 눈물이나 짜내는 그런 신파는 질색일세.

난 좀 더 근원적인 고독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네. 모델은 바로 자네일세. 허무주의에 깊게 빠진 자네는 너무나 고독하지. 비록 명성을 얻고 있지만 자넨 때로는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내 잘 알고 있지. 나도 여섯 단어만 이용해 고독한 자네의 속을 보여주겠네. 이건 자네 속에 있는 진짜 자네의 외침이니 잘 들어보게."

 

난 냅킨 위에 여섯 단어를 끄적거려 쓴 뒤 그에게 건넸다.

 

"Myself unseen even in the mirror"

(거울 속에조차 없는 투명한 나)

 

이 글을 본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고 두 눈은 갑자기 초점을 잃은 듯 보였다. 한동안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이때부터일까? 우리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어서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했고, 글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에 다른 도시로 나가 일을 찾았다. 다른 도시로 이사한 후부터는 헤밍웨이와의 만남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와 나는 완전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가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신문지상에서 읽었다. 당장 그에게 달려가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난 갓 태어난 아기까지 두 아이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전혀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는 곧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다가 한 7년쯤 흘렀을까?

 

그의 자살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럽게 그의 소식을 듣게 된 나는 술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얼굴에 스쳤던 고독과 허무가 갑자기 내 눈앞에 진하게 다가왔다.

 

난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 얼굴 주름과 주름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텅 빈 그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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