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 언어의 조악함

거친 언어가 거친 삶을 만든다.

by 미니 퀸


요즈음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어느덧 내 말에 살짝 묻어난다. 성인들을 가르칠 때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유치 찬란한 단어에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은근히 아이들을 탓하던 내가 그들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신규생으로 들어온 초등학교 3, 4학년이 섞여있는 반에서 한 학생이 이번에 자기가 학급회장이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 난 넘치는 기쁨을 이렇게 전달했다.

"미친~! 추카추카! 축하해!"

이에 몇몇 아이들이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추궁했다. "선생님 욕했어요?" "선생님이 욕했다고 이를 거예요~"

2초 동안 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서.


바로 해동모드가 된 난 선생이란 지위를 발판 삼아 구차한 변명을 해댔다. "아~ '미친'은 욕이 아니야. 영어에서 Crazy~라고 하면 멋지단 의미야!"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은 '미친'이란 말을 썼고 이 말은 나쁜 말이라고 배웠다면서 거듭 이야기했다. 3학년들이라 아직 언어습관이 순수해서일까? 유독 이 어린 학생들은 '미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Crazy~!", "미친~!" 이 단어는 내 입맛에 딱 맞는 감탄사다. 무언가 멋진 일이 있을 때나 상대방 말이 놀라울 때 제일 먼저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다. 나에게 "Crazy!!!"는 느낌이 착 감기는 살아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남들은 공감 못할 수도 있는. 특히나 초등학교 3학년에게는 욕으로 들리는, 참으로 듣기 거북한 단어였기에 날 단두대로 끌고 가려한 것이다.




이 일을 겪고 생각을 좀 해봤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란 결국 언어가 아닐까 하고. 아무리 고상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 해도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생각자체가 빛을 볼 수 없다. 표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실현될 가능성이 없고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는 받는 이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잘못 사용된 언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왜곡된 좁은 세상으로 화자와 청자를 모두 이끈다.


언어는 우리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Word(단어)가 Worldview(세계관)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본 역사시험 점수가 낮다고 가정해 보자.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은?

1. 이제 내 인생은 망했다.

2. 난 원래 머리가 나빠.

3. 뭐 역사시험은 워낙에 어려웠으니까 나만 못 본 건 아닐 거야.

4. 역사시험은 잘 못 봤지만 내일 보는 다른 과목은 더 열심히 공부해서 평균을 올려야겠다.

언어가 짧고 거칠수록 한 사건을 과장해서 1과 2처럼 말하기 때문에 사실은 문제가 아닌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시험 한 번 잘 못 봤다고 왜 인생이 망해야 하고, 왜 머리가 나쁘다고 확대해석해야 하는가.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는 건 얼마나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가에 달려있다. 예시 4처럼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야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조악한 언어를 사용하면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과장되거나 편협할 수밖에 없다.


고로, 난 결심했다. "미친~!"이란 너무나 거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좀 더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건이나 상황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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