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를 맞아 태림이와 달달한 데이트를 즐기러 전주에 갔다. 가기 전에 잠시 본가에 들러서 짐 좀 정리하고 전주에 넘어가려는데 엄마가 전주까지 태워다 준다고 해서 편안하게 엄마 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에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화이트데이 얘기가 나오다가 엄마가 내게 물었다.
"너 여자친구에게 꽃 선물 해준 적 있어?"
"아니, 아직 없어."
"왜?"
"태림이는 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오히려 인형을 더 좋아해."
아들의 로맨스가 무사한지 물어본 엄마는 내 대답에 아쉬워했다.
"아쉽네, 꽃 좋아했으면 엄마가 꽃 선물하라고 지원해주려고 했는데."
"괜찮아."
아들이 꽃 선물을 하는 로맨틱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던 엄마는 여자친구의 성향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하다 나지막이 얘기했다.
"아닐걸"
엄마는 아직 태림이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여자로서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인형도 좋아한다고 하니 꽃이 없으면 인형 같은 것도 줘도 좋겠다는 마음을 표시했다.
태림이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이미 거대한 인형 선물을 보내서 난 태림이가 좋아하는 쿠키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사려고 했다. 근데 뭔가 마음이 쓰였다. 엄마와 얘기를 나누고 보니 그래도 꽃 선물은 한 번 정도는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내적 고민을 하고 보니 어느새 전주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엄마한테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엄마가 또 한마디 했다.
"꽃 하나 사줘, 좋아할 거야."
"알겠어. 가다가 있으면 사갈게."
엄마의 마지막 충고를 듣고 난 한 달 만에 보는 태림이에게 갔다.
오랜만에 보는 태림이는 여전히 예뻤다. 그래서 항상 예쁘다고 좋다고 말하면 태림이는 내 눈에 콩깍지 렌즈가 강력접착제로 붙여져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나. 좋은 건 좋은 것일 뿐.
예쁜 태림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태림이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근처 카페에 갔다.
우리는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눈에 카페에 있던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 꽃을 보니 전주 오는 길에 엄마와 나눈 얘기가 떠올라서 태림이에게 얘기했다.
"자기 오늘 엄마가 그러더라고. 자기 꽃 좋아하냐고. 그래서 내가 자기는 꽃보다는 인형을 더 좋아한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엄마가 아쉬워하면서 꽃 좋아하면 엄마가 꽃 선물을 하나 해줄까 했대."
나는 태림이가 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얘기했다. 그런데 태림이는 내 얘기를 듣더니 뭔가 당황한 눈빛을 보이고는 머뭇거리다 얘기를 했다.
"오빠, 나 꽃도 좋아해."
태림이와 만난 지 1년 하고도 90일이 지나면서 여태 들은 말 중에서 굉장히 내 등골을 싸늘하게 했다. 저 대답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태림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대답을 해야 기분 안 나빠할지 무수한 반응을 추출했다.
그리고 끝내 도달한 대답은
"사실 알고 있었어. 자기가 나한테 안 좋아한다고 했지만 은근 꽃을 보면 기분 좋아하는 게 보였거든."
"그게 보였어?"
"응."
최대한 내가 전혀 몰랐던 걸 들키지 않으면서 태림이가 뭔가 솔직히 말하지 못한 것을 간파했다는 식으로 정면 돌파했는데 다행히 태림이가 받아줬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휴대폰으로 카페 근처에 있는 꽃집을 찾아봤다.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하늘이 도운 것인지 카페에서 5분 거리에 꽃집이 있었다. 거기다 오늘 휴무도 아니라고 해서 기회를 보았다가 꽃집에 가서 꽃을 살 계획을 짰다.
태림이는 다음 코스를 위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도착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카페에 좀 더 있자고 했다. 기회였다. 이때 자연스럽게 꽃집으로 가서 꽃 선물하기.
여기까지는 정말 성공할 거 같은 계획이었는데 문제는 태림이는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아무 꽃을 주기에는 그러니 이건 물어봤다.
"자기, 근데 자기는 어떤 꽃을 받으면 좋아?"
"음, 내가 꽃을 받아본 지 10년 넘어서 잘 몰라. 졸업식 이후로는 없네. 그냥 아무 꽃이나 받아도 좋아."
꽃의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무작정 예쁜 꽃으로 선물해 주는 게 내 목표, 히든 퀘스트였다.
이제 모든 걸 알았으니 꽃집을 가는 게 우선, 카페에 좀 있자고 하는 걸 갈 데가 있다고 얘기해 같이 일어섰다.
그리고 카페에 나오자마자 태림이가 어디 가냐고 묻길래 바로 얘기했다.
"자기, 내가 아까 왜 꽃 얘기했는지 알아?"
"뭔데?"
"사실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는데 그냥 얘기할게. 서울에서는 자기한테 꽃 선물을 하면 자기 버스 타고 집 갈 때 힘들까 봐 안 했는데 전주에서는 괜찮을 거 같아서 그래서 그런 얘기를 슬쩍 꺼내본 거야. 놀라게 해주려고."
"그러면 지금 우리 꽃집 가는 거야?"
"응 꽃집 가."
꽃집을 간다고 하니 태림이 입가에 미소가 승천을 했다. 사람이 기분 좋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 나오는 그 표정이 태림이에게도 보였다.
"너무 좋아!!"
"얼른 가자~ 꽃 사러"
좋아하는 태림이를 보니 내심 신경 쓰였던 내 마음의 불안함이 가라앉으며 다시 평온함이 찾아왔다. 꽃 가게가 가까워 얼른 가서 예쁜 꽃을 선물해 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신나서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이 빠른 발걸음과 평온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불이 꺼져있고 문이 닫혔다. 분명 인터넷에서는 문이 열려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게에 가니 열려있기는커녕 사람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엄청 기뻐했을 태림이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거 같아 마음이 답답했는데 태림이는 괜찮다며 날 다독여줬다.
"오빠, 전주가 그렇지 뭐. 내가 여기에서 오래 살면서 느낀 게 인터넷에 나온 게 무조건 맞진 않아. 그래도 꽃 선물 해주려는 오빠 보니 기분은 좋다."
본인도 실망했을 텐데 티를 내지 않고 위로한 모습을 보니 꼭 태림이에게 꽃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비록 이날은 꽃 선물을 해주지 못했지만 일주일 후 다시 태림이를 만나니 이때 예쁜 꽃을 선물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기다려, 내가 예쁜 꽃으로 기쁨을 안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