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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밤중의 전화

by 조유상

큰아들이 한밤중에 전화를 했다.


엄마 자? 안 자?


응, 아직. 아이 깜짝이야. 근데 무슨 일 있어? 이 밤중에. (나도 모르게 소리가 잦아든다.)


오늘 **이(며느리)랑 같이 놀러 갔다 왔어.


아, 그랬어?


(우울증 때문에) 힘들고 나서 **이랑 천리포 다녀와서 좋은 시간 보내고 왔다고 전하고 싶었어. 엄마 자기 전에 생각 많이 할까 봐, 그리구 엄마 아직 안 잘 거 같아서.(사실 어제-토요일 저녁 늦게 큰아들 부부가 일이 있었다. 전화로 들으면서 가슴이 또 쿵 무너졌고 머리가 텅 비어버린 거 같았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며느리와 지친 아들 간에 피곤이 쌓여 서로 몸싸움까지 좀 한 모양이었다.)


응응, 안 자고 있었지. 근데 한밤중에 전화 오면 너한테 무슨 일 있어서 그럴까 봐 가슴 철렁하지.


어, 근데 오늘은 그런 거 아니고 항상 힘들고 난 다음에 더 좋은 시간 잘 보내거든.


아휴, 힘들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응 나두.


그러게. 그냥 이렇게 또 큰일을 겪으면 우리가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떤 사인을 하고(그런 걸 알게 되지) **인 또 이러고 나면 자기가 더 괴로워하거든. **이도 엄마 아빠 얼굴 어떻게 보냐구 힘들어하더라고. 내가 일을 크게 만든 거지. 어제 너무 힘들어서 내가 못되게 굴었지. 평상시면 **이가 많이 힘들겠지 하고 넘어갔을 텐데, 내가 안일하게 행동을 했고 **이도 안 그러고 싶은데, 최대한 참고 이 정도 한 거지. 나는 괜찮어. **이가 약 발라 줬어. **이가 아빠 엄마 어떻게 보냐고 울더라. 자기도 최대한 안 그러려고 그러는데, 죽지 않고, 최대한 죽여버리지 않고 하는 분노가 이거라서... 엄마 아빠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다행이야.


그래. 조마조마해 엄마는, 항상.


엄마, 걱정 마. 괜찮아, 힘들긴 해도 엄마아빠 조마조마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내가 잘못하고 살고 있진 않아. 그러니까 계속 여기에서 일하고 사는 거야. 계속해서 내가 잘하고,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조마조마해할 거 없어.(아들은 현재 지역의 정신건강쉼터에서 일하고 있다. 아내의 우울증이 깊어질 때 자신도 스트레스로 상담을 받기도 하며 버티느라 애쓰는 중이다.)


그래, 알았어. 잘하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좀 걱정해도 될 거 같아서 내가 아직 아무 얘기 안 했어.(아빠로부터 사랑과 관심, 공감을 좀 더 받고 싶은 모양이다. 이 말할 때는 짓궂은 목소리다.)


그건 또 아니지, 아들.


아, 알지.


내일 일요일이니까 낼이라도 아빠한테 가서 말해. 아빠는... 아빠도 버겁지. 나름대로 한다고 해도 자기가 나만큼 공감을 못 해준다고 생각하니까, 오죽하면 엄마더러 오라고 했을까 싶더라구.(그는 엊그제 큰아들 일이 있고 나서 내게 일년살이를 앞당겨 왔으면 하는 카톡을 보냈고 통화를 했었다.)


엄마가 아빨 또 잘 이해해 주네. 아주 천생연분이여.


평생웬수다 이놈아.


하하하,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거야? 적을 잘 아네.


그렇지. 아니까 연민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 너두 그렇잖아. 아니까 그런 거잖아.


엄마, 근데 진짜,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금전적으로, 내가 뭐 개인적인... 커리어적으로 **이랑 같이 사는 걸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편안한 인생을 살았을지는 모르겠는데, **이 만나서 내가 이렇게 어려운 걸 마주하고 하나둘씩 풀어가면서 아, 뭐 세상 사는데 내가 좀 더 필요한 공부를 하고 필요한 눈을 가지고, 혼자 이기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잘 사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으로 크고 있다고 생각 하거든.


그 말 들으니까 엄마가 너무 눈물 난다.(푹 눈물이 솟는다.)


다 엄마 아빠가 잘 키워줘서 그런 거니까, 애초에.


엄마가 너 뱃속에 가지고 있을 때, 홍동천 걸으면서 너가 그런 아이로 크면 좋겠다고 배를 문지르면서 산책하면서 말하고 그랬거든, 항상.


**이가 그걸 이루어줬어.


근데 니가 그런 말을 하니까 너무 아프잖아...


자식농사 성공했는데 왜 아퍼? 뿌듯해야지.


안쓰럽지...


뭐가 안쓰러워, 엄마가 그렇게 바랬구만, 뭘.


그래도 또 이런 식으로 표현될 줄 몰랐잖아. 아들이 아픈 거 보면... 힘들지.


엄마, 눈물 나게 하지 마. 나 잘 살고 있고 괜찮아. 나 지금 이렇게 사는 거 만족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참...


순간순간 어려움이 있는 거지, 사는 게 괴로운 건 아냐, 엄마. 난 **이한테도 여러 번 얘기했는데, 난 죽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이렇게 괴롭게 사는 게 힘든 건 있어.


그렇지...


응,. 근데 산다는 게 계속 괴로울 수만은 없는 일인 거니까... 괜찮거든. 그냥... 살 때, 사는 게 너무 괴롭다고 느낄 때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기댈 수도 있고. 그니까 나, 엄청, 정말 잘 공부하면서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단순히 내가 그냥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사람으로서 살 수 있도록, 남들 똑같이 엘레강스한 어떤, 본인만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주변에 있으면서 좋은 사람으로서 잘 살려고 하니까. 그리고 **이도 그런 사람이야. **이도 자기 주변 사람들을 잘 도와. 지도 죽을 거 같으면서도... 이 사람이 나에게 끼치는 뭔가 안 좋은 모습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넘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미워하겠어? 미워하지 않아. 그냥 가끔씩 니가 흔들리면서 그럴 때, 니가 **이랑 결혼한 게 맞나, 나 얘랑 계속 살아도 될까 그런 고민을 할 때 힘든 거지.


엄마 나 그런 얘기 이제 **이한테도 하고, 원래 힘든 과정이야. 이게 안 힘들면 이 정도로 오지도 않았어. 알잖아? 엄마도 아빠한테 한 달 내내 이혼하자고 해서 아빠도 죽을 뻔했다매?


아휴... 한 달 내내 그런 거 아니지.


아빠 말론 그래. 방 따로 쓰고 그러면서.


참...


어제 내가 (우리 집) 옷방에서 잤거든? 그랬더니 자기 말로 그래, 자기 힘들 때 와서 자던 방이 여기라고.


치, 자기가 나가놓고선. 언제 들어오려나 했더니 한참 있다가 자기가 들어오대. 그래서 왜 또 들어왔어? 그랬지.


그니까, 내가 엄마 아빠 나중에 고생했던 거 안 할라고 미리 고생하고 있어서 그래.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잖아.


응, 그래. 산책하러 나왔어?


응, 엄지(입양한 개) 데리고 똥 누이러 산책하러 다시 나왔어.


엄마, 걱정할 거 없고. 진짜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전화해 줘서 고맙다. 매일매일 살얼음 걷는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니까.


그건 나도 그래. 근데 엄마, 그런 생각한다고 해서 내 삶이 나아지지 않거든. 엄마 삶도 마찬가지고.

우리 힘들지 않은 순간일 때 힘들어할 거 생각하고 살지 말자고.


그래 그래. (내 목소리에 갑자기 생기가 돌며 화창해진다. 현재를 살자는 아들의 말에 화들짝 다시 정신이 들었다.)


아빠도, 아빠가 그럴 거 같아서 걱정이긴 한데 쪼끔은 내 걱정해야 할 거 같아서 오늘은 말 안 했어.


하하하. 그래 알았어. 내일 가서 아빠랑 잘 얘기하고.


응응.


엄마랑 통화한 거 들려줄게. 나 말로 하기 어려워서 다 녹음했어.


그랬어? 그랬구나. 나한테도 보내줘. 얼른 들어가서 자, 아들.


예, 사랑합니다, 어무니.


그래, 고맙다 아들. 나두 사랑한다. 정말 잘 지내길 바래.


나중에 아빠한테도 들려줄 거니까 아빠도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히히.


나두 평생 웬수라고 한 거 취소!ㅎㅎ


이거 다 들어갔는데 괜찮아? ㅎㅎ


그럼, 괜찮아, 서로 알만큼 알지, 괜찮아. 얼른 들어가서 자.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셔유!



긴 하루가 그렇게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져 잦아들었다.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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