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나초콜릿과 붕어싸만코
엄마는 오빠들을 보며, 쟤 둘을 합쳐 주물러 반으로 뚝 잘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 무슨 끔찍한 말씀이자 발상인가. 그 말 뒤에 숨은 뜻이야, '아, 이 녀석들 너무 달라서 엄마인 나로선 참 피곤하다, 좀 편케 살고 싶다'였겠지만, 쌍둥이도 눈썹 한쪽쯤, 점 하나라도 다를 수 있고 하다못해 배고플 때 먼저 하는 말도 다를 텐데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엄마가 하던 그 말을 우리 아이들한테 안 하게 된 동기는 아마도 재형 씨라는 독특한 친구 덕 아닐까 싶다.
25년 전쯤, 딸 둘, 평화와 본이를 키우던 그가 말했다. 평화는 ~~ 해서 이쁘고 본이는 ~~ 이러이러해서 이쁘다고. 나는 그게 잘 안 되던 사람이었기에 뼈에 남았던 말이다. 그렇게 관찰한 바를 칭찬할 수 있다니 하고 경탄했다.
그 후로 '나는 아이들에게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기 보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우리 하영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아 이쁘고 우리 유영이는 가만히 관찰하는 걸 잘해서 이쁘다고. 그런 말을 할 때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조심하려 애썼다.
물론 큰애가 그놈의 호기심 과잉 때문에 뭐든 하다 때려치우길 잘한다며 진득하지 못하다고 아빠는 힘들어했지만, 나는 뭐든 해봐야 자기가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아는 거라 괜찮다 했다. 그러는 자기도 동네 홍선생님으로부터 직업을 이것저것 많이 바꾼다고 한소리 들은 적 있다는 사실, 알랑가 몰러.
큰애가 공감형 조잘이였다면 작은애는 관찰형이고 자기 속내 표현을 잘 안 하는 통에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고 답답하기까지 했지만, 자기 실속도 은근히 차리고 함부로 나대지 않으니(친구들 저만큼 달려갔다 되돌아오는 사이에 반 정도 차이 나게 가는 아이) 진중함으로 친구들한테 든든한 녀석이라 인정받는 거 아니냐 싶어, 서로 다른 걸 그냥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었다. 판단의 혀가 날름댈 때 그걸 꾹 눌러가며.
우리는 서로 가진 게 다 다르다.
다르니까 다르게 빛난다.
다르니까 서로에게 감탄한다.
비난이나 판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그놈을 꾹꾹 눌러주는 건 결국 다름에 대한 감사와 축하였다.
가나초콜릿처럼 한 판에 똑같이 생긴 놈들로 똑똑 부러지는 게 아니었고 붕어싸만코처럼 한 공장에서 콕콕 찍어져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모양새로 자라났고 다툼과 갈등 속에 컸다. 아프지만 어쩌랴, 그게 자연이었는걸.
아이들은 그리 다르게 나를 엄마로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