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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모금

시 한 모금

14. 사랑, 그까잇 게 뭐라고

by 조유상

사랑 1


한밤중에 방문이 똑똑 울린다

올 사람 하나다

강아지 안고 나타난 숙소 아래층 녀석

녀석 친구 부부 놀러 와 이틀 동안

안녕한 줄 알았더니

한밤에 언니! 하고 나타났다

방해한 거 아니야?

괜찮아, 방해해도 돼!

문을 활짝 연다


밖에 걷다 2층 언니 방

불 켜져 있기에

그냥 왔단다


뭐야 불나방이야?

잘했다 잘했어

들어와 어여 들어와


강아지 빨빨거리며

낯선 공간 탐험하고

녀석은 얼근히 술에 취했다

따끈한 얼굴로 언니를 연신 부른다

다정한 그 목소리는

나를 마냥 빨아들이는 블랙홀


오갈 데 없는 무지근한 마음

잠시 방바닥에 내려놓고

주저앉혀 쉬어간다


24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시집와

쌍둥이 낳아 가정 지키고 산 죄밖에 없는데

일찍 부모 여의고 형제 없어 기댈 데 하나 없는 녀석이


새벽이면 동터오는 하늘이 무섭고

이 하루 어찌 살아낼까 두려워

하염없이 눈물만 난다더니

구멍 난 마음에 가랑비 내린다


흐르는 눈물 그 골짜기 어찌 가 닿으리

갈피마다 접어둔 시든 꽃마음 언제 피어나리

무릎 맞대고 앉아 마냥 기울인 귀만 커다랗다


언니, 나는 언니가 정말 큰언니 같아

언니, 나는 언니가 진짜 울 엄마 같아


네댓 살 터울진 나는

녀석이 부르는 대로

마냥 언니도 되고 엄마도 된다


왕방울 순한 소눈을 하고

아이처럼 두 손 번갈아 눈물 찍어내는 녀석

이 밤, 무작정 믿고 허물어진다


하릴없는 나

가만히 마음 등허리 내어준다

그것이 그냥 사랑 한 조각


녀석의 소눈을 바라보며

그 무릎 가만히 어루만진다

그것이 그냥 사랑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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