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불행
11월 28일
삼 개월을 재활치료에 전념했지만, 형주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24시간 계속 곁에 붙어 남편 수족 노릇을 하다 지쳐 침대 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내를 보며 자신의 삶이 처한 위치를 뚜렷이 확인했다. 가족들로부터 재활치료만 잘하면 곧 원상회복 되리라 들었지만, 그간 주위에서 보인 사람들의 태도와 의사의 낌새를 볼 때 자신이 어쩌면 영원히 그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앞으로 살아갈 의지마저 놓아 버린 것 같았다.
‘삶의 남은 시간이 이 짐을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멀다'
[어찌할 수 없는 날
어제는 가고 내일을 위해
네 세상은 저 산에 올라
불태우며 기다리는데
무심한 시간 속에서
상처만 남아 오늘도,
언제였나 우리의 꿈은
가엾어라! 그리워라.]
자신의 인생이 탄탄한 대로를 달리다 어느 순간 옆 숲 속으로 들어가 길도 아닌 곳을 헤매고 있음을 알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지. 그날 넘어질 때 사다리를 포기하고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학교에 병가를 내고 병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기간은 한정되어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도 교단에 설 수 없으면 퇴직을 해야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도 앞날에 큰 짐으로 다가왔다. 병상에서 밤새 앞날을 고심하던 끝에 오늘은 아내를 시켜 재호를 병원으로 불렀다.
의외로 형주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다가가 무심코 잡은 형주의 손은 차갑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얼굴을 보니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때. 빨리 털고 일어나야 제수씨가 너무 고생이 많으시잖아! 내가 뭘 해 줄까? " 재호는 형주가 중단되어 방치된 집의 마무리를 자신에게 부탁하려니 생각했다.
“내가 오래 생각했는데 나는 이 꼴로 그 집에 들어가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자니 내가 드린 공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는데 지금도 전원주택이 필요하다면 네가 인수해 주면 좋겠다. 앞으로 내 치료를 위해 돈도 필요하니, 그간 내가 드린 원금만 받을 테니 날 도와주는 샘 치고 그렇게 생각을 해봐 "
재호는 뜻밖의 제안에 당황은 했으나 생각해 보니 서로에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제안을 받아들이기에는 미안함도 앞섰다.
“야 너무 아깝지 않냐. 너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집인데 내가 그냥 가져가도 괜찮은 거냐고.”
“이런 상황에서 나 대신 친 구가 그곳에서 산다면 내가 더 고맙지. 네가 그곳에 살고 있으면 언젠가 나도 가끔 들릴 수 있잖아” 형주의 눈에 아쉬움의 그림자가 역력했다.
'그 고통이란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그것이 아닌데' 재호는 그를 배웅하는 형주의 아내를 생각하며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2003년 2월 10일
재호는 아침에 형주를 찾아가 오늘 그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알렸다.
“항상 친구를 생각하며 잘 관리하고 잘 살도록 할게, 건강 좋아지면 잘살고 있는지 한번 구경하러 와야지."
“고맙다, 하지만 몸이 언제 좋아지겠냐, 그렇다 하더래도 당분간은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네가 살면서 만족해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재호는 이사 전 집을 둘러봤을 때 형주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더욱 들었다. 가구설치에서부터 청소까지 끝난 상태에서 그가 그 집에 추가로 마무리해야 할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에 대한 호기심과 부픈 마음으로 이삿짐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웬 젊은 사람이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건물 준공 관계로 시청에서 나왔나 했는데 그 사람이 다가와 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집주인 되시나 봐요?”
“예 그렇습니다만”
“아 저는 요 윗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집 모양이 특이하고 예쁘게 잘 나왔어요. 지난번 주인이 여기 사신다고 참 열심히도 지으셨는데 그만 사고를 당하셔서 집을 넘기셨나 봐요.”
“예! 그 사람 내 대학 친구입니다. 불쌍하게 친구가 이 집을 사용하지는 못하게 되었고 나는 이 집이 마음에 들어 내가 인수하게 되었지요.”
“아! 그러십니까! 그분이 제 대학 선배님 되시던데, 그럼 제 선배님 되시겠네요. 저도 한국대 출신이거든요, 행정학과 90학번인데 지금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반가워요.”
“그 선배님 일은 정말로 안되었지만 한편 새로운 선배님이 오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는 이곳이 고향이라 아는 친구도 많고, 또 관에 근무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십시오.”
“정말 아주 잘 되었네요, 내가 이웃 복이 많은가 봐요, 하하하.”
“이제 편하게 말씀도 낮추시고 고 과장이라고 불러 주세요” 젊은 사람이 깎듯 하고 화통한 모습에 이곳 생활이 시작부터 조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22일
재호는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그를 맞이하였다. 복잡하지 않은 소박한 시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생활이 성격과 맞았다. 만나면 친한 체하고 마음과 달리 비용을 먼저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모양 등 상대를 배려하느라 시경 쓰는 만남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의 표정을 살피고 외출을 시작으로 무관심한 거리, 볼썽사나운 젊은이들, 방금 떠나버린 지하철, 그렇게 보내버린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안타까웠다. 이제는 보이는 현실보다 더 이상적인 상상의 세계에 안주하고 싶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나름 계획하고 있었다. 한 달 생활비, 취사, 세탁 등 일상의 생활에 관한 것과 취미 생활, 가족과 주민들과의 소통 등 차질이 없도록 세세히 준비했다. 벌려놓은 사업과 신경 써 줘야 하는 어린 손주들 때문에 발이 묶인 아내는 차후 상황을 보고 움직이기로 하고 일단 혼자 내려오게 되었다. 혼자만의 전원생활에 왠지 그는 또 다른 흥미와 설렘을 느꼈다.
애초 이 전원주택에 일주일에 기껏 이삼일 쉬러 올 요량이었으나 어느덧 혼자만의 생활에 매료되어 가면서 서울 가는 일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2월 26일
재호는 항시 형주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듣자 하니 요즘 외부와는 일체 연락을 끊고 있어 친구들이 재호에게 형주의 소식을 물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형주의 사정도 모르고 불쑥 찾아가기도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심하게 지내기도 도리가 아닌지라 재호는 서울에 가는 길에 형주의 집을 찾았다.
현관을 들어서자 알코올의 역한 냄새로 상황은 알 수 있었지만, 놀라웠던 것은 몰라보게 변해버린 형주가 아내 모습이었다. 그 희고 고왔던 교수 사모님 모습은 어디 가고 바짝 말라 검게 변한 얼굴에 반백의 머리는 그간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과연 신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은 어느 정도인지 과연 그 끝은 있는 것이지 묻고 싶어 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집안에는 온통 재활치료 기구와 휠체어, 그리고 천정에는 줄로 연결된 활동보조 기구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그곳은 일반 사람의 삶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재활치료는 잘 되고 있습니까? 언제쯤 나아진데요?”
“재활 치료사가 매일 와서 두 시간씩 하긴 하는데 무엇보다 본인이 나아야겠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저렇게 운동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짜증만 부리니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주 속상해요. 병원에서나 치료사도 언제 좀 나아질지 자신 있는 이야기를 안 해주니 답답해요. 그래도 처음에는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더니 이제 지쳤는지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리만 하니 제가 더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형주가 의외로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다가가 형주가 손을 잡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많이 좋아졌는데” 형주는 피식 웃기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 잘 왔네, 어때 이제 집이 자리가 잡혔겠네, 살만해?”
“그래! 내부 정리 끝나고 살기 너무 편하고 좋아, 너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잔디는 잘 살아났어? 거실 앞에 나무는 자주 전지를 해줘야 할 것이야, 그리고 비 세는 데는 없지? 배수는 잘 되고?”
“그래! 공사를 꼼꼼하게 잘해서 전혀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살고 있네” 그는 형주가 그 집에 대한 애착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것에 놀랐다.
“친구야! 텔레비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몇 년 전에 우리나라 모델계 유명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데, 그런데 섬에 들어가 혼자서 얼마나 재활치료와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지금은 바위 사이를 원숭이처럼 날아다니더라, 정말 대단했어.”
“아! 그래! 나도 그거 봤는데 그것이 나 하고는 경우가 달라, 그 사람은 아직 젊고, 그리고 상처도 그 사람은 신경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완전히 절단되어 찢어진 상태로 연결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야, 나는 알고 있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친구야 왜 생각을 그렇게 해? 너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전교에서 꼴찌로 있다가 3학년 때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일류대에 합격해서 학교가 난리 났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어! 사실 우리 나이가 됐으면 남은 삶 이젠 걸어 다니던, 앉아서 다니던 사는 데 별 차이가 없는 거야, 좀 불편할 뿐이지, 뭐가 크게 달라진 것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 자식들이나 집사람 경우는 다르지, 아직 앞날이 구만리인데 아빠 때문에 평생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 네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가족 전체 앞날이 힘들어지는 거야, 제발 이젠 맘 잡을 때가 되지 않았냐?” 그는 말을 하다 보니 격양되어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알고 있어! 그렇게 하려 하는데 잘 안돼! 그래도 네가 이야기해 주니 힘이 난다, 하하하. 고맙다. 자주 와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해줘! 하루종일 이렇게 있으면 별생각이 다 나거든.”
“그러지 말고 형주!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니? 너 그 집 인테리어 사장 김 화백 알지? 나 그 친구에게 그림을 좀 배워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 컨버스 하나 채우는데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걸리는데 정신 집중하는 데 그만한 것이 없더라, 너도 우선 그것 한번 해보지 않을래? 구족화가라고 그림을 발과 입으로 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 준비할 것도 별로 없고 김 화백 지도를 좀 받으면서 필요하면 나도 도와줄 테니 우리 그림 그리기 생활 같이 해보자, 그래서 전시회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3월 5일
[그렇게 아침이 오고
아득히 밀려오는
저곳에 봄은 피어오르고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한데
어찌 그냥 왔을까,
그 모습을
바람 울리며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을]
형주는 정년이 5년 이상 남아있음에도 결국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재활치료 결과는 손가락 감각이 조금 살아난 것뿐 다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어느 날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대소변은 물론 식사하는 것이나 샤워하는 일, 등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 주는 일, 매일 재활 운동시키는 일 심지어 휠체어에 앉히고 내리는 일조차 아내와의 몫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낮에는 나라에서 보내주는 간병인이 있다고 하지만 그 외 시간에 건장한 남자를 여자 혼자 건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식들 다 제쳐두고 물불 안 가리고 달라붙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남편의 상태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자 그녀는 지쳐가기 시작하면서 자신과 현실을 둘러보게 되었다. 끝없는 싸움, 자신의 삶은 이제 끝이 났음을 의미한다. 아이들도 잘랐고 시가에서 물려받은 재산도 있는 등, 모든 면에서 걱정 없이 후반기 인생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꿈꿔왔던 그 전원생활도 끝났고 회갑기념으로 계획한 중미 크루즈 여행도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친구들과 사모님 대접받으며 즐겼던 모임이나 골프 생활도 끝났다. 더구나 천문학적인 치료비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현관에 밖을 향해 서 있는 전동 휠체어를 바라보며 조금 있으면 자신도 저것을 타야 될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혼이 빠져나가 텅 빈 자신의 몰골과는 달리 남편의 얼굴은 사고 전보다 더 뽀얗고 포동포동하게 윤기가 넘친다. 남편을 위해서 그보다는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영 자신이 없는 것이 하다가 안 되면 남편과 같이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