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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며느리

3. 며느리

by 왕십리


김 지연

지연이 엄마는 안사돈의 사업 관계로 바쁜 바람에 손자의 육아를 혼자 떠맡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그녀는 매일 딸 집으로 출근해 오후에 보모가 올 때까지 아이를 돌봐야 했다. 자신의 딸이 소위 의사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났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그녀다. 당시 모든 젊은이의 결혼 상대자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딸이 끝까지 송 서방을 고집해 결혼할 때만 해도 시댁에서 많은 배려와 지원을 기대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딸랑 집 한 채 마련해 주고 가끔 안사돈이 들려 손자를 챙기는 생색만 내는 것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딸에게 원망스러운 푸념과 듣기 싫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딸의 심기를 불편하게만 했다.

“그때 그 김 원장 아들하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어, 굴러온 복을 발제로 차버렸으니 참.” 김 원장 아들 역시 나이는 좀 차이가 나지만 의대를 졸업하여 아버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면서 지연이에게 호감의 뜻을 비쳐온 터였다.

지연이도 결혼하기 전에 생각했던 달콤한 생활과 결혼 후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련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스트레스는 당연하다 치더라도 예전에 몰랐던 남편의 성격에 대한 실망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 무관심과 특히 육아 문제의 비협조로 인한 갈등이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남편은 퇴근 후 식사가 끝나면 자기 전까지 아예 게임을 위해 꾸며 놓은 방에 들어앉아 나올 줄 모르는 등 육아에 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또한, 지연이 얼마 되지 않은 수입은 육아비용과 친정엄마 수고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했으나 남편은 일정 금액만 생활비로 내놓고 나머지는 본인이 관리하므로 지연이가 쓰는 부분은 일일이 남편 허락을 받아야 해 자존심이 상하기 일쑤였다.

그녀가 임신 중이던 어느 날 있었던 일이었다. 운전 중이던 남편이 핸드폰이 울리자 황급히 집어 들었다. 허둥대고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응? 왜요? 다친 데는 없어요? 지금 지방 내려가는 중인데 어떡하지? 그럼 보험사에 연락하면 잘 처리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해, 운전 중이라 길게 통화 못 해서 미안해요.” 어렴풋이 들리는 상대방 목소리는 여자였다.

“여자 같은데 누구야?” 그는 당황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응! 회사 직원이야.”

“회사 직원이 토요일에 무슨 일로?”

“저기, 회사 출근 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나 봐”

“그런데 왜 오빠에게 전화를 해?”

“아! 사실은 내 직속 파트너로 나도 오늘 출근해서 같이 처리해야 될 일인데 혼자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사고는 처음 당해서 당황했나 봐.” 그녀는 남편의 해명이 충분하지 않았다. 평소 운전 때 사용하던 핸드프리도 사용하지 않고 쩔쩔매는가 하며 원래 누구든지 사고가 생겨 급할 때 연락하는 곳은 가장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 생각이 들자, 문뜩 작년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역시 남편과 같이 이동 중이었다. 조수석 앞쪽 발끝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 집어보니 낯선 여자 선글라스였다. 그때도 그 직원이 등장했다. 그 여자를 태우고 업무차 거래처를 다녀왔다는 것이다.

“업무를 보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고?”

“그런 것은 아니고 핸드백에 있던 것을 흘렸나 보지.” 그때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남편의 수상한 행동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저녁에 전화가 오면 들고 밖으로 나가는가 하며 아예 전화벨을 무음으로 하거나 잠금장치를 걸어 놓는 등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각난 것이다.

의심 끝에 그녀는 결국 남편의 전화기를 엿보게 되었고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그 여직원의 남편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표현과 남편은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호응하며 즐기고 있었던 내용이 적나라했다. 그녀는 모멸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때맞춰 방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향해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이불을 둘러쓰고 엉엉 울며 소리쳤다.

“더러워! 더러워! 엄마! 엄마! 나 어떻게 해!” 남편은 사태가 심각함을 알아차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연아!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싫어! 싫어! 내 몸에 손대지 마! 더러워.”

“화를 내더라도 내 말 좀 들어보라고! 그 여자하고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깨끗해 난! 정말 맹세할 수 있어.”

“뭐? 깨끗해? 사랑한다고 하트 풀풀 날리면서 잘 때마다 생각난다고? 오빠! 나한테 언제 사랑한다고 그런 표현해 본 적 있어? 나! 이제 못살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나 엄마한테 갈 거야”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 여자가 좋아한다고 하도 그러는 바람에 같이 일하는 처지에 거절하지 못하고 맞장구친 내가 너무 잘못했어. 지연아 너 너무 흥분하면 큰일 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좀 진정해. 내일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없도록 할게!” 그는 결사적으로 그녀를 붙들어 앉혔다. 남편은 출근도 하지 못하고 며칠을 그녀 달래기에 매달렸다.

지연이는 자존심상 상대 여자를 무시하고 남편을 믿고 싶었다. 이 문제를 키워 남편하고 다투고 신경 쓰면 무엇보다 태교에 큰 지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남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있으며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남편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녀는 배신감에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10월 5일

재호의 아내는 나름 며느리 입장을 생각하며 배려한다고 하지만 며느리는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여자에게 공감 능력이 좀 부족해 지연이를 살뜰히 챙기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에 그러면 나라도 좀 더 며느리에게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미리 며느리에게 손자를 보러 아들 집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해놓은 터였다. 사돈이 마주치기 싫어하는 눈치를 알고 일부러 보모가 있는 시간에 맞추어 손자와 사돈을 위한 물건을 챙겨 들고 아들 집으로 향했다. 손자를 만나기 위해 한번 방문 때마다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손자를 만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를 본 손자 녀석은 뒷걸음치며 보모 품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억지로 할머니 품에 안긴 손자의 눈은 계속 보모를 찾는다. 보모보다 먼 피붙이! 그녀는 이 가정에 알 수 없는 낯섦과 불안감을 느꼈다.


11월 3일


“너 지연이 하고 무슨 일 있어?”

그녀는 고민 끝에 아들을 제과점으로 불러 그 가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따지러 들었다.

“무슨 소리예요?”

“솔직히 이야기해 봐! 내 느낌이 아무래도 너희들 정상이 아니야! 지연이 태도를 봐! 너는 느끼는 것이 없어?” 한참 말이 없던 아들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 나도 짜증 나!”

“왜? 뭐가?”

“아니 지연이 우리 집에 잘 오려고 하지도 않고, 모처럼 와서도 하는 것 보세요. 내가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못 살겠어요. 집에 와서 말도 잘 안 하고,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안 분위기는 맞춰야 하지 않아요?”

“그거야 지연이가 말이 없고 워낙에 바쁘고 힘드니까 그렇지, 그건 네가 좀 맞추어주면 되지 않아! 너 하기 나름 아니냐.” 아들은 주저하더니 마침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뿐 아니에요, 창피해서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애 낳고 지연이하고 밤 자리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어? 그게 무슨 소리냐?”

지연이가 잠자리를 거부해서 그동안 한 번도 못했어요.” 그러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아들 가정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써 알게 되었다.

“왜? 그게 말이 되냐? 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네가 어떻게 했다고 지연이가 그러는 거야?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마음이 조급해진 그녀는 아들을 채근했다.

“모르겠어요, 지연이가 임신했을 때 회사에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후배 여직원과 찍은 사진 때문에 다툰 적이 있었어요. 아무튼, 그 여자와의 사이를 의심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무슨 소리야! 후배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별거 아니에요. 그 후배가 일방적으로 저를 좋다고 하며 그때 찍은 사진을 하트 마크와 함께 보내는 바람에, 그러나 그때 충분히 해명도 하고 사과도 해서 잘 무마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게 구실이 된 것 같아요.”

“아이고 이 사람아! 어쩌자고 그런 사진을 보여서 이 난리를 나게 해! 이를 어쩌면 좋아! 그런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여자가 어디 있다고!”

“아니, 내가 뭐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내가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걔 지금 자기가 의사랍시고 유세 떨고 있는 거예요! 엄마도 너무 지연이 뜻 받아주려고 하지 마세요. 나도 힘들어요. 어쩌면 우리 이혼할지도 몰라요!”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야! 뭐 이혼? 그거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이혼이라니, 그런 소리 다시는 내 앞에서 하지 마! 나는 그 꼴 절대 못 본다.” 이제까지 탈 없이 잘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곪아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아들이 속상한 나머지 푸념으로 내뱉는 소리라고 치부하기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11월 15일

재호도 아내로부터 아들의 상황을 전해 듣고 역시 충격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드라마에서나 들었던 이혼이라는 단어가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던 아들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결혼 잘했다고 주위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아들의 이혼이란 상상도 못 해봤다. 게다가 어쩌면 아주 떠나 버릴 손자 녀석 생각에 벌써 가슴이 먹먹해진다. 재호는 완벽했던 자신의 집안이 한 귀퉁이에서부터 서서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 정확한 이유가 뭐야? 며느리가 확실치 않은 의심만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이 지연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한번 들어 봐야 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기회 봐서 지연이를 만나 이야기는 들어보겠지만, 부부의 잠자리까지 꺼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당장 이혼하겠다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좀 더 지켜보다가 시간 날 때 당신도 아들하고 차분히 이야기 한번 해보세요.” 아내도 애써 심각해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듯했다.

'그래! 이혼이 그렇게 쉽나, 자식도 있고 사회적인 인식도 있는데, 살다 보면 그런 갈등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 다들 서로 맞추면 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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