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착공, 불운
2월 13일
[돌아서는 돌담, 새소리와 함께 하루의 희망을 깨운다
촉촉한 나무들과 온몸을 감싸는 풀냄새
낮은 석축 위 작은 장독대, 그 밑 채송화밭 그리고 버려진 생수병
긴 적막 속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예부터 당연하듯 시침을 떼는데
내 눈에는 이제야 그것이 보인다.
이쯤이면 저 슬레이트집 황구가 낌새를 차리고 온 동네 아침을 깨우고,
어느새 주위를 포위한 깔따구들은 내 정신을 구겨놓기가 십상이다.
결국, 악당들 때문에 뜻을 포기하고 가던 길을 멈춘다.]
형주는 오늘 뒤쪽 골목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상쾌한 아침 정취가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누워있는 여인의 허리처럼 흐르는 곡선은 아침 실안개에 감 쌓인 봉우리로 그 신비함을 이어 간다. 어렸을 때 기억하는 아침 마을 굴뚝 내음이 골짜기를 채우고 올라왔다.
대지는 양지바른 능선에 위치해 바라본 앞산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설레게 했다. 이 땅에 형주가 주말주택을 짓기로 생각했던 것은 퇴임 후 계획한 노후 대책의 일환이었다. 아버지도 생전에 이곳에 집을 지어 노년을 보낼 계획을 세웠으나 여의치 않아 장기간 방치되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불법으로 밭을 가꾸어 점유하는 바람에 법적 소유권 문제가 염려되어 일찍 아들에게 증여한 땅이었다.
인근 도시 지방대학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틈틈이 설계하고 모형도 만들어가며 노후에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운 집 계획에 많은 공을 들였다. 평소 라이트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의 작품을 연상하며 계획을 시작했으나 현실에 맞추다 보니 많은 부분이 본 개념에서 퇴색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아래층에 화장실과 드레스룸이 딸린 안방, 중앙 거실, 주방 겸 식당, 공용 화장실, 손님용 침실, 한편으로 크게 자리한 자신이 사용할 서재 겸 작업실, 그리고 위층에 침실용 다락으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넓은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한 조경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드디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실제로 건축 이론을 떠나 시공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집을 직접 지어보기로 했다. 공사 기간에 대한 부담도 없고 재미도 있으면서 공사비도 훨씬 저렴하게 갖고 싶은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그렇게 시작한 집 짓기는 처음 생각대로 틈틈이 하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일꾼과 장비 수배하는 일, 자재 구매하는 일들은 책상에서 할 수 없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해야 할뿐더러 이런 모든 일정을 내 중심이 아닌 상대에게 맞춰야 하기에, 시간이 날 때만 공사를 한다는 것은 현 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자 그는 아예 안식년 휴가를 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나섰다.
멀리서 중장비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8시에 약속한 굴착기가 이제야 나타났다. 미리 동네 가구마다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공사에 대한 양해를 얻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굴착기 소음이 커 아침부터 이웃에 민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오늘은 측량사가 찍어준 대지 위에 건물의 위치와 바닥의 높이를 정하여 그가 미리 횟가루로 표시한 부분을 일정깊이로 터파기 하는 작업이다.
“사장님 조금 더 여유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미리 여유를 보고 표시한 것이니 선 따라 그냥 파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저 잡석도 다 깔고 다지기까지 해야 하니 서둘러 주세요” 굴착기 작업이 한나절 이상 걸리겠다는 말에 계속 지켜보고 있기 불편한 그는 시청에 들러 볼일을 보고 점심까지 마친 후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장님! 여기서 저런 것이 나왔는데요” 기사가 가리키는 곳에는 항아리 파편들을 파서 한데 모아놓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동물의 것인 듯한 작은 뼈들과 천 조각 같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아이 무덤입니다” 그는 깜짝 놀랐지만, 기사는 이런 것은 흔하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옛날에는 아이들은 항아리에 넣어 묻었지요”
“이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폐기물 버릴 때 같이 나가면 됩니다”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어떻게 해요, 이 땅에 이이 무덤을 그냥 둘 수도 없고 관에 신고하면 연고자 찾는다고 공사도 못 하고 아주 복잡해요, 뼈도 거의 삭은 것 보니 오래된 것 같은데 이런 것은 다 그렇게 처리합니다” 형주는 약간 당황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무덤에 관해서는 물론 그 땅을 어떻게 취득하였는지도 듣지 못해 구태여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2월 22일
친구 딸 결혼식에서 만난 재호와 형주는 대학교 건축과 동기 동창으로 학교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 형주가 건축심의 위원으로 있으면서 재호 회사가 공사를 수주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사회에서도 그런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재호는 전원생활에 관한 관심이 우연히 일치하면서 형주가 지금 지방에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
“이봐 김 교수! 요즘 공사판에 나가 있다면서, 교수 때려치우고 이제 집 장사로 나선 거야?”
“아니야, 집 짓기보다는 취미 삼아 내가 살 집을 직접 해보고 있어, 별거 아니야.”
“야! 대단하다, 너 그동안 뭐 하고 있나 했더니 야무진 계획을 하고 있었구나.” 재호는 형주가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주택의 투시도를 보며 부러워했다.
“그래 어디야? 몇 평에 돈은 얼마나 들어?”
“이제 겨우 땅파기 시작했는데, 그것보다 너 오늘 마침 잘 만났다. 앞으로 골조공사와 마감도 하려면 전문업체를 좀 알아야 하는데 너희 옛날 회사에서 일하는 기능공 좀 소개해줄 수 있나?”
“야! 그런 것을 왜 일찍 말하지 않고, 필요하면 뭐든지 이야기만 해!”
“그리고 너 요즘 시간이 되지? 가끔 내려와서 조언 좀 해주면서 도와줘, 내가 점심은 살 테니”
“실은 나도 집을 지어볼까 생각 중이거든, 가보고 좋으면 나도 그 동네에 지어서 너하고 옆에 같이 살면 아주 좋겠는데.”
재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동해 쪽보다 이곳에 전원생활을 계획한다면 아내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3월 5일
오늘 형주는 재호가 소개한 목수와 함께 이틀 전 캐나다에서 도착한 목재를 점검하러 현장에 나왔다. 방충, 방부 처리된 건조 목이 현장조립 할 수 있도록 완전하게 패킹되어왔다. 딸려온 패킹리스트와 조립 안내서를 검토한 결과 목구조 골조공사 기간은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둥에 흰개미 방충 처리도 해야만 되는데요.”
“여기 보니 그 재료도 같이 와있고 매뉴얼에 방법도 잘 나와 있으니 이것 보고 하면 됩니다.”
“그럼 골조 세우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예 조공 2명과 데리고 기초 면의 수평만 잘 맞추면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기초와 바닥 슬라브는 잡석을 다져서 지내력을 확보한 뒤 방습 포와 단열재를 깔고, 설비 배관을 한 후 철근과 콘크리트 구조로 완료된 상태이다. 목수와 이야기 중에 미리 약속한 재호가 현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터가 넓네, 이것이 이백 평이라고? 이쪽이 남향인가?”
“어때! 남쪽으로 전망이 괜찮지?”
“현관 위치는 여기이고, 앞뜰이 넓은 것이 아주 좋네.”
목수가 내일부터 작업 시작하기로 하고 돌아간 뒤 둘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야! 아버지께서 자리 잘 잡으셨다, 포근한 분위기가 택지로써는 명당이네! 저 위쪽 땅 정도면 땅값은 어떻게 할까?”
“나도 잘 알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거야. 부동산중개소에 한 번 알아보도록 할게!”
“우리 두 집이 같이 있으면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같이 살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또 나타나겠다.” 이제까지 마음만 있고 막상 시작하기 어려워했던 재호도 이제 실행의 의지가 확실해졌다.
3월 26일
목수 작업이 끝나자 이제부터 형주가 직접 작업을 해야 할 공정에 돌입했다. 우선 컨테이너를 현장에 설치하고 필요한 공구들을 임대하여 들였고 도면에 따라 자재 양을 계산하여 구매 계획을 세웠다. 단열재, 내외부 마감재, 창호재, 지붕재, 등 기구, 위생기구 등 형태. 재질 및 가격을 꼼꼼히도 챙겨야 했다.
자재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드는 데는 이론과 실기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고, 따라서 예상하던 비용과 공사 기간도 늘어나는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었다. 오뉴월 뙤약볕에도 자신의 집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모습에 자부심과 만족감으로 힘드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다고 현장에 얼씬도 안 하던 그의 아내도 건물의 모습이 나타나고 색이 더해지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직접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화장실이 적고 마감이 어둡다. 부엌에 아일랜드 식탁이 필요하다. 수납시설이 적다. 등등 때로는 이미 시공된 부분을 철거하고 다시 시공하는 적도 적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도 변해가는 집 모습에 흥미를 갖고 연일 지켜보고 갔다.
5월 21일
어제 정화조와 하수도 공사를 마치고 오늘 굴착기가 들어와 부지 정지와 정원수를 심기로 한 날이다. 원래 아내의 뜻에 따라 마당 안쪽으로 작은 텃밭을 만들기로 했지만, 형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택 모양에 텃밭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기에는 노년에 쉽지 않다는 것을 아내에게 설득하여 결국 원래 생각대로 잔디 마당을 넓혔다.
오후에 재호가 현장에 내려와 변한 현장 모습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몰딩에 비둘기색이 조금 튀는 것 같아 거슬리는데 벽지와 채도가 같고 명도만 조금 차이 나는 색상으로 바꿔 보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야 부엌 가구 색과 이어지면서 공간이 좀 넓어 보일 것 같네요. 그리고 지난번 결정한 부엌 바닥 타일 색은 아직 샘플이 준비 안 되었나요?”
“내일까지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몰딩 색도 같이 준비해 주세요” 형주는 인테리어 시공자와 견본을 잔뜩 펼쳐놓고 한참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는 내부를 돌며 자신이 결정한 마감에 대한 재질과 색상을 일일이 재호에게 설명하며 의견을 물었지만, 전체적으로 개념이 머리에 있지 않은 재호로서는 도움이 될만한 의견이 없었다.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밝은 원 톤으로 가는 것이 요즘 추세인 것은 맞다, 야!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이렇게 직접 해냈다는 것이 믿기 지가 않는다. 우리 집 지을 때도 네가 아예 도급받아 지으면 되겠는데.”
“교수님의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저도 미대를 나와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했지만, 특히 교수님같이 이렇게 색감에 자신 있으신 분은 처음 뵙니다.” 형주가 소개한 인상이 좋아 보이는 인테리어 사장은 그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래 맡겨만 줘, 이번 기회에 아주 건축업자로 나서볼까 하는데, 하하하.” 그것은 그의 입바른 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그의 정성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8월 10일
형주의 아내는 집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구와 에어컨 설치 및 주방가구 사들이기에 신이 난 듯이 연일 내려왔었다. 그는 며칠 전 신청한 건물 사용승인 서류가 언제쯤 처리될지 확인차 시청에 들은 후 현장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면 이삿날을 잡아도 되겠다.‘
도로에서 바라본 자신의 주택은 한눈에도 그 자태가 남달랐다. 조경수와 잘 어우러진 뷰가 주택 관련 책자에 실려도 손색이 없겠다. 문뜩 경계선에 둘러심은 나무들이 자라면 전면 시야를 가릴 것 같은 생각에 그 부분은 누운 소철이나 향나무 등 낮은 것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건물 내외부 마지막 청소를 시작했다. 창틀에 붙은 보호필름들을 제거하고 유리창 닦기, 화장실 위생기구 및 타일 닦아내기, 벽체 닦기 등 내일 아내까지 내려와 같이 하더라도 최소 이틀은 해야 할 작업이다.
9월 30일
밖은 어느덧 가을이 깊어지고 주변의 빛바랜 단풍은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간 재미와 더불어 시작했던 집짓기, 너무 힘들 때는 당장 포기하고 업체에 맡겨버릴까도 했지만 결국 해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했다.
‘이제 어려운 일은 다 끝났다,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 잠시 뜰에 앉아 봉지 커피 한잔 타 마시며 쉬는 중에도 그는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에이! 저것을 결국 손보지 않고 갔구나’ 그는 지붕 추녀에서 내려온 물홈통과 벽체 선이 평행을 이루고 있지 않아 처음부터 눈에 거슬려 함석공에게 지적을 했는데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이 손을 떼고 떠나기 전에 손보도록 해야 했는데 지금 연락해서 고치라고 해봤자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다. 망설임 끝에 그리 높지도 않고 망치질 한 두 번이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즉시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갔다. 그러나 사다리 끝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생각보다 아찔해 겁이 났다. 간신히 허리를 펴고 일어서려 하는데 잔디밭 위에 세워진 사다리 한쪽 발이 땅속을 파고 내려앉으며 기울어 옆으로 쓰러지려 했다. 놀라서 균형을 잡으러 사다리를 붙들고 버티던 그는 결국 사다리와 함께 땅으로 떨어지면서 입구 계단난간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악!” 형주는 눈앞이 섬광과 함께 하얀 연기로 뒤 덥혀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니 파란 하늘만 보였다. 무슨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가 나는 것 같지도 않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심하지 않고 방심했던 자신을 나무라며 행여 누가 볼까 창피하여 빨리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몸에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을 알았다. 상체는 물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목도 가눌 수 없이 꼼짝하지 못하고 등이 땅에 붙어있는 듯 그냥 하늘을 쳐다보며 누웠다. 두려움이 엄습하며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느끼고 소리를 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목소리는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웠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느끼는 것은 얼굴을 스치는 싸늘한 가을바람뿐이었다. 그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그는 공포에 떨며 그 자리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밖으로 나갈 때와 달리 못 보던 사다리가 뜰에 넘어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 주민이 형주를 발견할 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는 새로운 집에 관심을 갖고 이미 형주와 인사하고 지낸 사람이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은 황급히 달려들어 형주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그의 몸이 축 늘어지며 고통으로 고함을 치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앉았다. 119를 불러 급히 그를 인근 응급실로 실어왔다.
엑스레이를 확인한 의사는 환자를 즉시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종용했다.
“수술이 응급합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연락했으니 당장 출발하세요” 의사는 응급 차량을 대기시키고 서류를 건너 주며 따라온 이웃 주민에게 재촉했다. 그 사람은 부득이 응급 차량에 다시 올라타면서 뒤늦게 연락을 받고 내려오고 있는 형주의 아내에게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바로 오라고 다시 연락했다.
아내가 어제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주는 이미 수술이 들어가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에 멀쩡하게 집 나선 사람이 이렇듯 생명이 경각에 달린 채 수술실에 누워있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녀는 도와준 이웃 주민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새 수술실 앞에서 뜬 눈으로 지새웠다. 무려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친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황급히 달려가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의사의 소견은 기대 외로 절망적이었다.
“목뼈 3개가 심하게 파손되어 중추신경이 여러 조각으로 찢기는 바람에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한 채 수술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회복 상태를 보면서 재수술도 해야 하고 어쩌면 전신 마비 상태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수 있으니 가족들의 마음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내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앞이 노랗게 변하며 현기증이 일었다. 도대체 자신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며 뭘 준비하라는 것인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재호는 하루아침에 당한 친구의 비통한 사고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는 당황한 친구의 가족들 앞에서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당분간 친구 곁을 지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