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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송 재호

송 재호

by 왕십리


[년 말을 넘긴 운명의 마차는 금 년에도 어김없이 그를 찾아왔다.

어떤 계획으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운명이 지시하는 대로 순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피 흘리며 싸워야 하는지,

또는 이르고 매달리며 타협을 해야 할지

그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위엄 있는 눈빛으로 외치며 마차에 빨리 올라타기를 재촉한다.

“이것은 숙명이야!”

그렇게 2002년이 출발했다.]







2002년 2월 2일

지금도 휴일은 언제나 재호에게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준다. 은퇴 전에는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평일에는 아직 현직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혼자만 집에서 놀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 때문이다. 그러나 구정이나 추석 연휴는 그렇지 않았다. 손자들까지 온 가족이 모이는 그날은 반가움도 잠깐 곧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진다.

재호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내는 보이지 않고 집안은 너무 조용했다. ‘오늘이 설날 아침인데 차례 준비는 안 하나?’ 그는 거실로 나왔다. 식탁에는 어제 만든 요리들이 널려 있었고 끓는 음식 냄새는 코를 자극했다. 늦게까지 같이 술 한잔했던 아들은 소파에서 곤히 잠들어 있고, 부엌에는 아내 혼자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왜 혼자 그러고 있어?” 기대한 며느리와 오순도순하는 모습은 고사하고 자칫 명절 분위기나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쉿! 조용히 하세요! 애들 좀 더 자게”

“내가 뭐 도와줄 것 없어?”

“괜찮아요, 어제 다 준비해서 지금 특별히 할 것 없으니 당신도 좀 더 자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시댁이 신정을 쇠는 바람에 구정 때에는 매번 친정을 찾아온 딸이 기척을 듣고 방에서 나오면서 올케가 자는 방을 쳐다보고 엄마에게 투덜댔다.

“언니는 어제 늦게 와서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거야?”

“놓아둬라, 모처럼 쉬는 날인데 자게 둬라, 얼마나 피곤하겠냐, 차례는 우리 식구 들 만인데 좀 늦게 지내도 되지 않아!” 딸은 그러는 엄마가 매번 불만이다.

“아니 여기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어! 엄마가 혼자 부엌에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딸은 기어이 거실 불을 켜고 텔레비전을 켜서 볼륨을 높였다. 새언니를 깨워 나오게 하려는 심사였다. 그러나 아들이 먼저 깨어 일어나 상황을 살피더니 급히 아내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쉽게 며느리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아들은 엄마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할 일 없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재호는 기분이 언짢아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정월 초하루 아침부터 더 기분이 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들 기준이는 늘 재호의 자랑거리였다. 결혼 전 아들과 며느리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외모가 준수하고 공부도 잘하여 아들은 당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며느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아들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며느리가 집에 놀러 오면서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집안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아들이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하는 한편 며느리는 어렵게 의과대학을 나와 현재 대학병원 전공의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의사의 사회적 위치가 높다고 하지만 시댁에서는 언뜻 며느리를 모시고 사는 꼴이 된 분위기가 재호는 맘에 들지 않았다. 결혼 전과 다른 며느리의 또 다른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 아내에게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난다는 아내는 오히려 며느리를 적극적으로 감싸고 나섰다.

“요즘 애들은 다 저래요, 그래도 지연이는 많이 나은 편이니 아무 말씀 마세요, 시 부모에게 말대답하고, 심지어 시댁에 발도 드려놓지 않은 애들도 많아요. 그리고 의사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치열한지 아무나 못 하는 거예요” 게다가 결혼 초만 해도 그렇게 당당했던 아들마저 요즘 며느리에게 맥을 못 추는 분위기를 보고 재호도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며느리를 나무라 봤자 힘든 사람은 우리 아들이다.’ 어느 선만 넘지 않는다면 귀엽게 봐주려고 마음먹었다.

송 재호

재호는 서울의 한 가정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웠던 가정형편은 그를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중심의 성향으로 자라게 했었다. 남달리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서울시장상을 받아 자랑스럽게 아버지에게 내밀었는데 뜻밖에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면 가난하게 산다. 그림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아버지의 한마디에 그는 그림에 대한 모든 것을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공부에 매진하여 일류대에 진학한 그는 부모 뜻을 받드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졸업 후에는 학사 장교로 군대를 마치고 대기업의 건설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성공을 위하여 그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집념으로 그는 남들이 꺼리는 현장근무나 해외 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자연히 회사로부터 그러한 노력과 능력들이 인정되어 보직과 진급 면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생활에 매달리면서 자연히 이성에게 소홀했던 그는 결혼 적령 시기가 넘어가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하고 있었다. 곧 해외 장기근무를 떠나야 할 형편에 결혼이 기약 없이 늦어질 상황에 이르게 되자 조급해진 그는 여러 곳의 중매에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단시간에 상대를 찾기가 여의치 않아 답답하던 차에 동생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언니를 소개하겠다고 나서게 되었다. 자칫 겹사돈 사태가 벌어질 상황에 부모와 형의 반대는 당연했으나 자신들은 친구 이상 아니라는 동생의 주장에 결국 중매는 이루어졌고 그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사실 그는 나름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장남인 처지에 자신 입장만 내세울 수 없었고 부모와의 관계를 우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상대가 지적이고 성격이 무난하며 여러모로 자신과 어울린다고 스스로 달래며 긍정적으로 판단하였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동생도 처제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 후 재호는 1남 1녀의 자녀를 얻게 되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안정적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다만 회사생활에서 해외와 지방 근무를 많이 하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가부장적인 사고가 강해 남자는 밖에서 경제적 책임만 다하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아내 중심의 가사를 강조했고 아내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속에서 자녀들은 건강하게 자랐고 학교생활도 우수하여 그의 기대 이상의 대학에 진학하여 훌륭한 직장에 취업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에는 아내의 자식에 대한 강한 집념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한 그런 아내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들 입시와 학원에 대한 정보입수를 위해 동분서주하였음은 물론, 추운 겨울날 유명한 학원 등록접수 날에는 학원 앞에서 밤을 새우며 줄을 서기도 했다. 매일 학교와 학원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아이들 건강을 챙기느라 전국에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이 떨어질 새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모두 일류대학에 진학시킨 후에도 그녀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성형과 몸매관리 등 분수에 넘는 돈을 들여서라도 딸의 외모를 새롭게 태나게 하였고, 어렸을 때 키가 남보다 작아 걱정이었던 아들은 전국 유명한 한약방을 모두 찾아다니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여 지금의 아들로 키워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의 결혼을 위하여 학교나 주거지 심지어 교회까지 고려하여 이사 다닌 결과로 부잣집 사위와 의사 며느리를 얻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식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은 아내의 극성 때문에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그 결과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내는 자식들 교육 때문에 학부모들과 교류 과정에서 알게 된 부동산 정보를 통한 과감한 투자로 여러 곳에 상당한 재산도 모아 노후는 아무 걱정이 없게 해 놓았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결혼하고 부동산도 시들해진 지금 갑자기 할 일이 궁한 아내는 결국 그 힘들다는 제과점을 차리고 나섰다. 천상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닌 것은 재호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가 회사 부사장으로 퇴임하여 가족 곁으로 돌아왔을 때 가정에는 모든 것이 안정되고 낮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신이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동안 자식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죄스러워 애태우던 부모도 몇 년 전 어머니의 상으로 더 이상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임원 회의를 열지 않아도 되고, 이사장 앞에서 실적 보고 전에 가슴 조일 필요도 없다, 집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자식들 앞날을 고심할 필요도 없다, 이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행복 내 삶만 생각하자, 나는 충분히 그러할 자격이 있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퇴직 후 그는 자신의 삶을 추구하며 1년을 분주히 움직였다. 그간 회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모임도 찾아가고 어쩌다 만나 식사 한번 하자고 지나간 말로 했던 친구들을 연락하여 같이 식사도 했다. 골프, 낚시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도 시작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때문에 버렸던 그 그림, 옛 감성을 태워 피어나는 향수는 자신을 더 깊고 포근한 세계로 인도하는 또 다른 길임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뜩, 회사 다닐 때는 넓고 안락하기만 했던 집이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는 거실로 나와 집을 둘러보았으나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아파트는 공간 배치가 너무 뻔해! 평형과 상관없이 너무 획일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숨은 공간이 없구나, 더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나?’

그동안 그는 아내가 오래전에 사놓아 방치된 동해 쪽 땅에 꿈꾸어왔던 전원주택을 수없이 그리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그 일에 대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볼 생각이었다. ‘나이가 더 들면 일 벌이기가 어려워져’

마침내 현장을 다녀와 계획을 확정하고 소요 예산 등을 정리하여 아내와 상의했다.

“여기서 좀 멀기는 하지만 당신 좋아하는 바다도 가깝고 어차피 땅이 있으니 건축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의 계획에는 특별히 가족과 아내를 위한 부분은 없었다.

“바다는 가까운데 우리 집에서 너무 멀어,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 거주하고 우리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너무 불편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나도 당장 시골로 다닐 상황이 아니잖아요, 지금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생각을 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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