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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관심

06. 관심

by 왕십리


4월 11일


[그것이 아마 사랑일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무슨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인가

많은 사랑을 보았다.

이제 그런 사랑은 아니다.

때 묻고 땀 흘려 더러워진 심신을 깨끗하게 씻고

테라스에 앉아 편안히 노을을 보며

커피 한잔 하는 그런 사랑이 좋겠다]


‘과연 이 나이에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어떤 것인가?’ 재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오묘한 감정에 대해서는 나름 애써 정리해 보았다.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일 뿐이야. 정말로 마음을 털어 대화가 하고 싶은 친구를 원하는 거라고.’


커피잔을 앞에 한 그녀는 모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그녀는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를 보고 반겼다.

”어서 오세요, 커피 한잔하실래요?”

“커피! 좋지요!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커피잔을 놓으면서 의자를 권했다.

“오랜만에 오신 것 같아요.”

“오늘은 좀 한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요일에 그것도 오후에 제일 한가합니다. 하하하.”

“매번 서울로 가야 했었는데 덕분에 편하게 구매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저 때문에 번거로운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도 장사하는 것인데 외려 고맙지요.”

“그런데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나 봐요. 재료를 많이 쓰시는 것 보니. 혹시 유명한 분이세요?”

“아니, 아닙니다, 무슨 아마추어가 작품 활동이랄 것은 없고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 부탁하는 김에 미리 좀 확보하려고 해서.” 그는 마치 훔쳐보다 들킨 모양 찔끔했다.

“주로 어떤 작품들을 그리세요?”

“이것저것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 그려요. 주로 풍경을 위주로 많이 그립니다. 그게 제일 실속이 있을 것 같아서요.”

“실속요? ”

“예 자연 속에서 휴식 겸 좋아하는 그림도 그릴 수가 있지요. 하하하.”

공간에 알 수 없는 그윽한 향기가 그를 감싼다. 그 또한 이렇게 그녀를 볼 수 있는 수요일 오후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저것 고흐 그림이네요, 아주 개성이 강한 사람이죠.”그는 그녀의 뒷벽 달력을 보며 이야기했다.

“이 사람 작품에는 억압된 열정이 꿈틀대는 역동감이 특징인데 이 작품은 그 위에 온화한 안정감을 조화시킨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한번 보세요,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지 않나요. 하하하.”

“저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과 귀를 자른 자화상만 생각나는데 이런 풍경화는 처음 봅니다.”

“고흐가 왜 자신의 귀를 자른 이유를 아십니까? 고갱과 싸우고 난 후 분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재미있게 듣고 있는 그의 미소를 보면서, 깊은 눈빛, 그 깊은 호수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흐는 참! 삶이 불행했다고 할 수 있어요, 교회의 광신도로 열정이 대단했지만, 그것이 현실과 괴리가 컸어요, 사회가 받아주지 못했지요, 못 가진 자들의 비애를 품고 표현하려 했지요,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지만요,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생전에 그가 받은 고통과 울분은 분출되지 못하고 응어리로 남아 사후에 저렇게 보석같이 환희 빛을 발하고 있다 할 수 있지요. 다들 아는 이야기인데 너무 아는 체했네요, 미안합니다.”

“개인 전시회도 자주 하세요.”

“예! 작년에 한 번 했지요, 개인전은 아니고 시 주관 아마추어 작가들을 위해 문화회관에서 단체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년에요? 몰랐네요. 가볼 만했을 텐데요.”

“그런데 후회가 되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꼴이지 뭡니까. 지인들을 초청해야 하고, 와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한두 점 사주면서 가격도 모르니 그냥 성의껏 보내지요. 돈이 문제가 아니고 결국 내가 애착이 가고 아끼는 작품들을 다 없어지고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 만남아 마음이 가난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전시회 출품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그냥 고마운 분 또는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선물로 만 드리고 싶어요.”

“원래 미술전공을 하지 않으셨나 봐요.”

“저는 미술대학은 근처도 못 가봤습니다, 엔지니어 출신이고 직업도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임했지요. 당시 회사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같이 세상을 절반만 보고 살다 보니 삶의 맛이 솜을 입에 넣고 씹는 맛이라 견디기가 힘들었지요, 거칠고 삭막한 직업의 성격상 돌파구로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이 내 적성에 맞아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었고 급기야 노후에는 내가 의지하고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이곳에 화방을 만들어 기거하고 있어요.” 그녀와 오랜 시간 의미 있는 대화를 했다는 만족감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제 이야기만 해서 미안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자주 미술과 건축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그런데 그녀는 왜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안 할까?'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아직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해 섭섭하기도 했지만, 여자가 함부로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4월 14일


그는 망설임 끝에 형주를 위해 그렸던 자신의 집 풍경 그림을 집어 들었다. 사연이 있는 만큼 자신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친구는 이 집 그림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필요하면 후에 다시 그리면 된다.'

표구를 마친 그림을 들고 그녀 앞에 섰다.

“사장님! 이거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인데 이곳에 걸면 너무 어울릴 것 같아 가지고 왔습니다. 보잘것없지만 그간 나 때문에 시경 많이 써주신 사장님께 감사해서 가지고 온 내 성의이니 받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아~ 저 달력을 저쪽으로 옮기고 그곳에 걸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내가 걸어줄게요.” 그녀는 의외의 선물에 놀라 손으로 잎을 가리며 웃는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그냥 받아도 되나요.”

“부끄럽습니다만 내 정성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혹시 이 집이 지금 선생님이 사시는 곳 아닌가요?”

“예! 맞아요, 내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어머! 그래요! 정말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계시나 봐요, 하하하!”

그림을 직접 그곳에 걸어주고 온 그는 그녀의 공간에 자신의 일부가 항상 같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뿌듯했다.


4월 16일

오늘도 열심히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는 그가 다가가도 몰랐다.

“아니, 주식도 하시나 봐요” 그녀에게 생각과는 달리 소탈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여러 가지로 돈을 많이 버시겠어요.”

“아닙니다. 여기에 앉아있으면 심심할 때가 많아 틈틈이 해보고 있어요. 하하하” 그녀는 들켰다는 듯이 부끄러워했다.

“어떻게 할만하세요? 좀 재미는 보셨어요?”

“아이 재미는 무슨 재밉니까. 손해도 많이 봤어요. 원금만 된다면 당장 정리하고 싶어요.”

“위탁으로 하세요?”

“아니요. 한때 그렇게 하기도 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해 직접 하고 있어요. 대형주 위주로 하고 있는데 신통치가 않아요.”

“나도 주식이라고 할 것 없지만 조금 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주로 어떤 종목을 하세요. 추천할 만한 것이 있으면 좀 가르쳐주세요.”

“아니요. 나는 전문가가 아니고 그냥 일반인과 같이 공모주만 거래를 하죠. 한때 나도 크게 주식을 사고팔고 했지만 정말 수익 내기가 어려워 이제 안전한 공모주 위주로만 하고 있습니다. 손해 볼일은 절대 없고 금액에 따라 크게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우리 사장님 같은 경우 그쪽으로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저도 공모주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어렵지 않아요. 원하시면 시작하는 방법과 청약해야 하는 종목의 정보 등을 그때그때 알려 드릴 테니 한번 해보세요.”

망설이는 그녀에게 그는 공모주에 관하여 자세히 적어가며 설명했다.

“청약 계좌의 수가 많으면 유리합니다, 마침 다음 주에 IT업계 유망주가 있으니 그것부터 해보세요.” 그는 은행에 계좌개설부터 컴퓨터에 청약하는 방법 등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4월 30일

어느덧 수요일 오후는 그의 머리에 놓칠 수 없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그는 계속 그녀에게 우량 청약 종목과 날짜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어떻게 됐어요?” 그는 며칠 전 있었던 대규모 청약한 결과가 궁금하여 들러보았다. 그녀는 대 만족하고 있었다. 청출어람이라고 그 자신보다 그녀가 더 높은 가격에 매도하였다.

“대단하세요, 실력이 대단하세요.”

“소 뒷걸음치다 쥐 잡았지요. 하하하, 이게 다 선생님의 덕분입니다.”

“이번에 몇 계좌 신청하셨어요?” 그녀는 약간 머뭇거린다.

“3명이 했어요” 그는 당연히 자신, 남편,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가 하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선생님 오늘 시간 되시면 제가 간단한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돈을 벌게 해 주셔서 보답해야죠. 하하하!”

“예?” 너무 뜻밖의 제안에 당황했다. 그간 개인적으로 만남은 처음 아닌가, 그녀와의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좋은 식사는 아니지만 여기 윗집에 식사가 괜찮습니다.”

문방구 2층에 자리한 경양식 집이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한 것이 그녀가 편하게 이용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들어서자 종업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한쪽에 자리리 잡자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달려 나와 인사한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 어쩌면 더 예뻐지셨어요. 저는 무슨 여신이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주인아주머니는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사장님 오늘따라 허풍이 심하세요, 손님도 계시는데 창피하게 하하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는 이번 기회에 그녀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었다.

“저는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지만, 이곳이 고향이에요. 이곳만 해도 사람들이 순박하고 정들 이 많은 것 같아요. 좀 보수적이긴 하지만요.”

“아 그래요, 나도 이곳 생활이 꽤 되지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 생활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아 서울에서 오셨군요, 그런 것 같았어요. 그럼 혼자 오신 거예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얘들은 다 결혼했고 집사람은 서울이 좋다고 내려올 생각을 안 하니 어쩔 수 없이 혼자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막상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은 가계에 자주 나오시는 것 같은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예 좀 힘들어요, 집안일 보면서 운영하기가 점점 버거워 지내요. 시작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수익도 신통치 않고 차라리 그냥 임대료를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마침 식사가 나왔다. 그녀가 추천한 함박스테이크에 빵과 수프, 샐러드까지 푸짐했다. 식사가 나와 미처 못 물어봤지만, 이 건물의 소유자가 그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중에 서로 대화가 없었다.

“그런데 주차는 어디에 하세요? 주차하기가 마땅찮을 텐데요.” 마땅한 대화거리가 없자 주차 걱정을 한다.

“저기 사거리 건너 큰 주차장 있습니다.”

“아 공영주차장이요? 그곳은 먼데.”

“근처에는 없으니 좀 걷는 것도 좋아요. 집에서 걸어오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하하하!”

“그런데 출퇴근하기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하세요?”

“보통 때 주로 남편이 아침에 데려다 놓고 퇴근하면서 데리고 갔었는데 앞으로는 운전 연습 좀 해서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식당을 나서며 답례로 다음에는 자신이 식사 대접 한번 하겠다고 하니 그녀는 간곡히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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