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5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전원주택 - 압박2

16. 압박 - 2

by 왕십리 Mar 20. 2025
아래로


828    

 

"안녕하십니까?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재호는 들어서는 형사들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경찰이 다시 방문한다는 것은 분명 이곳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일전에도 한번 봬었지요, 다름이 아니고 그때 실종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 들으셨나요?  그것이 교통사고로 판명되어 지금 집 집마다 차량을 조사하고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는 떨리는 다리를 숨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차 앞부분을 한번 수리하셨네요.” 차를 면밀하게 들여다본 형사가 메모장을 펴며 묻는다.

“언제 수리하셨나요?”

“예 5개월 전에 서울 가는 길에 추돌사고로 수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정확히 언제쯤입니까?”

“정확히는 잘 기억 나지 않은데요.”

“그럼 어느 정비소죠?”

“예! 서울근교에 있는 정비소인데 처음 간 곳이라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죠. 중요한 사항이라 우리는 확인을 해야 하거든요.”

“글쎄 5개월 전 일이라.”

“수리비는 보험으로 처리하셨죠? ”그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 만 당시 견인차 기사가 현장확인을 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보험회사가 어디인가요. 타이어도 새것 같은데 언제 교환하셨나요.”

“예 그때 같이 교환했습니다.” 그는 보험회사를 알려주었다.

그는 수사가 결국 이쪽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죽어서 땅속에 묻힌 그 여자가 되살아나 그를 찾아오고 있다.


         

831 

    

차분히 뒷정리를 하는 늦여름 산은 그래도 마음에 위안을 안긴다. 긴 호흡과 함께 이제까지 닫혀 녹슬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듯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름답지 않은 날들이 없었던 옛 시간 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 들이 아름다웠던 만큼 가시가 되어 그를 찌르고 있다.

의욕이 없다. 가을 낚시는 별 의미가 없고, 그림도 터치가 이전과 달리 부드럽지 못해 덧칠만 하다 만다. 날씨에 낚여 경치 찾아 모처럼 나왔는데, 오후 바람이 차가워진다. 푸르다 못해 얼음장 같은 하늘에 솜털 구름, 이런 날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토록 화폭에 담아보려 했으나 하지 못한 얼굴.

‘모델이 되어달라 지금 요청하면 그녀의 반응은 어떨까? 과연 아무도 없는 닫힌 공간에서 둘 만의 오랜 시간을 그녀가 허락할까?’ 그는 어떻게 하든지 그녀의 얼굴을 지신의 화폭에 담고 싶었다. 어쩌면 배려 깊은 그녀는 기꺼이 수락할지도 모른다. 다음 만나면 반드시 요청해 보리라. 시도도 하지 않은 꿈은 절대 이룰 수가 없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라.... ]     

그는 흥얼거리다 결국 목이 메었다.

‘너를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해!’    

  

그립다 이토록

살고 싶다 처절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너

갈수 없다 너를 두고

강을 넘어 가버린

너와 함께라면

이몸 진토되어

날아 찾아가련만     

흐르다 흐르다 그냥 가버린

말 못할 그리움이

울고 울어 메인 외로움이

네 흔적에 이토록 아파.

          

라면이 끓고 있다. 어서 먹고 일찍 집에 들어가자. 냄비 옆에 쭈그려 앉은 그의 모습은 노쇠한 노인의 그 모습이었다.   


       

94 

    

그는 매일 뉴스를 듣는다. 그 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을 조금이나마 예측 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루 아무 소식 없이 지나면 사건이 영원히 미궁으로 끝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지금 이 모습.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요란하게 바퀴 소리를 내며 달리는 운명의 마차, 예년과 달리 무서운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다. 싸워야 하나? 온몸은 묶이고 일어서기도 힘 드는 데.'

취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건강도 기능이 제대로 돌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계속되는 은둔생활. '과연 이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주위에서 그냥 내버려 둘까?' 그는 그런 자신이 두렵다. 이러면 안 된다고 몸부림치지만, 점점 외출하기가 무섭고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워진다. 예전의 그 평범하고 무료했던 때가 그립다. 이미 강 건너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96     


벌써 30분은 족히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은 밤에 혼자 지낼 자신이 없어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다. 정면에서 내려 쪼이는 햇빛과 꼼짝하지 않는 차, 재호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가슴 뛰는 것과 어지러움 때문에 자신의 건강에 부쩍 자신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6시가 넘었다. 1시간 거리에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데 눈이 이상했다. 갑자기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고 어지러움에 그는 현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쓰러지고 말았다. 이내 정신은 돌아왔지만 놀란 아내는 119를 불러 남편을 응급실로 옮겼다.


“여보! 여보!” 이내는 남편을 부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의사는 mri 사진을 벽에 걸고 머리 부분의 콩알 크기의 흰점을 가리키며 가벼운 중풍이 다녀갔다고 한다. 관상동맥의 석회화도 진행 중으로 몸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나무란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받는 일은 피하고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취하라며 정기적인 점검과 복약을 처방하였다. 그는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병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 우선 그 원인부터 치유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건강상태로 오래 견딜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갑자기 비명횡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루 동안 검진을 마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남편을 혼자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가 전원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든지 아니면 자신이 회사를 정리하고 이천으로 내려가는 것 중에 남편이 원하는 방법을 택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는 어느 것도 받아드릴 상황이 아님을 알고 있다. 거듭 주장하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다시 거론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자신이 탈출할 수 있는 문은 오로지 그녀를 향해 열려있다. 몸이 경직되고 힘이 솟는다.

어느덧 그녀가 내 가슴에 들어와 싻을 틔우고 자라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910     


 잠을 이루기 위한 음주를 억제하고 다신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한결 머리도 맑아지고 몸 상태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해서든지 딛고 일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아야겠다. 그러나 술을 멀리하니 밤시간이 길어지고 밀려오는 무서운 생각에 혼자 있는 이곳이 싫어진다. 가족이 그립다. 악의 구렁텅이에 같이 들어갈까 두려워 의식적으로 밀어낸 가족들. '역시 나는 그들을 떠나서 존재할 수가 없다. 내일은 올라가 봐야겠다.' 그는 혼자 수렁에서 허우적대느라 놓아버린 그들의 사랑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편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느 사이 담 저편으로 숨어버린 그녀가 오늘도 그립다.  


        

911  

   

서울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웬 낯선 사람이 어귀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겠지 생각하며 지났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지?' 그는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왔는데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금방 사라질 리가 없는데, 우리 집으로 들어간 것 아닐까? 조용히 다가가서 보니 분명히 잠그고 나온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히 그자가 안에 있다. 그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급한 대로 현관에 있던 지팡이를 앞세우고 집안을 살폈다. 거실을 지나 살금살금 안방 문을 열었다. 그자가 그곳에 우뚝 서서 그를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그자,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당신 누구요!” 그는 지팡이를 겨누며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자는 다가오며 대답했다.

“경찰입니다.”

“예! 경찰이라고? 경찰이 남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지금 뭘 하는 거요?”

“예! 시체를 찾으러 왔습니다. 이곳에 시체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예?" 그는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이 확실한 만큼 더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조사 좀 해봐도 되지요.” 그자는 옷장 쪽을 다가서며 물었다.

“그렇게 하세요.” 그자는 옷장 문을 열고 그 안에 옷을 전부 집어냈다.

“악!”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곳에는 피를 흘리며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 여자가 있었다.

“아니야! 이것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어? 그럴 리가 없어!”

그가 놀라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15화 전원주택 - 압박 1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