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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 출구(도피)

17. 출구(도피)

by 왕십리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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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이 미경? 직장생활 때 그 미경!‘ 그는 전화기에 나타난 미경라는 이름이 놀랍고 반가웠다.

“이 미경 씨! 미경 씨가 웬일인가?”

“안녕하세요! 전무님! 오랜만이시죠!”

“아!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네, 반가워요.”

“건강하시죠? 사모님도 안녕하시고요?”

“그럼! 모두 잘 지내고 있지.”

“요즘 이천에 계신다던데 아직도 그곳에 계세요?”

“그래! 요즘 거의 이곳에서 지내고 있지.”

“제가 마침 내일 이천에 갈 일이 있어서 잠깐 전무님 얼굴 한번 뵙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그래? 미경 씨가 여기에 온다고? 좋지, 좋아요! 와서 점심이나 같이해요.”

“아~제가 그곳 친구하고 점심시간 약속을 해서요, 끝나고 뵙도록 할게요.”

그녀는 그가 회사의 전무 시절 같은 부서에 행적직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를 많이 따르던 직원이었다. 그녀가 결혼하면서 회사를 떠났지만, 후에도 회사에 가끔 찾아오거나 옛 동료의 애경사에서 만나 같이 어울리기도 하면서 교류를 이어갔었다. 그러나 그가 이곳으로 내려온 뒤로 옛 회사의 모임 참석이나 출신 동료들과 개별 연락은 없었다. 이렇게 그가 심적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녀의 전화는 여러 가지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거피 집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그나저나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전무님 여기 계시는 것 회사 출신들 모르는 사람 없어요.”

“내려오는 것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텐데 소식이 빠르긴 한 모양이네.”

“혼자 내려와 계시면 외롭지 않으세요. 혼자서 어떻게 지내세요?”

“가끔 외롭기는 하지, 그래도 전원생활 할만해요, 일단 마음이 편하고 할 일도 많지, 그림도 그리고 낚시도 하면서. 그나저나 미경 씨는 잘 지내고 있지? 신랑도 그렇고 아이가 하나라고 했던가?”

“예!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일상이 너무 변화가 없어 무료하기도 해요.”

“이젠 미경 씨도 다시 직장생활을 해도 되지 않아?”

“앞으로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럴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하여튼 세월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기만 하네.”

“전무님도 이제는 좀 중후해 보이시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세요. 옛날에는 아주 동안이셨는데, 그때 여직원들 사이에 인기 많으셨잖아요. 모르셨어요?”

“뭐 이젠 환갑이 넘었으니 노인이지. 하하하.”

“아니에요! 전보다 훨씬 멋있어 보여요.”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젠 쓸모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한심할 뿐이야.”

“자녀들 다 번듯하게 키워 놓으시고 훌륭한 사모님 있으시고 은퇴 후 이토록 여유롭게 지내실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로망이라 하겠죠.”

“아무리 말년이 좋은 들 젊음만 하겠어? 오히려 미경 씨는 옛날하고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젊고 아름답기만 하네.”

“뭘요 저도 내일모레 면 50인데요. 끔찍합니다.”

“그때 황 과장이 미경 씨를 좋아한다고 엄청 따라다니던 것 생각나는데 왜 거절을 했지?”

“거절한 것이 아니고요, 일단 제 스타일이 아니라 관심을 주지 않으니 그만 포기한 것이겠죠.”

“맞아! 그때 사귀는 사람이 있었지! ”    

모처럼 만남의 반가움과 회사 시절 추억의 즐거움으로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언제 사시는 집 구경하고 싶어요. 멋있게 지으셨다는데.”

"그래요! 얼마든지, 언제 가족들하고 한번 놀러 와요. 내가 맛있는 요리도 대접할 테니.”

“오늘 커피값은 제가 낼게요. 제가 만나자고 했으니.

“아니 그러지 마! 이곳까지 와준 것도 고마운데.” 카드를 꺼내든 미경을 제지하려다 얼떨결에 잡은 그녀의 손목, 서로는 멈칫했다.

미경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늘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잡은 부드러운 손목의 전율, 코끝을 자극한 그녀의 향기가 계속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큰 위로가 된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915   

  

오늘 정근이는 출근 때에 복도에 모여있는 직원들을 보았다. '아! 오늘 드디어 진급 발표를 했구나.' 그는 긴장했다. 그간 아내에게 신경 쓰느라 휴가도 많이 쓰고 야간작업도 회피하다 보니 진급에 적잖은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기대 반 포기 반 상태였다.

'윤형근, 경리부 세무과 계장에서 같은 과 과장으로.' 그는 가슴이 뛰었다.

“오케이! 그러면 그렇지!” 그는 기뻐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바로 전화를 하였다.

“미경아! 나 진급했어!”

“정말! 그럼 인제 과장이 된 거야? 윤 과장!” 진급에 대해 일절 이야기 없었던 차에 미경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빠! 오늘 축하 파티하자!”

“그래! 오늘 부서에서 축하 회식이 있다는데 나는 몰래 빠져나올 테니, 미경아 준비하고 기다려!” 그는 요즘 모든 일이 잘 풀려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냥 항복하기만 했다.   


                 

918  

   

전화벨이 울린다. 아직 잠에 취한 재호는 이른 새벽에 웬 전화인가 싶어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넘었다. 깜짝 놀라 비로써 어제 고 과장과 시청 앞에서 늦게까지 과음한 것이 생각났다.

'어떻게 집에 왔지?'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집어 드니 뜻밖에 미경이였다.

“어! 미경 씨! 웬일이에요?”

“전무님! 괜찮으세요? 정신 좀 드셨어요?”

“왜? 뭐가?”

“아니 어젯밤 일 전혀 기억이 안 나세요?”

'어젯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니 무슨 소리이지?”

“어젯밤에 제게 전화하신 것 하나도 기억 안 나시냐고요?”

“뭐? 어젯밤에 내가 미경 씨에게 전화를 했다고? “ 그제야 그는 어젯밤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제 너무 술을 많이 드셨나 봐요. 어제 제 남편이 좀 늦게 들어와서 다행이었지 저도 아주 혼날 뻔했어요.” 그는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아! 내가 그랬다고? 미경 씨!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한 모양이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무슨 소리를 했나? “   

“뭐 크게 실수하신 것은 아닌데 그냥 저한테 보고 싶다고 오늘 계속 내려오라고 몇 번이나 전화하셨어요.”

“아! 내가 미쳤나 봐, , 이 일을 어떻게 해,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지?”

“전무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 싶었어요.”

미경 씨, 내가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들을 수가 없네,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온전치 않아 실수한 것으로 너그러이 생각해 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전무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술 좀 절제하셔서 앞으로는 이런 전화받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럼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통화기록을 보니 어젯밤에 미경에게 수없이 전화한 기록이 나오자 그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망년이 들었구나.  회사 동료들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무슨 망신일까 싶고, 그렇지 않아도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는데 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혹시 어젯밤 은지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나 기겁했지만, 그런 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921     


벨이 울려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미경였다. 또 웬일이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미경 씨! 잘 있었어요? 일전에는 정말 미안했소. 어떻게 괜찮아요?"

“예! 그럼요. 전무님! 지금 어디에 계세요." 의외로 목소리가 맑았다.

“나는 지금 시내에 잠깐 나와 있는데.

“저는 지금 버스 터미널에 있어요. 친구 만나고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저 오늘 점심 사주세요.“ 그녀는 사뭇 강요하듯 했다. 그는 잘되었다 싶었다. 만나서 지난번 실수를 말끔히 사과하고 싶었다.

그들은 일식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지난번보다 한층 멋을 부리고 나온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그를 반기였다.

“정말 미안했어. 내가 나이가 들어 망념이 들었나 봐!”

“하하하 전무님이 뭐가 나이가 들었다고 하세요. 지금 누가 보면 40대로 보겠는데요." 미경의 태도로 보아 그날 잘못을 따지려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오히려 그녀의 도발적인 모습에 맘이 설레기도 했다.

“오늘은 내가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것 많이 살 테니 그날 오해는 풀도록 해요.”

“전무님도 오해는 무슨 오해예요. 전무님한테 그런 전화받고 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요.”

"아니! 내가 뭐라고 했는데 그래!”

“하하하! 말 못 해요, 대신 저도 오늘 한잔 할래요, 괜찮지요?" 음식이 들어오자 그들은 술을 주문했다.

“자! 이제 그날 전화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말 좀 해봐."

“하하하! 우선 한잔하고요. 맨 정신으로 말하기 너무 쑥스러운 일이에요." 취기가 올라 흐트러지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 재미있어요. 왜 저한테 자꾸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뭐 하시려고요?"

"허허 내가 그랬다고? 나는 기억이 없는데." 그는 쑥스럽고 타오르는 갈증에 거푸 술잔을 비웠다.

"저를 사랑한다고 하셨잖아요? 옛날부터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궁금해요, 언제부터 저한테 그런 감정을 갖게 되신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이미 저는 임자가 있는 몸인데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요! 취중 진담이라고 하잖아요, 그날 전무님 말 듣고 가슴이 떨려 한잠도 못 잤단 말이에요.”

"하하하! 미경이도 취했네! 이제, 그만 가야지.” 그는 듣기에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전무님! 저 말짱해요. 아직 세시 밖에 안 되었는데,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오늘 친구 만나러 온 것 아니고 전무님이 꼭 내려오라고 해서 일부러 시간 내서 왔단 말이에요."

“아 그랬나? 나는 늦으면 미경 씨 집에 어떻게 가나 걱정이 돼서 그랬지.”

“늦으면 전무님 집에서 자고 가면 되지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버스가 늦게까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을 밖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렸다. 미경은 취하기는 했으나 까지 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때 그녀가 그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

“전무님 지난번에 전무님 집 구경시켜 주신다고 했었잖아요! 오늘 구경 가면 안 되나요? 오늘 꼭 보고 싶어요.”

그때 택시가 도착했다. 집을 보여주지 않으면 타지 않겠다고 떼는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어 그녀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 태우려 실랑이하면서 밀착된 그녀의 몸, 농염한 여자의 육감에 이미 그의 이성도 마비되어 버렸다.

집에 들어선 그들은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이 오로지 몸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입술을 찾느라 허둥댔다, 이미 발가벗겨져 불덩이가 된 미경의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내와의 침대 위로 내 던졌다.

'이 엉큼한 것, 이미 오늘 네가 온 목적을 알았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그는 풍요로운 언덕을 지나 육림 속을 마구 누비며 격동의 바닷속으로 깊이깊이, 무아지경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922   

  

그의 머리에 죄의식이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재호는 그날 미경과의 일만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오르고 그의 중심이 부풀어 올라 있기가 어려웠다. 하얀 살 내음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그의 허리를 감싸던 그녀 허벅지 매끄러운 살결의 흔적은 온몸의 말초신경을 마비시켰다. 자신에게 아직 그런 힘이 있으리라 미처 몰랐던 그는 생각할수록 흥분되고 온 몸의 세포가 되살아나 자신감이 올라왔다.

이제 그는 그 사건의 공포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무감각해지며 심지어 대범해지고 있었다.


그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안 온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그간 궁금했지만 그녀의 앞 뒤 사정을 알 수 없어 섣불리 전화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독 오늘은 미경이 그리워진다. 참다못해 그는 만지작거리던 전화기를 눌렀다. 긴 신호음 끝에 들려오는 미경의 목소리.

“전무님!” 그녀는 예상외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 미경 잘 있었지? 지금 전화받기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너무하세요. 왜 전화도 한번 안 주시고,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그랬나, 난 미경이가 그날 일로 후회하거나 안 좋은 결과가 있으면 어쩌나 해지.”

“후회라니요. 그날 저는 행복했는데 전무님은 어떠셨는데요?”

“나도 황홀하고 너무 좋았지, 당연히.”

“전무님 보고 싶어요. 저 내일 갈 수 있어요. 내일 갈래요.”

”그래! 나도 보고 싶네, 내일 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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