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때 인생에서 제대로 된 형식의 첫 면접이란 걸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면접장에서 교수님들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그런 보통의 면접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면접 과정은 KBS 입사시험을 치를 때였다. 1차 카메라 테스트, 3차 심층 카메라 테스트, 4차 사장단 면접 등 면접 과정에서 필자가 받은 질문만 해도 아마 수십여 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학을 위해서든 취업을 위해서든 이런 면접이나 인터뷰를 경험하게 된다.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중고등학생, 대학생이나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강연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자리에서 필자가 학생들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아나운서는 뭘 하는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이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요.', '스포츠 중계를 하는 사람이요.'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모두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내놓는 사람들은 실제 아나운서 시험에서 합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고? 그런 대답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이 초등학생 수준의 답을 내놓는다.
아나운서는 뭘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필자가 KBS 면접시험 3차 심층 카메라 테스트 때 실제로 받았던 질문이다. "최동석 씨, 아나운서는 뭘 하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앞서 언급한 학생들처럼 대답했다면 필자는 아마도 평생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달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필자가 했던 답변을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복기하려 한다.
루벤스, <Cimon and Pero>,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는 'Cimon and Pero'라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빠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나라의 국립미술관에 어떻게 저런 포르노그래피가 걸려 있냐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하지만 노인은 음식물 반입 금지(아사형)라는 명령을 받아 굶어 죽어가는 투사였고, 여인은 갓 아이를 출산한 노인의 딸이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딸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린 겁니다. 같은 그림이지만 누군가는 포르노그래피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림의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아나운서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같은 그림을 보고도 눈물짓게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만약 당신이 심사위원이라면 누구를 뽑겠는가? 짤막하게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이요.'라는 답변을 내놓은 사람을 뽑을 수 있겠는가? 심사위원도 뉴스 진행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그 본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고 싶어 던진 질문 아니겠는가? 필자의 답이 100점 짜리였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다만 질문의 의도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답변을 했는지가 결과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배경지식도 쌓아야 한다. 그 자세한 방법들은 추후 설명할 예정이다. 이것만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 사람이 왜 묻겠어? 최소한 여기에 대한 고민의 시간은 가진후 면접장으로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