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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Apr 16. 2023

누나라고 부르지 말아 줄래? 설레잖아.

이젠 하다 하다 누나라는 말에도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나는 남동생을 둔 누나다. 그래서 지금까지 상대가 누구든,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남자가 아닌 남동생처럼 느껴졌다. (덩치가 크든, 험상궂게 생겼든, 사회적 지위가 좋든? 상관없다.)

입은 상대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OO아 라며, 이미 상대방의 이름을 남동생 이름 부르듯 편하게 부르고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면 안 되는 거겠지만, 남동생처럼 느껴지는 걸 어떡하는가?..)


그래서, 낯을 가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어린 상대방을 만나면,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굉장히 편해진다. 이런 나의 온도차이를 상대방은 느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평소에 나는 굉장히 낯을 가리고, 진지한 성격에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몇 안 되는 마음 편한 상황이 오면, 나는 언제 낯을 가렸냐는 듯 전형적인 외향형 E의 성향이 드러난다. 평소에는 낯을 가리며, 수줍게 말수를 줄여가며, 한 단어 한 단어 사회화된 단어들을 쓰다가, 편해지는 순간, 같은 지방사람들도 당황할 정도로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바뀐다.


즉, 내가 사투리를 쓰고, 단어가 편안해졌고, 말수가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진다는 건 이미 내 마음이 활짝 열린 상태라는 뜻과도 같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신남이 숨겨져 있는 사람인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은, 나도 잘 몰랐다. 최근에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나도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마음이 편해지면, 나는 이때부터 상대방과 10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속마음에서는 내적 친밀감을 엄청 느끼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물론, 상대방은 그 정도로 친밀감을 느껴하는지는 절대 모를 것이다...(나만 알고 있는 비밀...)


이러한 성격 탓에 연하=동생이라는 무조건적인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진지하고, 낯가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탓에 '내 남자친구는 연상이고, 철이 많이 든, 나보다 진중한 사람이어야 끌려.'라는 이상한 고정관념도 함께 갖고 있었다.


실제로, 가벼운 사람보다는 깊이 있고, 진중하고, 점잖은 사람에게 설레고, 그런 사람과 연애를 했었지만,

정작 편한 건 동생처럼 느껴지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는 걸 최근에서야 조금 깨달은 것 같다.(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시시때때로 생각과 감정이 바뀌어서, 뭐가 진짜 내가 원하는 바인지, 나도 잘 모른다.. 나에 대해 알기에, 그만한 데이터와 통계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던 나였는데,

최근 들어 사람들과 많이 어울려서 그런 건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친해진 사람 중에 남동생들이 많았고, 가당 치도 않게 "누나"라는 말에 설레는 상황이 생겨버렸다는 거다.


오 마이갓.... 내가 누나라는 단어에 설레하다니...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나 왜 이러는 거지?... 연애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건가?... 등등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평생을 들어온 누나라는 단언데, 뜬금없이 설렌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설레던 순간을 지나, 집에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진짜, 도대체, 왜, 설렌 거지???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전까지 나는 내가 외향형 인간(E)인 줄 나도 모르고 살았다.

세상에 치이고, 찌들어, 내가 E인 줄도 모르고, 철저히 내향형 인간(I)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혼자 있는걸 원래부터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집-학교-집 혹은 집-회사-헬스장-집으로, 생활반경이 정말 좁았고, 단순했다. 그리고, 낯가림이 심해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I형 사람이 아닌, E형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못된 사회경험으로 인해 E형의 사람이 I형의 사람인척 살아오고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나에 대해 나도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하나씩 알아가던 중, 연하의 남자 사람에게 '누나'라고 불리면서, 또 한 번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누나라고 불렸는데 설레네?.. 왜지?... 하며, 생각해 보았는데,

내 친 남동생에게 불리는 누나는 가족이 부르는 느낌의 누나였다면, 이번에 남에게 불린 '누나'는 애교 섞인 누나라서, 다르게 느껴지고, 설렜던 것 같다. 또 해맑게 웃으며, 부르는데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정말 사진의 차은우가 누나라고 부르는 느낌과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호칭이 뭐라고, 이렇게 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나 싶긴 하지만, 참 생소한 감정이자, 경험이라서 스스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설렜다≠좋아한다'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지나가던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심쿵한 것과 비슷한 감정 정도일 것이다.


누군가가 봤을 땐, 별것 아닌 일이겠지만,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요즘, 이런 다양한 감정과 새로움은 나를 제대로 알아가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결론을 말하자면, 누나라는 단어에 설렌 이유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게 중요했다는 말이다. (영화 곡성에 나오는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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