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다 마칠 무렵, 그가 언제 뒀는지 모를 예쁜 종이백을 테이블 밑에서 챙겨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뭐 꺼낼 것이 있나?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가 챙겨든 종이백을 나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어? 뭐지? 설마 나 주는 건가? 왜?'
라는 생각들이 스쳤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 없었기에.
그리고, 처음 만난 남자와 이런 식의 데이트를 해본 적 없었기에, 그의 손에 든 물건이 나를 위한 선물일 거란 생각조차 못했던 거였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여자였던지라.
그가 나에게 웃으며 건네는 쇼핑백을 바라보며, 순간 당황한 표정은 온 데 간데 없이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가 건넨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뭐예요?"
" OO 씨 주려고, OO 씨 기다리면서 산 선물이에요."
"네?!"
처음 보는 나에게 왜 이런 선물을..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준비한 게 없는데..."
"괜찮아요. 이건 그냥 OO 씨한테 필요할 거 같아서 산 거예요."
"그래도...."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그는 얼른 선물을 확인해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도 돼요?"
"그럼요."
그제야 천천히 쇼핑백 안을 보았다.
제일 먼저 보인건, 비타민 영양제.
그것을 하나 꺼내어 그에게 보였다.
"영양제네요."
"맞아요. OO 씨 일할 때 피곤해하는 것 같길래."
나는 선물을 고른 그의 세심한 말에 감동을 받았다.
아마, 그런 내 표정이 숨김없이 그에게 전달되었을 거다.
"이건 핸드크림이네요."
쇼핑백 안에 있던 나머지 선물도 꺼내 들었다.
"맞아요. 손 자주 씻는다길래. 필요할 것 같아서."
그가 수줍게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도 해사히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그가 내게 주었다. 나를 생각하며, 누군가 하나씩 고른 선물이 그리도 고마울 줄이야. 그리고, 이토록 행복함을 느낄 줄이야.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호감을 갖고 있는 이성이라면 얼마나 큰 행복이 되는지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쇼핑백 안에 무언가 하나가 더 남았다.
"이건 뭐예요?"
나는 딱 봐도 편지지 같은 종이를 들어 올려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편지요."
"지금 읽어봐도 돼요?"
"아니요. 나중에 집에 가서 읽어봐요."
"궁금한데......"
나는 종이를 만지작거렸고, 그가 부끄러운 듯 결국 읽어보라는 끄덕임을 보였다.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는 참으로 또박또박하고, 정갈한 글씨로 눌러 담은 진심이 적혀 있었다.
'OO 씨,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되네요.
OO 씨를 기다리며 뭐를 할까 하다가 나눴던 대화 속에 OO 씨에게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샀어요.
중간에 연락이 끊겼던 때도 있었는데, 다시 나와 연락해줘서 고마워요. OO 씨와 연락하면서 힘도 많이 얻고, 참 행복했습니다.
OO 씨, 나와 함께 이번 크리스마스도,
그다음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줄래요?'
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조그만 카드에 적힌 글 중에서도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건 사귀자는 뜻일까? 그런 뜻 같은데.. 아닌가? 그냥 오랫동안 좋게 알고 지내자는 호감표시일 수도 있잖아. 여기 어디에도 사귀자는 말은 없는데.. 혼자 설레발치지 말자.' 등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내가 멍청했다기보다, 이성에게 이런 식의 고백을 처음 받아봤기에 고백이라고 받아들이질 못했던 것 같다.
사소한 말에 의미 부여하는 공주병에 걸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금방 답을 알려주었다.
"OO 씨, 제가 쓴 마지막에 대한 대답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돼요. 충분히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요."
그의 말을 듣고서야 그의 말 뜻을 이해했다.
이건, 사귀자는 뜻이 맞았다.
나는 당시에 처음 만난 사람과 당일에 바로 사귀자는 고백을 들을지는 전혀 예상조차 못했기에 머리의 회로가 고장 난 듯 버벅였다.
이내, 생각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다.
"네, 고마워요.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