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딸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애교 섞어 부른다.
그렇다고, 애교 많은 딸은 아니다.
경상도 토박이인 아빠와 나는 '무뚝뚝함'이 기본적으로 없잖아 있다.
그리고, 아빠와 나는 기본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말 많은 걸 싫어하는 이유도, 아빠를 보고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걸 싫어하는 아빠와 딸이 만났으니,
우리는 항상 핵심만 전달하는 식의 대화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라고 생각해 왔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아빠와 대화한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 보라고 하면, 48시간이나 될까?...
아빠와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건, 아빠한테 물어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나와 내 동생들은 아빠 속을 썩인 일이 (크게) 없다. 아빠 왈 "너희는 너희들이 알아서 다 컸지."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만큼, 우리가 속을 썩이지 않았다는 말일까?..
한편으론, 이렇게 이야기해 주셔서 눈물이 찔끔 고이기도 한다.
'아무리 우리가 알아서, 잘 컸다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살아오지 못했으리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서 잘하기 때문일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엄마와 아버지는 우리에게 크게 잔소리를 한 일이 없었다.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100% 맡겨주셨다.
때론, 나를 너무 믿으셔서, 아무 개입을 하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다.
대학교 입학식, 졸업식, 자취방을 구하는 것 등등 살면서 모든 부분을 부모님의 동행 없이 혼자서 씩씩하게 잘 처리해 오곤 했었다. 그래서, 가끔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생활력 강한? 딸'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일찍 철이 들었고, 뭐가 옳고, 그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 엄마와 아빠의 엄격한 훈육 덕분일 것이다. 크게 혼난 적도 없고, 크게 혼날 일, 걱정할 만한 일도 만들지 않았다. 내가 속을 썩여, 엄마 아빠가 아프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훈육을 할 땐, 감정을 섞어서 훈육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훈육 시, 아빠가 만들어둔 회초리로, 잘못한 것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무 감정 섞지 않고, 적절한 체벌을 받았다. 이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저학년 때나 혼났지, 그 이후에는 혼날 일도 없었다. 우리가 혼날 때여야 봐야, 버릇없거나, 동생들 다툴 때 제지 못해서 혼나거나 하는 등의 이유였다.
그렇기에 혼이 나도, 아빠를 무서워하진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빠가 우리를 훈육할 때, 감정을 실어 훈육했다면, 몸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그만큼 힘이 센 분이니..)
나는 아버지의 훈육 덕에, 정말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도덕성만은 제대로 갖추었고, 양심껏 살아왔다.
내가 본 아버지도, '그 누구보다 정직하고, 양심을 지키며, 정갈하게 살아온 분'이셨다.
그래서, 나 역시 아버지를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었고, 존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나는 우리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이유가 셀 수 없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늘 멋있었고, 지금도 멋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빠만큼 멋진 사람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연애를 잘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ㅋ
내가 이렇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쓴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추성훈 선수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추성훈 선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추선수가 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을 덤덤하게 작성한 것을 보았다.
나의 아버지와 추성훈 선수의 아버지는 많이 닮아 있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이렇게 느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 훌륭한 자녀가 이렇게 덤덤히 추모한 글을 보고,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꼈다.
덤덤한 것 같지만, 추성훈 선수는 아마도, 아버지가 평생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