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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Jun 03. 2023

나의 치부 드러내기.

나의 가장 약한 부분


부정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도 나의 일부다.


오늘은 내가 '최근에 왜 힘들었는지, 왜 아직도 힘든지 가만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들여다보지 않고는 이 힘듦이 사라지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최근에 나를 자극하는 일련의 일들이 여러 가지로 겹쳤다. 그 일련의 일들을 별것 아니라며, 무시하며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꼭 손톱에 박힌 작은 가시들이 거슬리듯 계속 나를 자극했다. 그 이야기를 글로 풀어보고, 살펴보고, 정리하기로 했다.


첫 번째. 나는 몇 달 전부터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모전이 있었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것에 집중력을 빼앗기면서, '좋은 글 혹은 글 자체를 써내려 갈 수 없었다.'


마음이 지옥인데, 거짓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없었다. 행복한 척할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웠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단 한 줄'도 제대로 써내려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에 글을 썼다면, 글이 아니라 '일기장과 하소연'이 될 것이 뻔했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때로는 이러한 종류의 글이 쓰이는 것도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사람이기에 늘 좋은 말, 좋은 생각만 전달할 수 없다. 인생이 좋고, 행복한 순간들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듯.

나 역시,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생각을 담을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인생의 희노애락 모두가 담기는 책이 양질의 책이 되듯, 나 역시, 그러한 글들도 좋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게 되었다.


둘째.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끊임없는 스트레스가 지속되어 왔다. 처음엔 그저 좋은 관계였지만,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상대방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상대는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 이용했다. 그리고, 솔직함이라는 가면으로 내로남불의 논리를 펼쳤다.


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마음을 활짝 연다. 그리고, 금세 친밀한 관계가 되어, 좋은 것들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길 원한다. 그렇기에, 가까워질수록 상대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때가 가장 힘들다.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에는 모두 '예의'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무례'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스트레스를 받아주고, 무례를 받아 줄 만큼 가깝지는 않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여도 내가 그들의 '진짜 가족'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남의 약속에 있어서, 언제나 '자기 위주'로 약속을 잡는다. 만날 때마다 '지각'을 한다. 그리곤,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대화를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을 높이고, 나를 낮춘다.' 꼭 나의 자존감을 박살 내려고 대화하는 사람 같이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주장이 옳고, 자신이 대화의 70% 이상을 독점한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대화하며, 나에 대해서 30%도 모르면서, 100% 아는양 후려친다. 그리고, 본인은 해도 괜찮은 행동이, 내가 하면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식의 대화가 몇 번 있다 보니, 나는 점점 이 상대방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하고 나서도 내가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마냥 하루종일 혹은 며칠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여기서 내 멘털에 대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를 휘두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 멋대로 '친밀해졌다는 이유로' 나를 휘두르지 마십시오.


이 말이, 내가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나를 배려하지도 않고,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왜 나를 만날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가 나와 함께 하면서, 무얼 얻고자 하는지, 무얼 얻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는 내 곁에서 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즉, 나를 만남의 장으로 활용한 것이다. 어렴풋이 알았지만, 나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대놓고, 기만하려 하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 사람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이래서 옛말에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조심하라고 했나 보다.' 싶었다.


셋째. 편하게 즐기던 장소에서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끼고, 부담을 받게 되었다.


나에게 활력을 주던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나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곳이자, 좋은 대화의 장이었다. 그리고, 좋은 자극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트레스의 공간으로 변했다. 아마 두어 달 전쯤부터 불편한 기색을 느꼈지만, 나는 늘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묘한 암투극, 편 가르기, 앞에서 뒷말하기 등등의 불편한 상황들이 지속되었다. 앞에서는 하하 호호하지만, 그 미묘하게 뒤틀린 느낌을 계속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자주 쓰는 '회피'를 선택했다.

이젠 나에게 좋은 감정과 활력을 주는 장소가 아닌,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주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이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술을 마시고 실수한 척 나를 불쾌하게 때린 아이가 있었다. 굉장히 기분 나쁘게 때린 것이라, 순간 '욱' 했지만, 분란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참았다. 그런데, 참지 말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느라고 정작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즐거운 공간이자 활력이 된 공간을 잃어버렸다.


넷째. 내가 존경하던 인플루언서들의 변질된 모습.


오랫동안 응원하며, 지켜봐 온 인플루언서 분들이 몇몇 계셨다. 그분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변질된 모습을 보았다. 갓 노력하는 사람들을 '돈이 안 되는 행동'이라며, '하지 말 것'이라고 말하거나, '작가나 사기꾼이 될 것이 아니라면, 글 잘 쓰는 건 필요 없다.'라고 말하거나, 원래의 콘텐츠와는 다른 콘텐츠를 통해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의 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분들의 모습이 이렇고,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에서 내 나름 대미지를 입었던 것 같다. 나 혼자 깨끗한 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존경하고, 목표로 삼고 있고, 누구보다 좋은 영향력과 전문성으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으나, 그들의 발언 하나에 내 세계관이 흔들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그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큰 대미지를 입었다.' 그래서, 요 며칠 기운을 잃고, 도대체 무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내 안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땐, 언제나 경계한다.
좋은 일은 늘 안 좋은 일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기 몇 주 전까지 굉장히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마냥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좋은 일 뒤에는 늘 부정적인 일들도 함께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떠올리는 말이 있다.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


결국, 좋은 일도 돌이켜보면,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진심이 아닌 사람들이 여럿 있었구나. 를 깨닫는 계기가 된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좋은 일만큼, 나쁜 일도 함께 일어났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굉장히 힘들었고, 이 힘듦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힘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들어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인생에서 늘 좋은 일, 행복한 일들로 이뤄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좋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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