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병정개미의 마지막 안식처

어느 병정개미가 찾아 헤맨 진정한 성소

by 캔디의 여백

이 글은 흩어져 있던 글을 브런치북의 흐름 안으로 다시 데려온 재수록 글입니다.

어느 늙은 병정개미가 있었다.
한때 그는 무리를 지휘하고 수호하며 선봉에서 일개미들을 이끌던 당당한 전투개미였다. 여왕의 인정을 받아 영광스러운 날개까지 달았던 그는 개미핥기와 거미 등 수많은 천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며 온몸에 훈장 같은 상처를 새기고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그리고 날로 강해지는 세상의 세파 앞에 전사도 결국 꺾이고 말았다.
찢긴 날개와 부러진 더듬이, 상처 입은 다리만을 가진 채 그는 무리에서 밀려난 외톨이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이끌고 터벅터벅 걷고 헤매며, 그가 마지막 안식을 바라고 절실히 찾아간 곳은 교회였다.

그의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큰 교회였다.
하지만 그곳은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한 성소가 아니었다. 불개미 군단과 군대개미 사단이 도처에 자리 잡고 질서 정연하게 위세를 떨치는, 차갑고 견고한 조직의 요새일 뿐이었다.


낡고 부서진 개미 한 마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쫓기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낙심한 채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베짱이가 흰개미 사단을 지배하는 교회였다. 고난의 깊이를 모른 채 오직 성공의 노래만 드높이 부르는 베짱이에게 다리 잘린 노병의 아픔은 보이지 않았다.

자비 없는 무시와 냉소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힘겨운 이들은 그저 깔봄을 당할 뿐이었고, 흰개미들은 군소리 없이 착취당하고 있었다.

개미는 다시 한번 차가운 길 위로 밀려나야 했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평온하고 안전하다고 소문난 교회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가장 무서운 포식자인 명주잠자리 유충인 개미귀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건축술의 대가답게 아늑해 보이는, 움푹 파인 개미지옥을 만들어 놓고 발을 들인 개미에게 소화액을 주입해 영혼의 수액을 빨아먹는 자.
모래 밑에 숨은 포식자, 개미귀신의 실체를 간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수많은 일개미와 수개미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너무 무섭고 지친 전투개미는 본능적인 공포에 떨며 필사적으로 그 구덩이를 기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다시 길을 나섰다가 천국처럼 아름다운 교회를 발견했다.

이상한 개미들도 보이지 않고 뭔가 좋은 느낌이 들었다. 깨끗한 예배당과 달콤한 꿀로 개미들을 유혹하는 그곳은 일부 소수의 왕개미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여기저기서 모인 각양각색의 개미들은 그 달콤함에 속아 진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영혼을 갉아먹는 위선과 가면의 실체를 모르는 허울뿐인 눈먼 땅이었다. 믿었던 그곳에서도 권력의 그늘에 가려져, 진리는 찾을 수 없었다.


전투 병정개미는 그곳에서조차 큰 상처를 입고서 이제는 일개미만도 못한 처지가 되어 통곡하며 나왔다.

그렇게 교회라는 이름의 희망을 지워가던 어느 날, 다시 길 위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페로몬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에 이끌려 기적같이 다다른 곳은 과거 잠시 머물렀던 어느 집사님의 작은 서재였다.

오래된 서재 책상 위로는 따스한 햇살이 금가루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그곳에는 위압적인 군단도, 소란스러운 사단도, 무시무시한 개미귀신도 없었다.

지긋지긋한 베짱이의 소음 대신 낮은 숨소리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오직 집사님의 나직한 기도 소리만이 서재의 공기를 포근하게 채우고 있었다.

뭔지 모를 위로와 은혜가 차오름을 느꼈다. 곧이어 익숙한 평안이 밀려왔다.
먼지보다 작은 개미는 책상다리를 타고 느릿하게 올라가 사력을 다해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평생을 싸우며 살았습니다.

제 몸에 새겨진 건 영광이 아니라 독기와 상처뿐입니다. 이 찢기고 망가진 제가 감히 천국을 사모해도 될까요?"

​그때, 거친 폭풍우를 잠재우는 나직한 음성이 그의 온몸을 감쌌습니다.

​"내가 너의 상한 마음과 다친 다리, 더듬이를 이미 다 알고 있단다. 너를 지키려 애썼던 그 무거운 갑옷을 이제는 내게 맡기지 않겠느냐? 남은 시간은 나와 함께 동행하며 걷자꾸나."

개미는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기억, 세상의 냉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 잔뜩 세웠던 날 선 가시들, 그리고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마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지듯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전투 병정개미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이 빠진 낡은 검과 구멍 난 방패를 비로소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버티던 삶을 포기하자, 기적처럼 세상 무엇보다 견고한 구원의 투구가 그의 머리 위에 씌워졌습니다.

그것은 적의 머리를 부수는 투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의 생각을 온전히 감싸 안는 평안의 투구였습니다.

전설 속의 화려한 검보다 정결하고도 서늘한 성령의 검을 손에 쥐고서, 오직 하나님만을 방패 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전투 병정개미는 오늘, 무리를 떠난 후 처음으로 포근한 잠이 들었다. 그 평안의 이유는 명확했다.

십자가의 그림자가 가만히 내려앉은 서재의 어느 정결한 나뭇결 위, 따뜻한 그곳이 바로 전투병정개미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장차 누울 가장 영광스러운 성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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