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것을 견디는 마음 [기다림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딘가에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서정윤의 <홀로서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때 많이 좋아했던 시집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간도 필요하고 인내도 요구하며, 무엇보다 기다림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누군가는 만나야 비로소 아름다워지고, 또 누군가는 차라리 가슴에만 머물러 만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좋은 감정으로 마음속 한켠에, 더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추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너무 빠르다.
그래서 기다림은 때로 연약하고 단단하지 못한 사람의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격이 급한 나 역시 “빨리 알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늘 앞서서 일을 그르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조금씩 커져 간다.
내 마음의 결을 돌아보면, 좋은 기다림보다 슬프고 아프고 인내를 요하는 기다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을 오래 기다리는 마음은 제일 아플 것이다. 전쟁터에 나간 연인이나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찢어지는 아픔이다.
먹고살기 위해 타향으로 돈 벌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의 마음은 쓰라림이다. 생사도 모른 채 집을 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 자체로 가슴이 찢긴 채 버텨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픈 환자가 되어 병상 곁에서 낫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힘들다. 그 병이 쉽게 낫기 어려운 병이라면 마음은 더 쉽게 무너져 내린다.
내가 이미 힘든데도 더 힘든 앞날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은 고통에 가깝다. 나이 들어 고독과 외로움 속에 휩싸여 하늘나라로 가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슬픔 그 자체다.
그러나 기다림에는 다른 얼굴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 만날 수는 없어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 애잔한 기다림. 지금 당장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만 더 좋아지는 기다림.
곧 군 전역할 아들을 기쁘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태어날 아이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남편의 마음. 중병에서 호전되어 완쾌를 기다리는 벅찬 마음.
예식장을 예약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신혼의 달콤한 기다림. 합격 통지서를 받고 대학 입학이나 취직을 기다리는 행복한 마음. 이런 기다림은 모두 삶을 버티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우리는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배워야 한다.
삶은 늘 빨리 도착하는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기다림은 그림자처럼 더욱 붙어 오는 것 같다.
오늘도 누군가는 병실 앞에서, 누군가는 답장 없는 창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기도 끝의 침묵 속에서 기다리며 오래 앉아 있을 것이다.
부디 그 시간이 당신을 무너뜨리기만 하지 않기를.
오히려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밝게 비춰 주기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견디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