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서 찾은 지성소
오랫동안 사람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우상처럼 섬겼다. 교회라는 지붕 아래서 내가 붙든 것은 하나님보다, 누군가의 결핍을 메워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나는 기도보다 먼저 타인의 마음을 살폈고, 말씀보다 먼저 그들의 표정을 읽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그리고 조용히 닳아갔다.
어느새 나는 ‘정서적 자선가’가 되었고, ‘무상의 위로자’가 되었다.
그 역할이 믿음의 훈장이라 믿었다. 그것이 나의 십자가이며, 마땅히 걸어야 할 좁은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길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귀한 만남이 아닌, 깊은 상처와 피로였다. 내 안에서 오래 방치된 나 자신의 아픔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느라 정작 내 피눈물은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 모든 짐이 하나님이 맡기신 십자가만은 아니었음을. 때로는 내가 스스로 짊어진 허상이었고, 스스로 허락한 소진이었다. 나는 진심을 다했으나 인격적인 존중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선의는 종종 깊은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한국 교회의 어떤 오래된 구조를 보게 되었다. 권위는 침묵을 강요했고, 그 침묵은 낙인을 낳았으며, 낙인은 끝내 배제로 이어졌다. 정직하게 봉사한 이에게 남겨진 것은, 용도 폐기된 소모품처럼 버려졌다는 비참함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손절’을 택했다.
주식 시장에서 원금을 지키듯, 내 영혼의 원금을 지키기 위해 결단한 것이다. 더 이상의 감정적 파산을 막기 위해 단행한 이 단절이야말로, 지금의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이다.
이 거리두기는 비겁한 도망이 아니다. 다시 살기 위한 생존이며, 온전한 회복을 향한 치열한 승리다.
감정의 출혈을 막고 나서야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차가운 이성으로 그어놓은 그 단호한 경계선 안에서, 나의 영혼은 비로소 안전을 약속받았다. 시린 단절의 끝에서 나는 다시는 나를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무너진 공동체의 잔해 속에 나를 버려두지 않았다. 울면서도, 후회하면서도, 끝내 내 손을 놓지 않고 ‘나를 데리고’ 고요한 서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숨을 되찾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내면은 조금씩 정화되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나를 살린 문장들을 다시 써내려가며, 기록하는 자로 살아가려 한다.
이제 나의 서재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가장 깊은 방, ‘지성소’다.
이곳엔 더 이상 나의 정서를 요구하는 손길도, 환대의 이름으로 나를 옥죄는 목소리도 없다.
오직 하나님과 나, 그리고 그분 앞에서 발가벗겨진 정직한 문장만이 머문다.
나는 이제 타인의 위안자라는 화려한 가면을 벗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가 되려 한다.
그 서재에서 투박하고 정직한 글을 쓰며 브런치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작별사가 아니다.
상처 입은 채 내 옆에서 숨을 고르는 ‘나 자신’에게 건네는 첫 번째 환대다.
“이만하면 됐다.”
그 음성을 붙잡고, 나는 사람의 정원이 아니라 광야의 고독 속에서 진짜 자유를 쓰려 한다.
이 연재는 믿음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믿음이 나를 어떻게 부서뜨렸고, 또 어떻게 다시 세우는지 기록하는 나의 ‘망명 일기’다. 나를 데리고 나온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라는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다시 시작한다.